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마을수호 현씨신..세화1리 서화리한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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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마을수호 현씨신..세화1리 서화리한집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8.06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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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당에서 내가 차지할 마을을 찾아 혈을 밟아 내려왔노라'


세화1리 서화리한집당

 
세화리한집당
위치 ; 표선면 세화1리 화산초등학교 북쪽 400여m 지점
시대 ; 조선 -
유형 ; 민간신앙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웃송당신 금백주와 알송당신 소천국 사이의 세째 아들이 표선리에 정착했는데 그의 둘째 아들이 세화리에 정착할 때 현씨 영감이 처음 맞이했으므로 현씨신이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웃송당신 금백주와 알송당신 소천국 사이에 아들딸이 많이 있었는데 한 집에 모두 모여 살 수가 없어 서로 뿔뿔이 헤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 중 셋째아들이 표선리에 와서 좌정하여 당신이 되었다.

이 표선리 당신은 또 아들이 셋인데 큰아들은 하천리 솔대왓에 좌정하여 당신이 되고 셋째아들은 토산리 셋앞빌레에 좌정하여 당신이 되었다.

갈 곳이 없게 된 둘째아들은 산등성이 줄기를 오르내리며 혈이 흘러간 대로 가다가 그 혈이 세화리 당신마루에 떨어져 있음을 알고 그곳에서 쉬면서 퉁소 피리 등 악기를 꺼내어 풍악을 울리며 피로를 풀고 있었다.

이 때 이 마을에 사는 현씨영감이란 사람이 집밖에 나섰다가 이 풍악소리를 듣고 이상하게 여기면서 귀기울여 들어 보니 당신마루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므로 그곳에 가 본 즉 화려한 일산이 쳐져 있고 비상한 인간이 풍악을 치며 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인간인 것 같지 않고 이는 신령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그 앞에 가서 엎드렸다. 그러자
"너는 귀신이냐, 생인이냐? 귀신이거든 바삐 나가고 생인이거든 바삐 들어오라."
"생인이옵니다. 玄氏가 되옵니다."


"하, 우리 종씨로구나. 나도 현씨노라."
"어찌하여 여기엘 앉으셨습니까?"


"나는 생인이 아니라 귀신이노라."
"그러면 저희 집으로 청하면 어찌하오리까?"


"안 된다. 사람의 집으로 가면 개 소리도 듣기 싫고 닭 우는 소리도 듣기 싫다. 여기로 술상이나 한 상 차려다 주면 좋겠다."


이 말에 현씨영감은 집으로 달려가 술상을 차려 왔다. 현씨신은 술상을 받고 마을의 사정을 물었다.


"이 마을에는 몇 성바지나 사는가?"
"예, 네 성바지가 삽니다. 현씨, 광산김씨, 정씨, 강씨올시다."


"그러면 그 네 성바지를 모두 상뒷동산으로 모이도록 하라."
이래서 네 성바지가 모두 모여와서 엎드렸다. 현씨신은 자기가 이곳에 온 사연을 말하였다.


"나는 송당에서 내가 차지할 마을을 찾아 혈을 밟아 내려왔노라. 혈이 바로 이자리에 떨어졌으니 내가 여기에 좌정해서 너희들 집안의 재액을 막아 주겠노라. 그러니 너희들은 이 상뒷동산 왼쪽홈에 터를 닦아서 내가 살 집을 지어 달라."


군중들은 급시에 돌을 다듬고 나무를 베어 집을 한 채 지어 놓았다. 그랬더니 그 신은


"좋다. 그러면 너희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에 과세제(過歲祭)를 나에게 올리고 정월 보름날에는 액 궂은 자 액을 막아 달라고 제를 올려라. 그러면 내가 이 상뒷동산에 서서 현씨영감에게 현몽을 줘서 모든 액을 막아 주마."


이렇게 하여 도내오름(세화리)에서는 현씨신을 극진히 모시게 되었고,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본향당이 이루어지게 되었다.(표선면향토사 90-91쪽)


당신은 마을 토주관으로 생산·물고·호적·장적을 차지하고 있다. 당의 형태는 당우형·석원형·위패형·전답형이며, '서화리한집'의 당신은 '본향한집' 또는 '상오보름웃도'라 한다.

제일은 초하루 보름인데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매달 제일을 지켰었지만 요즘은 그렇게까지 정성을 기울이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당에 갈 때에는 돼지고기를 먹거나 제물로 가져가지 않는다. 대신 달걀이나 닭을 올리며, 또 정월초에 신과세제를 지내야 하기 때문에 설날은 물론 정월 보름까지도 돼지고기를 제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매인심방은 신씨→신문선씨 부모→신문선으로 이어졌다. 현씨가 상단궐이며, 일제시대에는 면서기가 당을 불질렀다가 죽었다고 한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62쪽) 현재 당맨심방은 토산리에 거주하는 현계춘씨라고 한다.

당의 위치도 일제시대까지는 현재 위치에서 한참 동쪽으로 떨어진 '당신마루'(당이 있는 동산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에 있었다고 하는데 일제시대 직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하며 신의 유물이라고 하는 것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해 다녔다고 하는데 그 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른다고 한다.(2007년 3월 26일 세화1리 거주 현양호씨와 면담)


당집 안에는 가로 70cm 높이 50cm 정도 되는 위패함이 있는데 그 안에 《細花里 本鄕守護神之位》라고 쓰인 작은 위패와 《們局省常衛撥蔭祐都守鄕大神之位》라고 쓰인 조금 큰 위패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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