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문학] 여인의 복수- 메데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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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인문학] 여인의 복수- 메데이아
  • 안종국 기자
  • 승인 2017.01.0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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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한 남자들이여! 여인의 복수를 두려워하라!

 

 메데이아. Anselm Feuerbach. 1870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기원전 약 480~기원전406)는 아테네에서 태어나 마케도니아에서 죽었다.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더불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되는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으로서 오늘날 그가 쓴 18편의 비극이 남아 전해진다.

그는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배우고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와 친교를 통해 영향을 주었다.

그는 인간의 고뇌에 깊은 이해와 동정을 품고,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악업을 비판했으며, 운명이나 신의 뜻에 따르기보다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갖는 합리성으로 이 세상의 복잡 미묘한 일들을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의 작품은 현실성과 사실성을 무시하였으나 허구적 프롤로그와 허구적 신을 사랑과 질투, 복수와 광기같은 원초적이고 순수한 인간적 사건들로 커버하였으며, 간명한 대사로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돋보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한 메데이아는 전형적으로 배신한 남자에 대한 복수의 항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즉 여자들의 상처와 그 원한을 가장 심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아손과 메데이아. 존 윌리암 워터하우스

이올코스의 왕인 펠리아스는 그가 과업으로 제시한 황금양모피를 이아손이 구해왔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고 왕위를 내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메데이아가 속임수로 그를 죽이고 이올코스에서 추방되어 코린토스로 와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야만족 출신의 메데이아에게 싫증이 났을 수도 있고, 가족과 자식들의 안전을 위하여서 일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여자를 찾는 남자들의 당연한 욕심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에 절망한 메데이아는 복수를 다짐하는데,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이러한 상황을 걱정하여 메데이아와 그녀의 두 아들을 추방하기로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는 이 장면에서부터 그 비극의 진행과정을 그린다.

메데이아는 마술을 이용하고 각종 약초에 대한 지식이 있으며 독약을 이용할 줄 알고 있으며, 신들의 지혜와 힘을 빌려와 상황을 타개하는 일종의 주술적 능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는 이아손과의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의 친오빠도 이용하여 사지를 분해하여 죽였으며, 이아손의 복수를 위하여 이올코스의 왕 펠리아스를 끓는 물에 집어넣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그 이아손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식들과 함께 추방을 당할 처지에서 후회와 함께 새로운 복수를 꾸민다. 복수에 앞서 그녀는 불행을 당하고 나서야 고향에 머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되새기며,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녀는 코린토스를 방문한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에게 제안을 하여 자신을 받아달라고 한다. 그녀는 아이게우스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리고 아테네로 망명하여 자식이 없던 그에게 아이들을 낳아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이에 아이게우스는 그녀가 망명해 오면 받아주겠다고 신들의 이름으로 약조를 한다.

새로운 여인을 위해서 묵은 인연은 물러서기 마련이며 결국은 남자는 과거의 이웃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이아손은 메데이아에게 자신이 그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는데, 그 이유라는 것이 참으로 이기적이고 자의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유모가 하는 말이 적절한 암시가 아닐 수 없다.

 

중용은 그 이름도 월등히 뛰어나지만

그것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최선이로다.

지나친 것은 인간들에게 어떤 이익도 줄 수 없으며,

과욕이 넘쳐 신이 어떤 집에 화를 내시면

더 큰 불행을 가져다주신다.

 

 메데이아. Eugène Delacroix. 1838

메데이아는 절규한다.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변론한다.

"생명과 분별력을 가진 만물 중에 우리 여자들이 가장 비참한 존재예요. 우리는 지참금을 주고 남편을 사서 상전으로 모셔야 해요. 그렇게 얻은 남자가 좋지 않아도 헤어질 수도 없어요. 그것은 불명예이고 남편을 거절하기도 힘들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싫은 기색 없이 결혼의 멍에를 짊어져주면 여자에게는 행복한 일생이라고 한답니다. 남자들은 집안생활에 싫증이 나면 밖에 나가서 풀고 다니지만 여자는 평생 한 사람만 바라보아야 해요. 그러면서 남편들은 말하지요. 자기들은 창을 들고 싸우지만 여자들은 집안에서 안전하게 산다고. 그러나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어디 있겠어요? 나는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세 번 싸움터로 뛰어 드는 것이 낳겠어요."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자신과 딸의 안전을 위해서 메데이아에게 관용을 베풀다 나중에 후회하느니 지금 미움을 받는 것이 낫다며 바로 이 도시를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인 자세, 즉 크레온의 턱을 만지며 두 무릎에 손을 얹고 탄원자의 무릎을 꿇고서, 피난처를 구하고 자식들의 생계를 생각할 수 있도록 단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간청을 한다. 크레온은 남을 봐주다가 일을 그르친 적이 많았음을 되새기며 거절하지만, 간곡히 청을 하는 메데이아에게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만 머물도록 허락했다. 그는 그 사이에 그녀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메데이아는 그 하루 동안에 세 명의 원수, 즉 크레온과 새 신부, 그리고 남편을 죽일 계획에 착수한다. 그녀는 죽일 방법이 너무도 많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은 독약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고, 자신의 안전한 피난처만 확보한다면 바로 실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마법의 여신 헤카테를 부르며 결심을 굳힌다. 그렇게 그녀는 시지포스의 후손과 이아손의 결혼으로 웃음거리가 안 되기 위하여, 그리고 아는 것도 많은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그리고 여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일에는 서투르지만 온갖 악한 일에는 가장 영리한 장인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한낮이 되자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찾아와서 추방소식을 알린다. 그녀가 왕가를 험담하고 자신의 결혼을 비난하여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서, 재산을 나누어 주고 궁핍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메데이아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며 자신이 이렇게 당할 이유가 없다고 악을 썼다.

"나는 아르고 호의 선원을 구해준 사람이에요. 불을 내뿜는 황소에 멍에를 얹도록 일러 준 것이 바로 나이고, 죽음의 밭에 씨를 뿌릴 때도 방법을 일러주었고 잠도 안자는 용을 퇴치하여 황금양모피를 가져다주게 한 것도 나예요.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내 집조차 버리고 지혜보다도 사랑에 이끌려 이올코스로 가게 되었어요. 또 당신의 복수를 위해 펠리아스를 그의 딸들의 손을 빌려 가장 비참하게 죽게 했으며, 신들이 점지한 운명을 거스르면서 당신의 아버지 아이손을 젊게 회춘시킨 것도 저예요. 이 모든 것이 오직 당신을 위해서였는데, 악당 같은 당신은 나를 배신하고 새장가를 들다니! 그리고 나는 당신을 위해 자식까지 낳아주었어요. 자식이라도 못 낳았으면 당신이 새장가를 간다한들 왜 막겠어요? 당신의 욕망은 용서받지 못하고 혼인의 서약을 깨뜨린 마당에 내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어요. 나는 갈 데도 없고 고향에 미움을 샀고 모두가 당신 때문에 내 적이 되었어요. 이렇게 가련한 여인을 혼자 아이들만 데리고 추방시키다니, 당신을 구해준 내가 거지꼴로 어디를 가야 한다는 말입니까?"

 

 비탄에 잠긴 메데이아. Anselm Feuerbach. 1873. 

그러자 아이손은 오히려 메데이아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궁색한 논리를 늘어놓는다.

"나는 그만 아프로디테의 본능과 에로스의 피할 수 없는 화살을 맞은 것 뿐이오. 어디서 당신이 나를 도와주었든 그것은 고마운 일이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는 그대에게 주었다는 것도 알기 바라오. 당신은 야만족의 나라대신 헬라스(그리스) 땅에서 살게 되었소. 그리해서 정의가 무엇인지 알았으며, 폭력보다 법을 사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소. 그리고 모든 헬라스 인들이 당신이 영리한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명성을 얻게 되었소. 만일 당신이 콜키스에 있었다면 그저 평범하게 살아갔을 것이지만 그러나 당신은 분명 이름을 날렸소. 그리고 헤어날 길 없는 고생보따리를 잔뜩 들고 이올코스로 왔었는데, 추방자인 나에게 공주를 주겠다니 이런 횡재가 어디 있겠소? 이는 나와 내 자식들에게 베푼 호의이고, 우리가 잘살고 궁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오. 가난한 사람은 친구들도 모두 피해버린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소. 나는 당신이 싫증난 것도 아니고, 새장가를 들고 싶어 안달이 난 것도 아니라오. 당신네 여자들은 결혼생활만 원만하면 다 되는 줄 아는데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식을 낳을 수만 있다면 여자 같은 것은 없어도 좋을 것이라오. 그러면 인간의 불행도 없어지련만!"

이런 말로 횡설수설 장광설을 늘어놓자 메데이아가 말했다.

"악당주제에 말만 그럴싸하게 늘어놓는군요. 핑계와 교묘한 말만 늘어놓지 말고, 당신이 정말로 악당이 아니라면 가족인 내게 비밀로 하지 말고 가장 먼저 나를 설득하고 결혼을 했어야죠? 오히려 당신은 이제 와서 야만족 여자가 당신에게 별로 노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당신이 주는 재물도 고통만 안겨주고 마음만 갉아먹는 것이니 필요 없어요. 악당의 선물은 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메데이아는 단호하게 이아손을 내몰았다. 이아손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고는 집을 나갔다.

한편 델포이의 신탁을 받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배를 타고 가다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가 코린토스에 들렀다. 그래서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를 만나러 가서 도움을 청했다. 메데이아는 왜 신탁소에 갔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가 어떻게 해야 자식이 생길지 물었고, 신의 숙명과 결혼의 멍에로 자식이 없었기에 아폴론의 지혜를 구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이게우스는 신탁의 답변이 선조들의 화로로 돌아가기 전에는 가죽부대의 툭 튀어나온 발을 풀지 말라고 하였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그 말뜻을 해석하려고 자신과 절친한 동무인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에게 의논하려고 가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메데이아는 자신은 남편의 배신으로 내일이면 추방된다는 것과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쫒겨 나는 그녀를 수수방관하지 말고 그의 나라에서 받아주기를 수염과 두 무릎을 붙잡고 탄원자로서 간청했다. 그리하면 자신이 그의 자식을 낳아주겠다고 했다. 자신이 바로 그러한 약을 알고 있는 장본인으로 자신을 받아들이면 횡재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메데이아. Frederick Sandys

아이게우스는 자식을 낳아주겠다는 유혹과 그녀의 미모에 이끌려 호의를 베풀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직접 데려가서 이방인들에게 비난받을 수는 없으니, 메데이아가 제 발로 자기에게 찾아올 것을 당부했다. 그러자 그녀는 아이게우스에게 신들을 불러서 자신을 내쫒지 않을 것과 누군가 데려가려고 해도 내주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하게 했다.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의 도움으로 그의 계획이 궤도에 올랐음을 알았다.

아이게우스와 헤어져 돌아온 메데이아는 하인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빌고 순순히 남편의 뜻에 따르겠노라며 이아손에게 다시 한 번 집으로 와달라고 전하였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자신이 생각을 잘못했으며, 공주와의 결혼은 잘된 일이고, 이렇게 된 마당에 자식들을 이곳에 머물게 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며, 자기 자식들에게 곱게 짠 황금 옷과 두드려 만든 황금 머리띠를 공주에게 선물로 들고 가게 해야겠다고 그림을 그렸다. 공주가 장신구를 받아서 몸에 두르면 비참하게 죽을 것이고 그녀를 만지는 사람도 마찬가지 운명이 될 것이었다. 그녀는 거기에 독약을 바를 예정이었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자식들을 죽여서 남편에게 씨를 말릴 예정이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이 나라를 떠날 것이었다.

이아손이 전언을 받고 오자 이전과 달리 말을 바꾸어 말했다.

"나는 바보같이 호의를 지닌 이 왕국에 화를 내고 미친 듯이 대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왕국의 공주가 우리 자식들의 형제를 낳아주면 내게 가장 유익한 일인데 그만 화부터 내고 말았네요. 추방자인 우리를 받아주고 친구가 되겠다는데, 나는 질투에 눈멀어 그녀를 욕했으니 어리석은 것은 저예요. 오히려 당신의 새 신부를 시중들고 나만 양보하면 되는 일이었어요. 그러니 우리의 아이들과 함께 새엄마에게 가서 절하고 인사를 드리면서 선물을 바치는 것이 합당한 처사가 아닐까 생각이 되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불러 아버지와 함께 가서 공주에게 축하의 선물을 바치라고 하였다. 그러자 누그러진 아이손은 남편이 새장가를 가니 화가 나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겠냐며 마음을 눅이고는 서로 화해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아이손은 자식들이 코린토스에서 살면서 새로 태어날 형제들과 더불어 제 일인자가 되고 장부가 되게 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리고 애들은 잘 보살필 터이니 염려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계획이 실행되어 가자 메데이아는 아이들의 불행을 걱정하였다. 아이들을 잃고 비참하게 산다는 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아뜩하였다. 왜 애들의 불행을 담보로 아버지에게 고통을 안겨야 하며 그 일로 자신의 고통이 두 배가 되는 것을 자초해야 하는지 자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원수를 응징하지 않고 웃음꺼리가 되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이미 운명은 그 아이들을 죽게 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자신의 손으로 죽여서 원수들에게 아이들의 숨을 끊는 일을 넘겨주는 일이 없어야 된다고 다짐했다.

코린토스의 여인인 유모는, 옆에서 그런 메데이아를 보며 동정어린 시선으로 말했다.

"나는 심오한 사색의 길을 수없이 걸어보면서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문제를 알아보려 했지요. 지혜를 가르쳐주시는 무사이(뮤즈) 여신은 전부는 아니어도 가끔은 우리에게도 찾아 오시니까요. 그렇게 오신 여신은 알려주시기를, 자식을 한 번도 낳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식을 낳아 본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자식이 없으면 자식이 기쁨이 될지 슬픔이 될지 알바가 아니니 말이에요. 그러니 수많은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히 살아간답니다. 그러나 집안에 자식의 무리가 생기면 평생 근심에 시달리게 된답니다. 어찌해야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할까, 어떻게 다음에 자녀들의 생계수단을 물려줄까, 또 그렇게 애쓴다고 자식이 착한 사람이 될지 악한 사람이 될지 알 수도 없어요. 다행이 재산을 넉넉히 모으고 자식들도 무럭무럭 자라나 훌륭히 성장해도 죽음이 앞서서 채 가버린다면 인간의 고통 중 가장 쓰라린 고통이에요. 이러니 자식은 인간들에게 무슨 덕이 되겠어요?"

 

 메데이아. Evelyn De Morgan

아이손은 두 아들과 함께 선물을 들고 공주에게 찾아갔다. 공주는 이아손이 자식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못 마땅히 여겼다. 그러나 이아손이 아내가 마음을 고쳐먹었으니 아이들을 추방에서 풀어달라고 그녀의 아버지에게 간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 증표로 메데이아가 선물을 보내왔으니 마음을 풀라고 하였다.

그녀는 장신구를 보자 버티지 못하고 새 남편에게 모든 것을 승낙했다. 그리고는 이아손과 그 자식들이 채 문을 나서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오색찬란한 옷과 황금 머리띠를 두르고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선물에 정신이 빼앗겨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좋아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을 때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다.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사지가 떨면서 뒤로 비틀거렸고, 의자로 비스듬히 쓰러졌다. 이내 입에서는 흰 거품이 나오고 눈알이 뒤집히더니 얼굴의 핏기가 사라지면서 허옇게 변했다.

늙은 하녀는 놀라서 그녀의 아버지와 이아손에게 신부의 파멸을 알리러 간 사이, 그녀에게는 황금머리띠에서 불길이 흘러내렸고, 옷은 흰 살점을 파먹어 들어갔다. 그녀는 화염에서 도망치려고 의자에서 일어섰으나 그녀가 움직일수록 불길은 더 세게 피어올랐다.

그녀의 아버지가 달려왔을 때 공주는 피가 흘러 불과 뒤섞이고 독이 송진처럼 얼굴과 살을 뼈에서 떨어지게 하니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버지는 그녀를 끌어안고 통공하며 포옹하고 입을 맞추자 그도 그녀의 옷에 달라붙어 늙은 살이 찢어졌고 독이 몸에 퍼지면서 살들이 흘러내렸다.

부와 권력은 남들보다 행운아를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세상에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 장면에서 드러났다.

자식들이 돌아오자 메데이아는 칼을 들고 기다리다가 제 몸에서 나온 혈육을 죽였다. 아이손은 공주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왕가의 후손들로부터 아들들을 구하기 위해 메데이아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가자 메데이아는 이미 죽은 아들들을 그녀의 할아버지 헬리오스의 선물인 용들이 이끄는 수레에 태우고 지붕으로 막 올라간 상태였다. 이아손은 그녀를 보고 소리쳤다.

"감히 제 자식을 죽이고 나까지 파멸시키다니, 나는 야만족의 나라에서 큰 재앙을 헬라스로 데려왔구나! 당신은 여인이 아니라 암사자구려. 수천가지 욕설로도 감당이 안 될 뻔뻔스런 인간이여! 모든 인간에게 가장 미움 받는 여인이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운명을 슬퍼하는 것일 뿐 새장가도 못가고 내가 낳아 기른 자식들에게 작별인사도 못하고 보내다니! 내가 그 시신을 묻어주고 곡이나 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이렇게 절규하자 메데이아는 말했다.

"나와의 결혼을 배신한 당신과 공주와 결혼을 주선한 크레온이 나를 추방하고도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정의가 어디에 있단 말이오. 남편의 새장가가 여인에게 작은 고통이란 말이오? 나는 애들을 아크로폴리스의 헤라신전에 가져가 내 손으로 묻어줄 것이라오. 그리고 나는 판디온의 아이게우스에게로 갈 것이오. 당신은 이렇게 만든 아르고 호의 보복으로 머리가 박살나서 악인답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시오. 그러나 그전에 결혼의 배신이 주는 쓰라린 종말을 먼저 맛보시오."

그리고는 이아손의 저주의 말과 아이들을 돌려달라는 애처로운 탄원을 뒤로 한 채 수레를 타고 날아서 가버렸다. 이아손은 뒷날 메데이아의 저주처럼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 해안에 끌어올려져 있던 고물 아르고 호의 밑에서 자다가 배 선체가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그 파편에 맞아 죽었다.

 

메데이아. Henri Klagmann. 1868.

 

보통은 남자들의 배반이 문제가 많이 되지만, 요즘은 반대로 여자가 아이들을 내던지고 다른 남자를 찾아 가거나 바람처럼 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녀들은 ‘나도 더 늦기 전에 애들에게 희생되는 삶보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한다. 당당한건지 뻔뻔한건지, 아무튼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가상한 의지보다는, 아이들과 남겨진 사람의 상처는 개의치 않는 후안무치가 이아손을 닮았다.

배반의 남녀관계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종종 치정과 배반의 복수극은 모두에게 피폐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그런데 메데이아의 복수극은 자신의 자식을 죽이고 나서 끝내지만, 다시 아테네와 콜키스로 가서 새로운 집념의 부활을 도모한다. 사랑의 배반에 복수한 자의 후반전은 성공한 셈이다.

아테네로 달아난 메데이아를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이게우스 1세가 받아주었는데, 환대에 그치지 않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고, 메데이아는 그에게 아들 메도스를 낳아 주었다.

마침 아이게우스 1세의 아들인 테세우스는 이곳저곳을 평정하고 아테나이로 입성하였다. 메데이아는 자신의 아들이 테세우스의 등장으로 지위가 위험해지자 그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아버지인 아이게우스는 메데이아의 주문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를 죽이려고 독약을 준비하여 아버지로 하여금 술잔에 독약을 넣어 죽이라고 하였다. 이에 아이게우스는 아내의 책략에 넘어가 적으로 알고 술잔을 손수 건넸으나 그가 찬 칼집의 문장이 자신의 가문 것임을 알고 그의 입에서 독이 든 술잔을 쳐냈다.

일이 실패하자 메데이아는 아들인 메도스와 함께 아테네를 떠난다.

메데이아는 여기저기 망명 생활을 하다가 이후에 고향인 콜키스로 몰래 돌아갔는데, 그때는 숙부인 페르세스가 아버지 아이에테스를 몰아내고 콜키스를 장악하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그를 죽이고 아버지의 왕위를 되찾게 해 준다. 그리고 후에 그녀의 아들인 메도스가 왕위를 이었다.

메데스는 수많은 야만인들을 정복했고 자신의 나라를 메디아(Media)라고 하였다. 그는 인도를 치러갔다가 거기서 죽었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에서 죽었으며, 사후에 죽은 자들이 머무르는 축복의 땅 엘리시움에서 영웅 아킬레우스와 맺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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