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1만평 개척..화순리 김광종영세불망비(치수비)
상태바
[향토문화]1만평 개척..화순리 김광종영세불망비(치수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6.02 07: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광종 사재로 '바위 뚫고 처음 농업용수 개발,관개농업 개척자'


화순리 김광종영세불망비(치수비)


김광종영세불망비 金光宗永世不忘碑
위치 ; 안덕면 화순리 황개천 속칭 도체비빌레. 화순에서 동쪽으로 마을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심하게 꺾이는 골목으로 500여m 들어가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숲길 옆에 있다. 안내자 없이는 찾기가 힘든 곳이다.
시대 ; 조선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김광종은 한경면 저지리 사람으로 안덕면 화순리 황개천 바위를 뚫고 화순리 넓은 땅에 물을 끌어다 논밭을 만들어 논농사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즉, 1832년(순조 32) 3월부터 1841년(헌종7) 9월까지 약 10년에 걸쳐, 황개천 바위를 뚫고 물을 끌어들여 1만여평의 땅을 개척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경비를 오직 자신의 재산으로 마련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고가 '중국 한(漢)나라의 소신(召信)의 선정(善政)과 비길 만하다' 하여 이민(里民)들이 그를 전조(田祖)로 모셔 제사 지내는 한편, 1938년 5월 화순리 답회(畓會)가 후손들과 협의하여 비를 세운 것이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153쪽)

김광종은 제주향교지에도 이름이 남아 있는데 〈바위를 뚫고 처음으로 농업용수를 개발한 관개농업의 개척자이다.

그는 순조 32년(1832) 사재를 털어 수로공사를 착공하고 10년만에 1100미터의 용수로를 완공, 오만평을 개답(開畓)하였다.〉라 쓰고 있다.

같은 내용의 '永世不忘碑'가 두 개 서 있는데, 좀 작은 비석(사진 위)은 1938년 세운 것으로 앞면에는 가운데 큰 글씨로 '金海金光宗永世不忘碑' 작은 글씨로 '穿山引水 多費己財 漢西開始 以裕後世 食我香稻 功擬召父 賴公德基 歲祈田祖'라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가운데 조금 큰 글씨로 '昭和十三年五月五日和順畓會建設' 좌우에 작은 글씨로 '住楮旨里后曾孫龍仙良順世閏 玄孫斗炳, 會首 梁時權 發起 金雲玉 誌 姜師完 贊 池赫重'이라 되어 있다.

비신의 높이는 78, 상단 너비 44, 하단 39, 두께 16.5이며, 비면의 상단 중앙 부분은 약간 깨어져 떨어졌다. 조금 큰 비석(아래 사진)은 김광종의 후손들이 앞의 비석을 보완하기 위하여 1960년대(?)에 세운 것으로 '通政大夫金公光宗永世不忘碑'라고 되어 있고 한글로 행적을 소개하였다.

이 비석들이 있는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면 당시 수로 공사를 했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