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남에게도 인자한..봉성리 구몰동 현원상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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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남에게도 인자한..봉성리 구몰동 현원상효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6.27 0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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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히 산장(山獐) 한 마리가 와서 무덤에 엎드려..'


봉성리 구몰동 현원상효자비 玄遠祥孝子碑

 
현원상효자비 玄遠祥孝子碑
위치 ; 애월읍 봉성리 구몰동에서 봉성리로 가는 길목
시대 ; 조선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유형 ; 효자비

 

▲ 봉성리_구몰동_현원상효자비

연주 현씨 가선대부 원상은 조선 숙종39년(계사 1713년) 12월 9일 어도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덕완(德完)이며 모친은 흥양송씨(興陽宋氏)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하되 조석으로 시간을 어기지 않고 부모님께 문안을 드렸으며,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 없이 잘 받들었다.

부모의 병환 때에는 정성을 다하여 약시중을 들었으며, 심지어는 대변의 맛을 보아 병 증세를 진찰하였다고 한다.

주야 근심걱정으로 천지신명께 부모의 병이 쾌유하기를 기도하였으나 불행하게도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니 슬픈 마음 비할 데 없고 원통한 나머지 실신하였다.

장례식이 끝난 후 무덤 곁에 초가를 짓고 살면서 3년간이나 한결같이 묘소를 살피고 삭망제사에 목욕재계한 후 정성을 다하여 제를 지냈다.

홀연히 일기가 불순하여 삭망에 쓸 희생물을 얻지 못하여 하늘을 우러러 슬퍼하고 있었는데 돌연히 산장(山獐) 한 마리가 와서 무덤에 엎드렸다. 공(公)은 그것을 잡아 삭망에 바쳤다.

그것을 안 당시 사람들이 모두 탄복하기를 '공의 정성은 참으로 천지신명이 감동한 것이라' 하였다.

공은 재산이 풍부해서 항시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가난한 백성을 구제하니 아사(餓死)를 면했으며 남에 대한 인자한 마음과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모두 갖추어졌다고 할 것이다.

순종22년 목사(이원팔李元八)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조정에 알리니 표창하고 從二品인 가선대부 벼슬을 주었으며 정조21년 4월 22일에 세상을 떠나니 나이가 85세였다.

이 기록은 [삼강록]과 [제주도지]에 있다.(애월읍지 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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