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렴의 대명사 ‘맹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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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청렴의 대명사 ‘맹사성’
  • 강유미
  • 승인 2017.05.0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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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미 제주시 도시재생과 광고물담당

강유미 제주시 도시재생과 광고물담당
맹사성(孟思誠 1360~1430)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자 청백리 재상이다.

본관은 충청남도 아산 신창이며, 자는 자명(自明)이며 호는 고불(古佛)이다. 세종 13년에 좌의정이 되어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청백한 선비로도 일화를 남겼다.

맹사성은 사람이 소탈하고 엄하지 않아 비록 벼슬이 낮은 사람이 찾아와도 반드시 공복을 갖추고 대문 밖에 나가 맞아들여 윗자리에 앉히고 돌아갈 때에도 역시 공손하게 배웅하여 손님이 말을 탄 뒤에야 들어왔다고 한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고 청백하여 식량은 늘 녹미(조정에서 봉급으로 주는 쌀)로 하였고 소를 타고 다니는 정승으로도 유명했다. 벼슬에 있을 적에는 관료들이 타고 다니는 가마를 타지 않고 소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맹사성은 온양에 있는 부친을 뵈러 가는 길에도 각 고을의 관아를 들르지 않고 언제나 간소하게 다니며 소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두 고을의 수령이 그가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지만 정승은 오지 않고 남루한 차림의 소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수령이 하인으로 하여금 그를 불러 꾸짖게 했다. 나중에 그가 맹사성임을 알고 황급히 도망치다가 관인을 연못에 빠뜨려 훗날 이 연못을 ‘인침연(印沈淵)’ 이라고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청렴결백하고 절조를 지키는 인품으로 공평무사한 일처리를 하였고 민정시찰을 통해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애민정치를 적극 실천하였다.

그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소. 내 비록 벼슬이 정승이지만 만백성이 내 벗이 아니겠소’

물질문명 및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고 있는 요즘 같은 때에 평생을 검소하고 청렴하게 사신 맹사성의 효성과 청백리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요즘 공직 내부에 갖가지 비리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 공직자들 스스로 청렴을 실천하는 의지가 중요하며 공과 사를 구분하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할 때 청렴한 공직사회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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