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걷는다(2)”..두번째 올레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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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걷는다(2)”..두번째 올레길 따라..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6.11.13 02: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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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입성기)광치기해안에서 온평포구로 가는 길 걸으니..

 

 2코스 시작점

 

원튼 원치 않든..
'우리는 그래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은 늘 맞다.

올레에 첫 입성한 후 1주일이 지나, 다시 토요일을 맞이했다.
다음날인 일요일(11월13일)에는 제주문화유산답사가 예정돼 있어서 일정상으로는 쉬어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여는 순간..
“어..날씨가..너무 좋아..”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가..? 참아..?”

 

 2코스 초반은 성산일출봉이 주인공이다

마침 전날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 1권을 모두 읽고 2권을 잡은 날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는지 모른다.


올리비에는 터키에서 이란까지 가는 동안 무수한 위험속을 걸었다.

길거리 노상강도가 배낭을 빼앗으려고 하기도 했고 첫시도에서 실패한 그들이 멀리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는 등 목숨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로 심각한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중간에 양봉업을 하는 집단이 있어 위기를 모면한 그는 겨우 차를 얻어 타고 동네로 들어갔는데..

마침 읍장이 출타중이라 미친 강도가 나타나질 않나..군인이 나타나지를 않나..
우여곡절이 많은 걷기를 계속 하는 중이었다.

그런 점에 비하면 제주올레는 얼마나 평화로운 곳인가.
누구나 아무런 제약이나 위협없이 걸을 수 있는 것만 해도 행복이다.

“일단 떠나자..내일은 내일이고..오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나는 먹는 일에 구애받기 싫어 밥을 싸가기로 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 올레길을 벗어나 다른 길을 간다는 것도 싫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커피도 마시고 과자도 먹어야 하겠기에 그것들도 모두 가방에 집어 넣었다.

일단 가 보는 거다.
오늘 일기는 비가 온다고도 했지만 제주하늘은 멀쩡하다 못해 화창했다.

'날씨는 걷기를 유혹한다'였다.

1코스때 찾지 못해 2km나 더 걸어가야 했던 2코스의 시작점인 광치기해안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0시15분경.

광치기해안이 가까워지자 나는 얼굴에 함박 웃음이 나오고 뿌듯한 미소가 생겼다.
다시 걷는구나..
그 희열을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모르리라.

 광치기해안
   

그곳에서 2코스 시작을 알리는 스탬프을 찍었다. 출발한 시간은 오전 10시30분 즈음이다.

그리고 전에도 한번 걸어갔던 둑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양식장이 있었지만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아 아마 문을 닫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했다.

그곳 전망대에 올라 성산일출봉을 몇장 찍고..바닷길을 따라 걸었다.

 식산봉이 보이는 오솔길

1코스의 연장이었을까.

아름다운 바다호수를 지나 데크가 놓여진 숲속길로 들어섰다.

 말을 기르는 곳

또 길을 막고 선 존재.
이번에는 말이 길 가운데에 턱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말들이라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공격은 하지 않지만 말은 뒷다리로 차버리니 조심은 해야 한다,)

 

 식산봉에서 내려오면 보이는 광경
 쌍월이 뜨는 호수다

숲속을 걸어 바다를 지나니 다시 숲속이다.
이런 기막힌 길이 있을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식산봉을 향하는 바닷길이 보이고 관광명소인 듯 이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제주인에게는 일상처럼 보이는 아무 것도 아닌 풍경이 그들에겐 생경스러워 보이나 보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드디어 2코스에서 처음 올라야 할 식산봉이 나타났다.

 식산봉

한 아저씨가 입구 의자에 앉아 있기에 산불감시원이냐고 물었다.
그는 올레안내인이라고 소개했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교대로 안내를 해주고 있다는데 "한 사람은 감귤을 따러 가서 오늘은 혼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산봉이 위치한 오조리는 오조포(五照浦)로도 한때 이 마을의 이름으로도 불리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의 중심 포구를 일컬으며 성산항과 마주한 어항이라는 설명.

이 마을의 이름 오조(五照)도 성산 앞바다 일출봉 건너에서 떠오른 해가 햇살을 펴면 가장 먼저와 닿은 마을이라 하여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오조리 해안가에 위치한 오름 식산봉(높이 40m)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牛島와 오조리 해안에는 유독 왜구의 침입이 잦았는데 이시대에 오조리 해안을 지키던 조방장(助防將)이 마을 사람들에게 노람지(띠로짠 덮개)를 엮게한후 병사와 주민들을 시켜 식산봉 전체를 덮게 하여 바다에서 왜구들의 눈에 군량미가 많이 쌓인것처럼 꾸며 왜구들을 속였던데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봉우리에 장군석이라는 바위가 있다해서 바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식산봉에 대해 물었더니 이 안내원은 “옛날에는 농사를 짓기까지 했던 곳인데 동네어르신들이 나무를 심어 이제는 아주 산이 돼버렸다”고 뿌듯해 했다.

 식산봉 입구(올레안내인은 오전 11시30분까지 봉사한다고 한다)

동네에서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고 해서 뭔가 말해 주었지만 어떤 뜻이냐고 물으니 그 내용은 잘 모른다고 해서 나도 곧 잊어먹고 말았다.

일단 동네에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오름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잘 하겠다고 해서 대표를 뽑아놓으면 잘하지 않아 불만이 많아” 하는 소리는 조금 했기 때문이다.

'나는 수고하시라'고 인사한 후 식산봉에 오르기 시작했다.

식산봉을 오르는 사이, 이곳에서 보는 성산일출봉 또한  장관이었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일출봉.


그곳은 누구나 한번 쉬어가면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명 쉬리의 의자같은 게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길 정도.

식산봉 정상에 오르니 전망대 바로 아래에 누워있는 무덤 하나가 눈길을 끈다.

 식산봉 정상의 무덤

그 무덤은 우도봉을 향하고 있었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2코스 올레의 첫 주인공은 항상 일출봉이었다.
어디서나 일출봉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산봉을 내려오니 다시 바다호수가 있고 철새들이 노닐고 있는 곳이 나타났다.

 바다를 가로질러 데크가 놓여있다(멀리 보이는 곳이 대수산봉이다)

그곳에는 성산10경의 하나인 식산봉과 함께 일출봉에서 떠오른 달이 잔잔한 이곳 내수면에 또 하나의 달을 볼수 있다 하여 쌍월이라고 소개하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다음 길은 그 호수(바다)위를 걸을 수 있도록 만든 데크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데크를 따라 아름다운 일출봉과 바다 그리고 철새들의 낙원이 펼쳐졌다.

 곡지물(물맛이 짰다)

데크지역을 지나자 곧 나타난 곡지물.

나는 일부러 그곳에서 세수를 했다.
물이 너무 맑고 고왔고 또 반가웠기 때문이다.

옛날 제주에는 동네 어느 곳을 가건 이런 물이 넘쳐났다.
물론 아무 거리낌 없이 먹었던 물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물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가 않다.
거의 다가 오염돼 버렸기 때문이다.

이 곡지물도 지금 음료수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여름철 피서지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입에 대니 물은 먹기에는 부족하고 조금 짠 듯 했다.

이처럼 성산지역 바다 가까이에 있는 물은 대부분 염분이 많다.

이곳을 지나니 올레2코스 3km 지점 표지와 함께 오조리마을로 들어섰다.
유독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이와 함께 특이한 점도 많은 동네였다.

그런 곳에 잡화점이라니.,

나는 외관이 예쁜 잡화점이 보이기에 들어가 봤다.

한 여성이 앉아 있어 여기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했더니 안된다고 해서 바로 나와 버렸다.

악세사리 제품과 아이들 물건이 많아 보였지만 아마 그만의 작품들일 것이라 내가 방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조리마을의 작은 심터

그곳을 조금 지나 걸어가니 동네에서 누가 만들어놓은 작은 쉼터의자가 있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곳에서 잠시 쉬어봤다.

길따라 동네를 지나니 이제는 복잡한 시내를 걸어야 한다.
성산지역에 제2신공항 등 개발바람이 불어서인지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서고 있었고 대형부동산 광고판도 많았다.

유명하다는 국수집(사람이 가득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TV에 나온후 유명해졌다고 한다)을 지나는데 올레를 안내하는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가 봤더니 저 멀리 작게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큰 길 건널목을 지나 홍마트라고 쓰여진 옆을 지나려는데..반갑게도 중간스탬프를 찍는 포스트가 거기에 놓여 있었다.

2코스는 반 정도가 가서가 아니라 거리상으로는 일찍 스탬프포스트가 있어 나는 잠시 착각했다.
반쯤 걸어 온 것으로..

스탬프를 찍기 전에 사진을 먼저 찍고 있는데 어떤 나이든 청년이 묻는다,

“그게 뭐예요..?.. 사람들이 계속 그 사진을 찍던데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허 이것 참..

나는 “올레코스 중간에 스탬프를 찍는 곳”이라고 분명히 말해줄 수 있었다.

그는 궁금함이 풀려 즐거운 듯..
“늘 궁금했다..”며 자리를 떠나갔다.

 홍마트앞 중간스탬프지역(그게 뭐냐고 물었던 사람이다)

아마 공사장에서 일하는 육지사람인데 사람들이 걸어가다 스탬프를 찍고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매우 궁금했었나 보다.

그 지점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싶었지만 예쁜 들판이나 바닷가에 앉아 먹으려고 참기로 했다.

잠시 더 걸어가자 부부가 일하고 있는 감귤밭이 나타났다.

나는 그들을 향해 "수고하십니다"라고 인사했다.

답변은 "감귤 좀 드시고 가세요" 였다.

정이 넘치는 인사.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했지만 얼굴에 미소 가득한 이 부부의  고운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됐다.

 따뜻한 마음을 전해준 부부가 감귤을 따고 있었다

그렇게 도심을 지나 지루한 들길을 따라 걷다보니 드디어 대수산봉 입구가 나타났다. 두번째 올라야 할 오름이다.

이 대수산봉 오름명의 유래원래는 물뫼(물미)라 했던 것이 동쪽에 이웃한 족은물뫼(小水山峰)와 구별하여 큰물뫼(큰물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한자로는 그 뜻을 빌어 大水山峰(대수산봉)이라 표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곳 입구에서 들판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려다가 아예 정상에 가서 먹기로 결정했다.

오르고 또 오르다보니 드디어 정상, '수산봉수'라고 쓰여진 팻말이 먼저 보였다.

 
 
 대수산봉 정상.. 그곳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
   

그곳에는 이미 2-3명이 도착해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를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없어 나는 그곳 정상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풀었다.

둘은 내려가고 젊은이 한명이 남았다.

"밥 같이 먹자"고 했더니 "금방 국수집에서 먹고 왔다"고 했다.
아까 사람들이 줄을 섰던 그 국수집이었던 모양이다.
왜 유명하냐고 물으니 “얼마전에 TV에 나와서 유명해진 집”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는 지금 조그만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친구와 둘이 내려왔는데 한 친구는 올레걷기가 힘들어 혼자 걷는 중이란다.

혼자 밥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여러 사람들이 왔다 내려간다.

밥을 거의 다 먹었을 때 5-6명의 아줌마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수산봉은 내려오는 길도 참 좋다.

일주일전에 올랐던 두산봉이 아주 가까이 보이고 호젓한 산길도 좋았다.

 동굴이 발견된 씽크홀이다

거의 다 내려왔는데 보니 씽크홀 지역이라고 쓰여진 안내문이 보인다.
씽크홀이라니..
동굴이 하나 새로 발견된 모양이다.

구멍만 뻥 뚫려있는 동굴..
이런 동굴은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몇년전 동굴 하나는 공사를 하다가 발견했는데 그 아름다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길고 긴 들판길이 계속되는 길..

대수산봉을 지나 온평리 혼인지까지는 그야말로 지루한 들길만 이어졌다.
걸어도 걸어도 밭만 보이는 길.
볼 것도 사진을 찍을 만한 경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긴 구간을 지나 혼인지가 보이는 아스팔트길이 나타나자 얼마나 반가운지...

그래서 올레2코스를 안내하는 글귀중에는 2-3명이 함께 걸으라고 권유하고 있나보다.

저 혼인지 지역만 벗어나면 드디어 마지막 종착지인 온평포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들길을 걷는 동안 계속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다리에 쥐는 나지 않았지만 허리가 계속 아파 쉬기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걷고 있었다.

느리게 걷는 것이 아니라 거의 기어갈 정도의 속도로 아주 느릿느릿 걸었다.

그래도 시작한 길이니..
무사히 마무리는 해야 한다.

혼인지에 도착했다.

가끔 오는 곳이긴 했지만 오늘 올레꾼이 되어 바라보는 이곳은 또 다른 매력을 준다.

 

 

 혼인지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제주도기념물 제17호)는 삼성혈(三姓穴)에서 태어난 탐라(耽羅)의 시조(始祖) 고(高)·양(良)·부(夫) 3신인(三神人)이 동쪽 바닷가에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碧浪國) 세 공주를 맞이하여 각각 배필을 삼아 이들과 혼례를 올렸다는 곳이다.

3신인은 그 함 속에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五穀)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고, 이로부터 농경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당시 그 함이 떠밀려왔다는 '황루알'에는 3신인의 말발굽이라는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옛날 벽랑국 처녀들과 결혼했다는 혼인지.

대수산봉 정상에서 보았던 6명의 올레꾼아줌마들과 걷는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왔는데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혼자 걷는게 신기했는지 한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오셨어요”라고 묻는다.

나는 “제주시에서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들은 혼인지를 돌아본다며 들어가고 나는 그곳을 나와 목적지인 온평포구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큰 길을 지나 온평포구로 가는 길은 온평리마을을 관통하는 길이다.

 대문이 없는 온평마을

이 마을의 특징은 거의 모든 집에 대문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집이건 대문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로운 마을을 걷고 있는데 1km 남았다는 표지가 나타났다.

드디어 다 왔구나..

온평리마을을 다 지나자 마을을 지키는 성처럼, 바다쪽에 우뚝 선 환해장성이 나타났다.

 온평환해장성

온평환해장성은 2,120m로 매우 긴 편이다.

황해장성길을 따라 해안도로를 걸어가니 아주 가까운 곳에 2코스의 끝을 알리는 스탬프 포스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 가기전 돌테이블에 앉아 잠시 세상을 감상했다.
바다에는 무역선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고..
방파제에는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고 있었다.

오늘도 걸었구나..
스스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2코스의 마지막 스탬프스탠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위안이 됐던 글귀
   

종착점인 온평포구..

도착시간이 16시30분. 꼭 6시간을 걸었다.

이곳에서는, 광치기해안으로 돌아 가려면 다시 큰 길로 걸어서 올라가 버스를 타고 가야한단다.

“다시 걸으면 되지..”

힘든 다리를 질질 끌며 버스정류로 나오니 곧 버스가 도착했다.

 석양이 깃든 성산일출봉

광치기해안에 도착하자 성산일출봉에는 석양이 깃들고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니 아까 올랐던 대수산봉은 석양이 가득했다.

 석양이 가득한 대수산봉

올레2코스는 성산일출봉과 들길, 그리고 대문없는 마을이 너무 정겨운 그런 코스로 기억한다.

다만 길고긴 들길을 걷는 동안은 돌담에 앉아 쉬기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걸었다.

2천6백km를 걷고 난 베르나르는 나는 걷는다의 제1권을 마치면서  "이번 길은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까? 그건 확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금욕주의자로 소개한 그는 다음 여행에 대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이제 길과 나 둘 뿐"이라며 "헤어질 이유가 없다"고 선언한다.

나는 이제 겨우 30km 정도를 걸었다.

3코스는 또 어떤 곳일까..

 

 

 

 제주올레2코스

▲ 제주올레2코스(제주올레 홈페이지)

 

패스포트 스탬프 확인 장소

시작 : 광치기해변


중간 : 성산 홍마트 옆


종점 : 온평포구

난이도난이도 - 중


거리(시간) - 14.5km (4~5 시간)


초반에는 물길이 이어지다가 중반쯤 오름을 오른다. 오름 앞뒤로는 호젓한 산길이어서 두 명 이상이 짝지어 가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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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일보짱 2016-11-16 01:04:24
두번째 올레걷기도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고 있어요 다음 올레걷기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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