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평생 수절..곽지리 김천덕 열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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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평생 수절..곽지리 김천덕 열녀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6.08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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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깎고 죽기를 각오하자 부친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아


곽지리 김천덕 열녀비 金天德烈女碑

 


김천덕 열녀비 金天德烈女碑
위치 ; 애월읍 곽지리 곽지리사무소
시대 ; 조선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 곽지리_김천덕열녀비(94)

▲ 곽지리_김천덕열녀비(98)

남사록에 보면 김천덕(金天德)은 곽지리 사람으로 재색에 뛰어났는데 사노(私奴) 연근(蓮根)과 혼인하여 20여년을 함께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공물 수운(貢物輸運)하는 배를 타고 육지로 떠나다가 화탈(火脫)섬 근해에서 침몰하여 돌아오지 못하였다.

천덕은 3년 동안 남편의 궤연(凡筵) 앞에 상식을 올리며 눈물로 지새웠다. 그 후 적객 한 사람이 그의 미모를 탐내어 여러모로 설득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관가에까지 끌려가서 장(杖) 80을 맞았는데 이 때 천덕은 옷 1벌, 소 1마리, 무명 30단을 바쳐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또 애월의 여수(旅首)된 자가 호세를 이용 그녀의 부친으로부터 허혼 약속을 받고 마침내 화촉을 올리게 되자 집을 부수고 목을 매어 죽으려고 했는데 가족들에게 발견되어 살아났다.

그후도 머리를 깎고 파리한 옷을 입은 채 죽기를 각오했으므로 부친도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60세가 넘도록 평생 수절하였다.

빗돌을 보면 한 덩이로 된 제줏돌이고, 아랫부분은 반원형 갓돌처럼 되어 있다. 비신의 높이는 88cm, 너비 윗부분 41cm, 아랫부분 38cm, 두께는 윗부분 21cm, 아랫부분 17cm이다.

비의 앞면에는 두 줄로 【烈女私婢金天德之閭】라고 새겨 있고, 오른쪽에 【萬曆五年命旌】 왼쪽에는 【同治二年改以石】 그리고 댓돌에는 서기 1974년 11월 3일이라 새겨져 있다.

즉, 선조10년(1577)에 정각(旌閣)을 세우고 철종14년(1863)에 개건하고 1974년에 옮겼다는 말이다.(제주의 문화재 318쪽) 1974년에는 곽금초등학교 교정에 옮겨졌었으나 그 후 얼마 안 있어 곽지어린이집 앞으로 옮겼다가(위 사진) 1998년 지금의 위치인 이사무소로 옮겨 세워졌다.(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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