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돌탑,,성읍2리 구렁팟 까마귓동산(방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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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돌탑,,성읍2리 구렁팟 까마귓동산(방사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8.02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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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를 보강하고 도기(盜氣)를 막는 목적..'도둑없는 마을 지정돼'


성읍2리 구렁팟 까마귓동산(방사탑)


구렁팟 까마귓동산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유형 ; 방사용 탑
시대 ; 조선
위치 ; 표선면 성읍2리(구렁팟)

 

 

 

 

마을 진입로를 따라 100여m쯤 가면 동북쪽으로 난 좁은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가면 세갈래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또 세갈래길이 나온다.

그곳에서 동북쪽에 방사탑이 있다. 이 돌탑을 마을 사람들은 까마귓동산이라고 한다.

높이 약 3m인 이 돌탑은 현무암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탑은 가장 안정되고 세련된 원뿔 형태이며, 쌓음 방식은 자유분방한 허튼층쌓기이며 쌓음돌 사이에 잔돌끼움을 하고 있다.

탑 속은 크고작은 잡석을 이용하여 탑돌을 누르듯이 채우는 잡석채움을 하였다. 탑 위는 약간 올라가듯이 볼록한 모양인데 가운데에는 높이 60cm쯤 되는 길쭉한 돌을 세워 놓았다.

이 긴 돌은 원뿔모양으로 올라가다가 자른듯이 처리된 돌탑의 둔함을 없애고 균형을 잡아 준다.

돌탑이 세워진 위치는 마을에서 가장 허(虛)하고 나쁜 것이 온다고 생각되는 지경이다. 탑의 동쪽으로는 '물골'이라는 하천 비슷한 골이 있어서 虛하여 액(厄)이 들어오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마을의 동쪽 지경에는 속칭 '도둑동산'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 동산의 기(氣)가 마을에 들면 도둑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탑은 虛를 보강하고 도기(盜氣)를 막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마을은 '도둑 없는 마을'로 지정되었다.

탑의 축조 시기는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고려말.조선초에 마을의 동쪽 지경인 '할미가름'에서 살던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설촌된 지 오래지 않은 조선초.중기 경에 쌓아진 것으로 유추할 뿐이다.

이 탑은 쌓음 방식의 묘미인지 아직껏 한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는 탑을 보수했다거나 탑을 위해 어떻게 했다는 기억이 없다.

오히려 아들 없는 집에서 탑 위에 돌을 세워 놓으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가끔 돌을 세워 놓았던 일이 있다고 하며 그렇게 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는 제주도의 다른 돌탑(방사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이한 경우이다.

또한 이 마을에서는 탑이라 하지 않고 '까마귓동산'이라고 한다. 까마귀가 잘 앉는 나지막한 구릉인 동산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왜 동산으로 불려질까?

이것은 마을 사람들의 정신 세계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풍수지리학상 마을의 서쪽에 있는 개오름 능선인 포젯동산에서 보면 마을이 제비집형국이라 한다.

마치 제비집처럼 마을의 지세가 이루어졌다는 데서 붙여진 것이다. 이 제비집형국은 오목하여 여장남단(女長男短)의 명(命)을 이루어 여자는 오래 살고 남자는 귀하다고 한다.

이를 까마귓동산인 탑이 막아서 입명(立命)을 이루게 한다는 것이다.

구렁팟 돌탑은 다른 마을의 탑처럼 짝을 이루거나 여러 개 중의 하나가 아니라 1기만 외롭게 서 있다.

그러면서 虛.厄.盜氣.短命(허.액.도기.단명)을 막고 아들도 얻어 줘야 하는 역할 등 해야 하는 할 일이 많은 탑이다. (4328년7월12일 제민일보 '제주도의 석조물')

위 사진은 1996년, 아래 사진은 2008년에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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