제주의 가을은 억새와 함께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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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가을은 억새와 함께 온다
  • 고희범
  • 승인 2011.11.1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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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16번째 제주탐방 후기


 
고희범 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제주포럼C'의 열여섯번째 '제주탐방'의 주제는 가을이었다. 그동안 제주의 역사나 문화, 환경을 주제로 해오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접근이었다.

탐방후기도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눈으로, 피부로 느낀 제주의 가을을 돌아보고 난 뒤의 느낌을 전하기는 여간 어렵지가 않다. 출발부터 탐방후기를 쓸 걱정이 컸다.

좌보미오름과 따라비오름, 제주의 자연을 사진에 담아낸 자연사랑(가시리)과 김영갑갤러리(삼달리)를 사진작가 강정효 선생의 안내로 돌아보는 일정은 사뭇 독특했다.

오름을 두곳이나 오르는 일정도 그리 가볍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며칠째 내리던 비가 그치고 화창한 가을날씨가 회복된 것이었다.

예쁜 이름, 좌보미와 따라비

좌보미오름(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은 봉우리가 5개나 되는 특이한 오름이다. 화산폭발이 이루어진 뒤 용암이 송이층을 몇군데로 무너뜨리면서 흘러내리는 바람에 별개의 오름처럼 보이도록 봉우리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름을 올라보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형국이 완연하다. 그런 만큼 분화구도 대형이다. 오름의 높이는 112m에 불과하지만 둘레가 5km, 면적은 20만평에 가깝다.

정의현의 도읍이던 성읍에서 보기에 '왼쪽에 있는 5개의 봉우리'라는 뜻에서 '좌오뫼'라는 이름이 붙었다가 '좌보미'로 불리게 됐다는 것인데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가지 설이 있다.

한눈에 들어온 좌보미오름의 5개 봉우리 중 3개. 오른쪽 멀리 정의현의 주산이던 영주산이 보인다.

 
사실 처음에는 봉우리 두개 정도를 오르고 난 뒤 그만 내려가도 될 것 같았지만 '제주의 가을'을 확실하게 탐지하지 못한 것 같아 내처 완주를 한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와 가을 빛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 만으로 가을을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다. 거기다 최근의 이상기후 때문에 봄으로 착각하고 철쭉까지 피어났으니 이 일을 어쩌랴.

11월 들어 여름 같은 날씨가 며칠 계속되는 동안 피어난 철쭉. 이 가을을 어떻게 견디려고...


 
버스에서 있었던 강정효씨의 사진촬영기법 강의를 실전에 써먹기에만 정신이 팔린 탓도 있었다.

같은 상황에서 빛을 많이 받아들이는 고감도 촬영은 어두운 데서도 촬영이 가능하고 흔들림을 방지한다거나, 조리개의 조정에 따라 주변을 흐리게 만들 수도 있다거나, 셔터의 속도를 느리게 해 야간의 차량 이동 장면을 찍는 기법 등은 자동 카메라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다만 나무그늘 아래에 있는 인물사진의 경우 야외에서도 플래쉬를 쓸 경우 얼굴이 시커멓게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거나, 억새를 찍을 때는 역광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극히 유용한 내용이었다. 실제로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는 역광으로만 가능했다.

세 개의 분화구가 만들어낸 조형미는 따라비오름을 '오름의 여왕'으로 등극시켰다.

누런 빛의 억새꽃(위)이 역광을 받자(아래)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따라비오름(표선면 가시리)은 '오름의 여왕'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했다. 흔히 오름에 삼나무 등을 '기획식재'하는 바람에 사라진 부드러운 선이 이곳에는 그대로 살아있었다.

이렇듯 오름의 전형적인 선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개의 분화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무성한 억새와 함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 개의 분화구가 만들어낸 조형미는 따라비오름을 '오름의 여왕'으로 등극시켰다.
 
오름 초입의 나무계단과는 달리 야자 열매에서 뽑아낸 섬유로 엮어 만든 등산로도 보기 좋았다. 폐타이어의 문제를 친환경적으로 바꿔놓은 것이었다.

야자 매트가 깔린 따라비오름의 등산로. '하늘 가는 길'이라 부르기로 했다.
 
고향을 떠나 살던 어느 해 11월, 제주공항에서 맞은 바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항공기 트랩을 내려오는 동안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던 그 바람은 서울의 빌딩 사이를 휘젓는 바람과는 달랐다. 거세기는 했지만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바람이야. 내 고향 제주의 바람은 가슴 속을 휑하니 뚫는 그런 바람이 아니었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야."

트랩을 내려와 버스를 타기 전 한참을 공항 활주로에 서서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너무도 행복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향 제주에 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 바람 때문이었다. 따라비오름 정상의 능선에서 부는 바람이 바로 그 바람이었다. 몸이 흔들릴 정도의 거센 11월의 바람이 그 해 늦가을의 바람을 떠올렸다. 한참이나 바짓가랑이를 흔드는 그 바람을 즐겼다.

카메라 앵글에 담긴 제주의 가을

우리는 전직 사진기자 서재철 관장이 운영하는 '자연사랑'과 사진작가 김영갑의 유작들로 채워진 '김영갑 갤러리'를 차례로 방문했다.

두 사진작품 전시관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학생 수가 줄어 폐교된 가시초등학교와 삼달분교 터에 각각 들어서 있다는 점과 제주의 자연을 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입장료 수입만으로는 운영이 어렵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서재철 관장이 직접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자연사랑'은 세월이 지날수록 잘 꾸며지고 있다.
 
그러나 서재철과 김영갑은 달랐다. 서재철이 기자답게 이곳 저곳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면 김영갑은 제주의 오름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몇시간, 몇일, 아니 몇달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비운의 불치병을 앓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영갑의 경우 그의 예술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후원회를 꾸려 말년의 사진작가를 돕다가 내처 전시관을 운영하는 데까지 이른 과정도 '자연사랑'과는 달랐다.

김영갑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형제들이 전시관을 운영하겠다고 나섰다가 후원회가 해온 일을 알고는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다"면서 일체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 후일담도 의미있게 들린다.

폐교된 삼달분교 운동장은 '김영갑 갤러리'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바뀌었다.
 
화려한 색채의 서재철과 바람 소리가 들리는 김영갑의 사진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할지는 보는 이들의 몫이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어떻게 사진으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가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기억에 남은 두 장면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떠오르는 두개의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따라비오름 너머로 보이던 가시리풍력발전단지였다.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삼달풍력발전단지에는 풍력발전기 10기가 모두 가을바람에 힘차게 돌아가고 있던 것과 달리, 제주도가 운영하는 가시리단지는 13기 가운데 10기가 멈춰서 있었다.

다른 하나는 좌보미오름 입구에서 만난 소 한마리였다. 이 녀석은 산담을 넘어 들어가 무덤 주변의 풀을 뜯고 있었다. 산담이라는 것이 마소의 출입을 막기 위한 것임에도 부드러운 풀에 끌린 소가 담을 넘은 모양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은 소에게도 해당되는 계절이 아닌가.

 
나 : 거길 어떻게 들어갔니?

소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면서?
 

<고희범(제주포럼C 공동대표, 전 한겨레신문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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