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안티고네의 ‘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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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안티고네의 ‘지조’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7.01.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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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가 없는 세상에는 숭고한 아름다움도 없다

 

 안티고네. 프레데릭 레이튼. 1882.

지조, 충절, 절개, 의리... 비슷한 의미의 말이지만, 오늘날 쉽게 찾기 힘든 덕목들이다. 여자나 남자나 정절과 순결을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세상은 자유인권과 개인의 행복추구가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에게 강요했던 지조와 정절이나, 신하와 부하들에게 덕목으로 요구되었던 절개와 의리에는 모두 자신을 헌신하는 희생이 따른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가치를 지키는 이도, 요구하는 이도, 선망하는 이도 별로 없다.

그러나 지조를 지키는 이가 있다면, 그를 두고 모두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여도, 나는 그 가치는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현실적으로는 어리석어 보여도 결국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 남은 지조의 덕은 가볍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조'란 '자기의 신조에 대한 정직함'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로서의 지조의 미덕을 구현한 인간의 좋은 예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 희곡 작품인 ‘안티고네’를 들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딸이자 크레온 왕의 조카딸인 안티고네는 죽은 오빠에 대한 누나로서의 신성한 초월적 의무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 보다 더 상위에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그녀와 온 가족들의 행복과 국가의 질서를 위해서 국가의 법에 따라 오빠의 시체를 매장하지 말라는 작은 아버지이자 왕인 크레온의 집요한 권고에 대해서 끝까지 저항했다. 그 결과로 그녀 자신의 사형은 물론, 그 소식을 들은 약혼자이자 왕의 아들인 사촌 오빠와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연속적 비극으로 모든 것을 끝맺기에 이른다.

오늘날 ‘안티’의 어원이 된 안티고네의 비극에는, 어딘가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그 아름다움은 그녀의 행동이 보여준 철저한 지조의 미덕에서 오는 것이리라. 그녀의 지조는 자신에게 철저하게 정직하게 행동했다는 사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지조라는 최고의 도덕적 가치를 다른 가치를 위해서 매도하지 않고 지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있다. 지조는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오!’라고 소리치며 거부하고 자신의 주체에 따라 즉 자유롭게 사는 의지이자 행동이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Antoni Brodowski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는 기원전 441년경에 쓰여 졌다. 이야기의 배경은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인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골육상잔 끝에 일 대 일 대결로 서로를 죽고 죽인 뒤에, 새로 테베의 왕이 된 크레온이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리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그의 명령을 어기고 오라비의 장례를 치러주면서 크레온과 대립한다. 안티고네는 신들의 불문율인 천륜을 주장하고 크레온은 실정법인 현실의 질서를 강조한다. 이러한 대립의 서로 다른 가치의 충돌을 그리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법질서를 어지럽힌다면서 획일적 통치의 효율을 강조하는 권력자들과 천부적 가치와 이상주의적인 진리라는 불문율을 중요하게 여기는 안티세력의 숨바꼭질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레온 왕은 오이디푸스의 장남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장례를 치르지 못하게 하자, 새 떼의 먹이로 줄 수 없다는 안티고네는, 왕 몰래 장례를 치러주자고 동생인 이스메네를 설득한다. 그러나 이스메네는 두렵기도 하고 국법질서를 부정하는 일로 망설이게 된다. 이스메네는 언니에게 현실을 잘 살펴보라며 이렇게 말한다.
"아아 잘 생각해보세요. 아버지는 자신의 죄과를 들어내 보이시고 두 눈을 찌른 다음 증오와 멸시 속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을 신랑으로 가지신 어머니도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매달아 숨을 끊었구요. 그리고 두 오라버니는 한 날 한 시에 서로 혈족의 피를 쏟으며 상대의 손을 빌려 함께 운명을 끝냈어요. 그런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리 두 자매마저 법과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권력에 맞서면 역시 비참하게 죽게 될 거예요. 우리는 우리보다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 더 괴로운 일이 있어도 그에게 복종해야 돼요. 우리는 여자들이고 남자들과 싸우도록 태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지하에 계시는 분들에게는 용서를 빌고 나는 통치자에게 복종할래요. 지나친 행동은 결국 의미 없이 생명만 죽게 만드니까요."
그러자 안티고네는 말한다.
"나는 경건한 범행을 하여 신들이 존중하는 아름다운 죽음을 선택하련다. 그러면 그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분들 곁에 눕겠지. 이 세상 사람들에게 법의 처단을 받는 것은 짧지만, 지하에 계신 그 분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시간이 훨씬 기니까. 나는 그곳에서 영원히 누워 있게 될 테니 말이야."
"나는 나라의 힘을 거역할 힘이 없을 뿐이에요. 언니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려는 거예요. 언니는 길을 잘못 가고 있는 것이에요."
이스메네의 이러한 걱정에도 안티고네는 자신의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는다. 한편 원로회의를 소집한 크레온은 자신의 입장을 강경하게 주장한다.

 안티고네. 그리스 드라마

"나라를 통치하면서 최선의 정책을 채택하지 않고 무언가가 두려워 함구한다면 그것은 가장 나쁜 자로 여기게 될 것이오. 누구든 조국보다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자를 나는 경멸하오. 그것은 나라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조국이 무사 항해를 해야만 우리는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이오. 오이디푸스의 아들들과 관련해서 내린 나의 포고령도 그러한 뜻을 펴려는 것이오. 에테오클레스는 뛰어난 창수로서 전사했으니 무덤에 묻어주고 지하의 사자들에게 걸 맞는 온갖 의식을 베풀 것이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는 조국 땅과 선조들의 신들을 화염으로 불살랐고, 친족의 피를 마시고 나머지는 노예로 끌고 가려했으니, 아무도 그를 위해 장례를 치르거나 애도하지 말라고 하였소. 그래서 그의 시신을 묻지 않은 채 버려서 새 떼와 개들의 밥이 되고 흉측한 몰골이 되게 하려고 하는 것이오."
그렇게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파수꾼 하나가 급히 달려와 왕에게 누군가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주고 사라졌다고 알렸다. 그는 범인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고, 조사해보아도 아무도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없어서 아마도 신이 이런 일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해 달려왔다고 하였다.
크레온은 이 말을 듣고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신들께서 자신들의 신전과 신성한 보물을 불사르고, 또 자신들의 나라를 유린하고 법규를 말살하러 온 자에게 선행을 베푼 자로 존중하셨다는 말인가? 신들이 사악한 자를 존중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나의 포고령을 못마땅하게 불평하는 자들이 저지른 일이고, 파수꾼들은 그들에게 매수되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도다. 사람사이에서 유통하는 것 중에 돈만큼 해로운 것이 없도다. 돈은 나라도 팔아먹고 남자들을 그들의 집에서 몰아내기도 한다. 돈은 정직한 마음씨를 변하게 하여 수치스러운 짓을 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니 매장한 장본인을 찾아내어 내 눈앞에 세우지 않는다면 파수꾼들을 모두 산 채로 매달아 범행을 자백하게 하고, 아무데서나 이익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배우게 할 작정이다. 그리하여 수치스러운 이익은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보다 파멸을 가져오게 할 것이로다."
그러자 파수꾼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결코 아니고 돈도 받은 일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물러간 파수꾼은 다음 날 다시 돌아왔다. 그는 안티고네를 붙잡아 온 것이었다.
"여기 이 여인이 범인이오. 이 여인이 그 분을 매장할 때 붙잡았소. 우리는 돌아가서 그 시신의 흙을 제거하고 다시 드러나게 했었소. 그러자 이 여인이 나타나서 드러난 사신을 붙잡고 애처롭게 통곡을 하며 흙먼지로 매장을 하고 제주(祭酒)를 부어주는 것이었소. 그리고는 소리 높여 흙먼지를 걷어낸 자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소. 그래서 우리가 잡아서 온 것이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왜 포고령을 어기고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티고네는 답했다.
"내게 포고령을 내린 것은 제우스가 아니며, 하계의 신들과 함께 사는 디케(정의의 여신)도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법을 세우지 않았어요. 나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한 그대의 포고령이 신들의 변함없는 불문율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 불문율은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C. W. Eckersberg. 1812.

크레온은 버럭 성에 차서 말했다.
“불에 지나치게 달군 가장 단단한 쇠가 가장 먼저 부러지는 법이다. 지나친 고집은 가장 쉽게 꺾이는 법이다. 이 계집은 포고령을 어긴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범행을 자랑하며 우리를 비웃기까지 하는구나. 이 일로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면 내가 아니라 그녀가 남자일 것이로다. 그녀가 비록 내 누이의 달이고, 우리 집에서 제우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가장 가까운 인척이지만, 그녀는 극형을 면치 못하리라.”
“나는 친 오라버니를 묻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도 그것이 마음에 든다고 할 거에요. 왕이라고 마음대로 한다는 것은 잘못이에요.”
“그 자는 이 나라를 유린하다가 죽은 자이다.”
크레온이 지적하자 안티고네가 답했다.
“그래도 하데스는 장례의식을 요구하는 법이에요. 착한 자와 나쁜 자에게 달리 해야 된다는 것이 하계의 신성한 규칙이라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우리는 서로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화가 식지 않은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의 동생인 이스메네도 이 일에 가담했다고 믿고서는 그녀도 잡아오게 했다.
“내가 내 왕좌에 거역하는 두 재앙을 기르고 있는 줄도 몰랐구나.”
이렇게 탄식하는데, 잡혀온 이스메네는 언니에게 미안하여 자신도 이 일에 가담했다고 거짓으로 말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하면서 저 혼자만 죽으면 된다고 하였다. 그러자 이스메네는 언니 없이 혼자 살지 못한다며 왕에게 따져 물었다.
“왕의 아들인 하이몬의 약혼녀인 언니를 정녕 죽이시려고 하는 것인가요?”
“하이몬의 씨 뿌릴 밭은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 분과 언니는 서로 잘 맞는 사람들이잖아요?”
“나는 아들에게 악처가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평소에 유순하고 고분고분하던 이스메네가 이렇게 항변하자 크레온은 다 물러가라고 하였다. 크레온은 아들 하이몬을 불러 안티고네와의 약혼은 무효이며, 그녀에게 사형을 언도할 것이니 아버지의 뜻에 따르라고 하였다. 크레온은 하이몬에게 말했다.

“너는 향락에 끌려 한 여인 때문이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막상 한 집에 살며 악녀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면, 품속에서 금세 식어버린다는 것을 알아두어라. 나쁜 친구보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없느니라. 그녀만이 온 도시에서 공공연히 내 명령을 어기다 잡혔는데, 그녀 때문에 나 자신을 시민들 앞에서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지 않다. 자기 가정도 다스리지 못하면, 도시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월권으로 법을 짓밟고 자신의 통치자에게 명령하려 든다면 나는 그를 그냥 둘 수 없다. 그러므로 도시가 임명한 자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복종은 안전을 가져오지만, 불복종은 도시를 파괴하고, 집들을 쑥대밭을 만든다. 또 동맹군의 진열을 무너뜨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법질서를 옹호해야하고, 한낱 계집에게 져서는 안 된다.”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 앞에 선 안티고네. Nikiforos Lytras

그러나 하이몬은 안티고네를 두둔하여 말한다.
“아버지, 신들은 인간들에게 이성을 심어주시는데, 이성이야말로 인간의 최고 자산이지요. 그 이성은 아버지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어요. 시민들은 아버지의 눈초리에 주눅이 들어 면전에서는 귀에 거슬리는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그 소녀를 애통해 하고 있어요. 왜 그녀가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죄가 없으면서도,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 때문에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것이냐고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녀의 친 오라버니가 피비린내 나는 전투에서 죽었을 때 날고기를 먹는 동물의 밥이 되도록 그냥 놓아두지 않았으니, 황금 같은 명예를 받아 마땅하다고 은밀히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 아버지만 옳고 다른 사람은 모두 틀렸다고는 이야기하지 말아주세요. 누군가 자기만 현명하고, 말솜씨와 조언자로서 자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여긴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막상 검증해보면 속이 비어 있음이 드러나지요. 현명한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때로는 양보할 줄 아는 것이 옳지 그것이 수치가 아니에요. 겨울철 급류 가에서(그리스는 겨울이 장마철이다) 굽힐 줄 아는 나무들은 그 가지를 온전히 보존하지만, 반항하는 나무들은 뿌리째 넘어지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노여움을 풀고 생각을 바꿔보세요.”
크레온은 이런 애송이에게 비판적인 말을 듣게 되자 기가 막혔다.
“너는 반역자를 존중하자는 것이냐?”
“나는 범법자를 존중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안티고네가 범법자가 아니라는 거냐?”
“테베의 백성들은 그녀가 범법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내 통치를 그러면 테베 백성들로부터 지시를 받으라는 것이냐?”
“한 사람만의 국가는 국가가 아니지요.”
“국가는 통치하는 자가 곧 국가이니라. 나 자신의 통치권을 존중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냐?”
“사막에서라면 그렇게 독재를 하셔도 돼요. 그러나 아버지의 행동은 부당합니다. 그것은 통치권의 존중을 위한다면서 신들의 명예를 짓밟는 것입니다.”
그러자 크레온은 자기 자식이 계집에게 홀렸다며, 그녀를 조속히 죽이겠다고 말하자, 하이몬은 그러면 그도 따라서 죽겠노라고 같이 협박을 하고는 나가버렸다. 크레온은 명령을 내려 안티고네를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석굴에 가두고 죄받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을 넣어서 자연사 시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녀를 죽인 사람들은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생각했다. 원래 크레온은 명령을 어긴 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으나, 마음이 약해져서 인지 생각을 바꾼 것이었다.
사람들은 안티고네가 돌무더기로 막은 전대미문의 감옥으로 끌려가자, 그녀가 앞뒤 가리지 않고 너무 담대하다가 디케(정의의 여신)의 왕좌에 세차게 부딪친 것이라면서 아버지의 죗값을 대신 치르는 것이라고 애통해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경건한 행위가 나름대로 칭찬 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은 사회적이고 현세적인 존재로서 그것을 누가 쥐든 권력이 침범당하는 것을 용납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만 된다고 말을 하였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Per Gabriel Wickenberg

안티고네는 석굴에 갇혀서 한탄했다.
“나는 신부의 침대도 없이, 축혼가도 없이, 결혼의 행복도 아이를 기르는 재미도 모른 채 이렇게 친구들에게 버림받은 불운한 여인은 살아서 죽은 이들의 무덤으로 내려가고 있다오. 대체 내가 신들의 어떤 법을 어겼나요? 나는 그러면 어떤 신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요? 경건한 행동이 불경이라니, 신성한 것을 신성하다고 했는데, 불경이라고 하면 어떤 자들이 봉변을 당한단 말인가?”
고대 그리스 여인들의 최대 행복은 결혼과 자식의 생산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고대의 여성들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기도 했으며, 소녀가 되어 결혼이 아니면 강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하여 비참하게 살거나 팔려서 노예가 되기도 하였다. 여성노예란 물건으로서 가축과 같이 취급되거나 창녀가 되는 길도 흔했다. 시민계층이나 귀족 여성들도 평생 집안에만 갇혀 살아야 했고, 지위가 그리 좋은 편이 못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이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테베의 크레온을 찾아온다. 그는 오이디푸스의 전사한 아들의 시체를 뜯어 먹은 새들이 점을 통해 불길한 징조가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죽은 자의 윤리에 맡겨서 더 이상 만용을 부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이 말을 안 들으면 혈육 중 한 사람을 죗값으로 바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는 또 하계의 신들에게 속하는 시신을 장례도 치르지 않는다면 상계의 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도 하였다. 그리하여 하계의 신들에 대한 횡포는 복수의 악령들을 보내는 복수의 여신들이 크레온을 노리고 있으며, 모든 도시들이 증오심을 품고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테베를 공격한 아르고스군에 군대를 보낸 여러 도시는, 실제로 그들의 전사자들에게 매장을 금한 크레온의 처사에 분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후에 일곱 장수의 아들들이 주축이 되어 테베를 재차 공격했고, 그들은 결국 테베를 함락시킨다.
아무튼 테이레시아스의 예언에 충격을 받은 크레온 왕은 안티고네를 석실에서 풀어줄 것과, 시신은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들의 법률을 준수하는 것이 과연 최선책인지 의심을 했다.
그런데, 안티고네는 자신의 린넨 옷의 천을 길게 찢어 자신의 목을 매서 숨진 후였다. 하이몬은 들판의 폴리네이케스의 남은 부분들로 시신을 화장시켜주고는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보러 갔는데,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된 그녀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안티고네의 석실에서 그녀를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하이몬, 그리고 뒤늦게 도착하여 아들을 부르는 크레온을 보자 칼집에서 칼을 빼서 휘둘렀으나, 크레온을 맞히지는 못했다. 하이몬도 안티고네 옆에서 자기의 칼을 이용해 자결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사자로부터 전해들은 왕비 에우리디케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 집안으로 옮겨졌으나 이내 예리한 칼로 그녀도 자결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들과 아내까지 죽음의 문을 두드렸다는 비보에 크레온은 운명의 참혹함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절망했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Charles Jalabert

오늘날 우리는 도덕적 규범을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살수는 없다. 우리에게는 정직과 겸손, 배려와 따듯함 등의 가치가 있고, 자유와 평등, 개인적 실존과 사회적 공동선, 목적과 방법, 지조와 이익성, 정조와 사랑, 원칙과 공리라는 서로 모순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가치들이 있다. 불과 두 세기 전까지는 지상 최고의 가치였던 정절과 열녀의 가치가, 사랑을 위해서 정절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현재의 사회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혹은 자신이 속한 다양한 집단별로 도덕적 가치는 상이하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우리 모두는 도덕적으로 위선자에 가깝다. 도덕성, 덕목이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러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는 동일한 도덕적 가치로 ‘지조’가 하나의 방향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 과연 지조가 어디에 있나 자조적인 생각이 든다. 그들의 언행이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을 미침에도 그들은 태연히 말을 바꾸고 거짓과 도덕적 불감증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사업가들이 모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만 축적하려고만 한다면 문제가 클 것이다. 내가 내 돈 벌고 내 재산 지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가치가 아니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또한 국민의 복지와 국가의 번영이란 공적 가치를 위한 봉사를 전제로 한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국가 기관장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의 치부와 번영을 위해서 권력을 남용한다면 국민들은 매우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도, 자신의 노력으로 고시 합격하고, 거기까지 간 것은 모두 자유민주주의의 결과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정의는 요원해 진다.
그렇게 우리는 '지조' 없는 지도자들이 각종 국정 농단과 재산 증식이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지조’의 덕목을 위해 살아간 훌륭한 전통과 모범적인 이들을 알고 있다.
정몽주와 사육신, 안중근이나 윤봉길, 유관순을 우리는 존경한다.
프랑스의 드골은 개선장군으로서 돌아 온 후 두 번의 대통령 직을 지냈지만, 대통령 직을 그만둔 후 곧바로 자기의 시골 고향 집에 돌아가 은거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는 유언에 따라 국장을 마다하고 동네 작은 성당 내 묘지에 먼저 간 딸의 옆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그가 태어난 날짜와 그가 죽은 날짜만이 간소하게 새겨졌다. 그리고 미망인과 그의 두 아들은 그 시골집을 유지할 돈이 없어서 집을 처분하였다.
베트남의 혁명가인 호치민은 후손은 물론 아무 재산도 남겨놓지 않고 새로 지으려는 대통령 관저를 거부하고, 과거 식민지 시대에 프랑스의 총독이 살던 낡고 소박한 관저에서 살면서 직무를 보다가 일생을 마쳤다.
등소평은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은 물론 자신들의 시체조차도 남기지 않고 그것을 화장해서 없앴다.
눈치만 보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버리고 줄을 바꾸어 사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당장 좋은 권력의 자리를 잃어도, 당장 모가지가 달아나도 자신의 지조와 진실을 위한 신념으로 ‘아니오!’를 외치는 ‘안티고네’는 우리 사회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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