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섬을 잇는 첫 다리..영흥리(묵리) 추자다리(楸子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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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섬을 잇는 첫 다리..영흥리(묵리) 추자다리(楸子橋)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7.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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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추자 주민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인도로 고안된 것


영흥리(묵리) 추자다리(楸子橋)

 
추자면 추자다리(楸子橋)
위치 ; 추자면 상하추자간
시대 ; 대한민국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유형 ; 교각
관련 사건 ; 추자교 붕괴사건

 

▲ 영흥리_추자다리(1999).

▲ 추자_연륙교

상추자와 하추자를 잇는 다리로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2년이었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는 최초의 것이라고 한다.

20년의 수령을 넘긴 데다 처음 만들 때는 차량통행용이 아니라 상·하추자 주민들이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인도로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추자도에 도로가 확장되자 자동차가 도입되고 1987년부터 차량통행이 본격화되면서 다리를 견딜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다리는 1989년 서울 소재 '가야기술단'의 안전진단 용역 결과 '상부 구조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 빔이 파손되어 새 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진단이 내려졌었고, 북제주군은 「4.5톤 이상 차량 통행 금지」간판을 세웠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으며, 평소 25인승 승합차 2대가 30여명의 학생들을 싣고 매일 통행하고 있었다.

당시 하추자에는 화물차 27대, 승합차 5대, 승용차 9대와 공사용 15톤 덤프트럭 2대, 포크레인 2대 등이 있었다.


북제주군은 1992년 10월에 들어서야 새 다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다리를 다시 만들기 위해서 공사를 진행하던 중 1993년 4월 11일 시멘트를 가득 싣고 질주하던 15톤 중기의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상판 슬라브와 빔 30m 가량이 붕괴됐다.

다리 붕괴와 함께 추락한 중기는 이미 6개월 전에 시작된 신교량 건설을 위해 1개월 전부터 모래 자갈 등을 싣고 14회를 운행했으며, 사고 당일 오전에도 15톤 무게의 시멘트를 2회나 운반했었다. 이 사고로 현장 감독과 현장 직원 등 2인이 숨졌다.


다리가 무너지자 사람들이 우선 다닐 수 있게 부산에서 철다리를 가져와 임시 가교를 설치하기로 했으나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결국 이 기간 동안 주민들은 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철교가 설 때까지 제주502호, 제주202호, 해운호, 페리호 등을 상시 투입하여 학생과 주민들을 수송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가 내릴 때에는 행정선도 결항되어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다.


사업 착수 2년 6개월, 다리 붕괴 2년만에 1995년 5월 3일 준공식을 가진 새로 만들어진 이 다리의 길이는 212.35m, 폭 8.6m로서 통과 하중은 32.4톤이다.(제민일보 1997년 8월 25일)


묵은 다리는 1996년 9월부터 철거공사에 들어가 1997년 11월에 마쳤는데, 철거부재는 인공어초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양쪽 시작 부분이었던 교대(橋臺) 부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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