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돌로 된 정문..귀덕1리 김명집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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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돌로 된 정문..귀덕1리 김명집효자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9.13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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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품어 봉양하듯(懷橘之奉이라는 중국 고사) 극진


귀덕1리 김명집효자비


귀덕리 효자김명집지려(孝子金明集之閭)
위치 ; 한림읍 귀덕리 신서동
시대 ; 조선
유형 ; 효자비

 
 

 

귀덕리 신서동 속칭 '웃세시멀'이라 부르는 마을에 있는 효자비이다. 90cm 가량 되는 비석에는 비각이 씌워져 있고 그 앞에는 돌로 된 정문(旌門)이 세워져 있다.

한림읍 지역에는 이와 같이 돌로 정문을 세운 효자.열녀비를 많이 볼 수 있다.

비의 앞면에는 "孝子金明集之閭"라는 큰 글씨 오른쪽에 "道光辛丑后八十四年甲子竪"(도광신축후84년갑자수)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慶州后人曾自幼穉之稟性至孝懷橘之奉扇枕之誠□不用極而其父病篤殆至氣絶斷其左指以血和脈因得回甦久得生存之黨欽仰面里咸嘆去道光辛丑具由牒報于本牧則嘉其卓行不送完文烟戶雜役幷傾世遠年久念其泯跡玆立棹楔焉"("경주후인증자유치지품성지효회귤지봉선침지성□불용극이기부병독태지기절단기좌지이혈화맥인득회소구득생존지당흠앙면리함탄거도광신축구유첩보우본목칙가기탁행불송완문연호잡역병경세원연구념기민적자립도설언")라고 새겨져 있다.

대체적인 내용은

"공의 본관은 경주인데 어려서부터 품성이 효성스러워 귤을 품어 봉양하듯(懷橘之奉이라는 중국 고사) 극진하였는데, 그 부친이 병을 얻어 거의 기절함에 이르자 왼손 손가락을 잘라 약에 화합하여 드렸더니 소생하여 오래 생존하였으므로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감탄하였다.

지난 도광 신축년(헌종7년, 1844)에 면과 마을에서 천거하였더니 본주(제주)목사는 그 뛰어난 행실을 가상히 여겨 호별 부역과 잡역을 면제하였으므로, 세월이 오래되고 자취가 없어질까 하여 정려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 글의 내용으로 보면 이 비석은 효자로 칭송된 당시에 세운 것이 아니고 그로부터 84년이 지난 후(1928)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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