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고 정박했던.. 군냉이포구(軍港浦, 軍浪浦, 軍郞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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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고 정박했던.. 군냉이포구(軍港浦, 軍浪浦, 軍郞浦)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24.05.02 0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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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파두리로 가는 길목에 있어 지리적으로 항파두리성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하귀1리 군냉이포구(軍港浦, 軍浪浦, 軍郞浦) 

위치 ; 애월읍 하귀1리 바닷가
유형 ; 전적지, 어로유적
시대 ; 고려
관련 사건 ; 삼별초의 입도

하귀1리_군냉이
하귀1리_군냉이포구

 


하귀1리(옛 동귀리) 해안에 있는 포구로 군냉이라는 이름은 삼별초의 입도와 관련이 있다.

고려 원종14년(1273), 삼별초 김통정이 려·몽 연합군에 맞서 항파두리 성을 축조하고 이곳과 인접한 동귀리에 전초기지와 군항을 만든 데서 유래됐다.

군냉이는 항파두리로 가는 길목에 있어 지리적으로 항파두리성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전초기지인 바굼지오름(파군봉)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군사들이 긴급하게 동원될 수 있는 곳이다.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고 정박했던 곳이다. 흔히 군항(軍港)이라고도 한다. 삼별초는 이곳을 기점으로 내륙공격에 나섰는데, 가는 곳마다 맹위를 떨치며 고려와 몽고를 괴롭혔다.

마을에서도 옛이름을 군랑포, 군항동으로 불러 왔는데, 이 마을은 탐라순력도에도 군랑포로 표기되었다. 지금은 조그만 어항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주도청 홈페이지 마을 이름유래에서는 원래 군항포를 항개(개와당) 또는 항포동으로도 부르며 현재 마을 어항인 포구 앞바다는 그 모양이 멀리서 볼 때 주변에 바위로 감싸여 있는 것이 마치 항아리처럼 생겼다는 의견과 군항으로 쓰였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작성 202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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