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 "가장 마음에 드는 가훈은..'혼 고망을 똟르라'.."
상태바
(현장인터뷰) "가장 마음에 드는 가훈은..'혼 고망을 똟르라'.."
  • 고현준
  • 승인 2022.10.18 0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글가훈 보급운동 펼쳐 '세종문화상(대통령표창)' 수상한 한곬 현병찬 이사장에 듣는다

 

 

한곬 현병찬 선생

 

 

나들이 하기에 좋은, 맑고 고운 가을 어느 날 휴일(16일) 오후..

오랜만에 찾은 제주시 현경면에 있는 저지예술인마을에는 활기가 넘쳤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평화롭기만한 이곳은, 늘 변함없는 느림의 여유로움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이날 제주현대미술관 초록잔디가 깔린 야외조각공원은 사람들이 북적여서인지 더욱 푸르렀다.

이 곳 바로 앞에 놓인 방사탑..

왜 이런 곳에 방사탑이 서 있는 것일까..

궁금한 일이지만, 그 바로 옆 오래된 돌에 새겨진 글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먹내음 붓길 따라 먹글이 있는 집..한곬 현병찬”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집에 들어서는 입구 또한 신비로움을 준다.

마치 숲속을 걷듯, 대나무가 입구를 감싸고 있었다.

무작정 안으로 들어서니 길이 양쪽으로 나온다.

왼쪽 길을 따라 올라갔다.

곧 나지막한 집이 나타나고 “천년 먹빛”이라고 쓰인 돌 위에 글을 쓰는 현병찬 선생의 동상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

 

 

 

계단을 몇개 올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한 가운데에 “한글이 목숨”이라는 큰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속의 한글, 광개토대왕, 남을 움직이려거든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등등 다양한 한글서예 작품이 전시된 곳..

“무슨 일이든지 온 힘을 다해 힘쓴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세종대왕 말씀 중에서..” 등등 다양한 한글서예 작품과 오래된 타자 등 물품들이 전시된 공간이었다.

전시장 안 다른 쪽 방에서 여러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 방 안으로 들어서니 한글서예가로 이름 높은 한곬 현병찬 선생(83세)이 앉아 계셨다.

인사를 드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고 여쭈니 흔쾌히 그러라고 받아 주신다.

그래서 현장에서 느닷없이 그동안 궁금했던 여러 내용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됐다.

 

다음은 이날 처음 만난 한곬 현병찬 선생과 나눈 현장인터뷰 내용이다.

 

 

지난 한글날 세종문화상(대통령표창)을 받은 현병찬 이사장

 

-이곳은 상설전시관인지..

“그렇다. 우리집은 일요일도 없고 쉬는 날이 없다. 다른 곳은 쉬는 날이 있는데 우리는 계속 열어 둔다...”

 

-연세에 비해 얼굴빛이 너무 좋아 보인다. 비결은 ..

“재미있게 살면 된다.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해서 재미있게 살면 그게 젊어지는 비결이다.”

 

-한글만 계속 쓴 이유가 있었는지..

“우리가 어릴 때는 선배들이 교실 기둥에 표어들을 많이 써 놓았다. 반공표어, 불조심 표어를 써놓는데 그런 선배들을 보고 나도 그만큼 써 봤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이후 사범학교에 갔는데 소암 현중화 선생님이 근무하고 계셨다. 그런 인연으로 한문교육을 받다가.. 어느 날 제게는 한글서예를 배워 주십사 하고 요청해서 한글서예를 특별히 나만 배우게 됐다. 소암 선생님 제자 중에 한글서예를 배운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

 

-한글서예를 해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한글서예는 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학생들 지도하기가 참 좋았다. 한문보다는 한글이 아이들에게는 더 쉽기 때문이다. 차츰 그렇게 하다 보니 요즘은 한문세대는 조금 지난 것 같고 한글세대가 오는 것 같기도 하다는 점을 느끼게 된다. 지금 젊은이들은 한문교육을 받지 않아서 그런지 한문작품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내가 걷는 길을 꾸준히 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가훈 써주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학교에 근무할 때 가훈전시회를 해봤더니 거의, 아니 전부가 한문가훈만 가져오더라. 아이들에게 이게 무슨 뜻이냐를 물으면 아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그냥 가훈이라고 해서 가져왔을 뿐이었다. 이건 문제다 생각해서 그때부터 한글 가훈 보급운동을 시작했다. 보급운동이다 보니 누가 돈을 주고 써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냥 무료로 써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가훈은 얼마나 써 줬으며, 그러면서 느끼게 되는 점은..

“아마 그동안 수만점은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훈을 애지중지해서 걸어놓은 집이 있는가 하면 그냥 쉽게 버리는 집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버렸다가도, 어느 날 가훈이라도 하나 걸어놓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와서 다시 하나 써 달라고 해서 가져 가는 사람도 있다.”

 

-가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내용은 무엇인지..

“제주말로 ‘혼 고망을 똟르라’(‘한 구멍을 뚫어라’. 한 구멍만 파라)이다.

지금도 이 가훈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내가 늘 좌우명으로 삼는 글은 ‘남을 움직이려면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이다. 한문으로 말하면 ‘솔선수범’이다. 남에게 일을 시키려면 내가 먼저 하면서 시켜야지 나는 가만히 앉고 이거해라 저것 해라 할 수는 없다 .제자들에게 무슨 일을 시킬 때도 내가 같이 해야 제자들도 따라온다..”

 

-‘한글이 목숨’이라고 쓴 큰 글의 의미는..

“외솔 선생이 한 말씀인데 외솔 최현배 선생님은 왜정때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키신 분이다. 그 분이 어느 식당에 가서 방명록을 쓸 때 ‘한글이 목숨’이라고 쓰고 나오신 후 그 말이 외솔 선생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지금 그 글을 쓴 이유는 외솔 선생님의 어록전시를 하고 있어서 써놓은 글이다. 와서 보면, 여러 가지 외솔 선생님의 어록을 통해 여러 가지 뜻을 알게 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셨지만, 왜정시대 때는 한글을 완전히 말살시키려고 했다. 한글을 말살시키려는 것을 최현배 선생님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이다. 한글을 만드신 건 세종대왕이지만 지키신 건 최현배 선생님이다.”

제자들과 함께 이날  수상기념 사진을 남겼다
제자들과 함께 이날 수상기념 사진을 남겼다

 

-후학들이 한자를 잘 몰라서 나라의 기본이 흔들린다는 지적에 대해..

“인성교욱 차원에서는, 한문교육이 인성교육에는 더 빠르다. 한글은 쉽게 받아들이긴 하는데 한문보다는 인성교육 차원에서 조금 느리긴 하다. 그렇지만 한글은 우리 말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선배나 후배에게 또는 부모가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모르는 한문을 일부러 깨우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한글이 쉽다는 생각을 한다.”

 

- 앞으로 남은 계획이 있는지..

“제주도 노동요가 있는데 이를 한문으로는 쓸 수가 없다. 제주어는 한문으로 표기가 안 된다. 소리 나는 대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노동요를 새 작품으로 다 써보자 는 것을 제자들과 함께 의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 잘 했다고 보면 30% 정도 됐는지 말았는지 정도만 한 상태다. 그 나머지는 내가 없더라도, 제자들에게 부탁하고 가야할 일이다.”

 

-글씨를 배우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주도에 사는 한글서예가들은, 우리가 정말 사랑해야 할 한글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말을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는, 우리 정신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한글체를 더 연구하고, 더욱 더 갈고 닦아야 한다. 문자의 미라든가, 미학적인 차원에서, 또는 언어학적 차원에서 이를 좀 더 연구하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동요를 중심으로 차원높은 작품으로 발전하도록 더 매진하기를 바란다.”

 

한편 한곬 현병찬 선생(제주도 한글서예사랑모임 이사장)은 지난 9일 열린 제576돌 한글날 기념식에서 제41회 '세종문화상' 유공정부포상식을 통해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받아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세종문화상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