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조간대 우물..귀덕2리 우지연대(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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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조간대 우물..귀덕2리 우지연대(변형)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9.2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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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념물 지정, 1976년 고증 거쳐 복원..기단 만들어


귀덕2리 우지연대(변형)


위치 ; 한림읍 귀덕2리 2977번지. 귀덕2리 장로동. 귀덕1리에서 약간 서쪽으로 인가가 없는 지역으로 가다 일주도로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쪽에 있다.
제주도 기념물 제23-6호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봉수·연대)

 
 

구우면(오늘날의 한림읍과 한경면) 지역의 방어는 명월진에 소속된 도내·만조봉수대와 귀덕·우지·죽도·마두·배령·대포·두모연대가 담당하고 있었다.


『탐라지에는 제주목 안에 있던 일곱 개의 우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우지는 그 중 하나이다. 이 우물은 제주성 서쪽 53리에 있고, 귀덕포는 제주성 서쪽 5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귀덕포에서 서쪽 3리에 우지가 있다는 말이다. 한림읍 귀덕2리 라신동 해운사 앞 해변에 소못이라는 우물은 조간대 상층과 중층 사이에 걸쳐 있다.

가로 1m, 세로 2m 정도의 타원형의 구멍이 나있고, 2m 깊이의 웅덩이에서 물이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소=牛, 못=池라고 번역하여 소못이라 부르고 있으나 원래는 소=沼라고 보는 이도 있다.

깊이 2m의 웅덩이에서 많은 물이 솟는다. 소못은 굼둘에기물이라고도 부른다. 쇠못에서 서쪽으로 400m 지점(한림읍 수원리 용운동)에는 우지포가 있다.


우지연대(牛池烟臺)는 한림읍 귀덕2리 2977번지에 있다. 장로동에서 약간 서쪽으로 인가가 없는 지역으로 가다 일주도로에서 바라보이는 바닷가 쪽에 있다.

주민들은 이 지역을 망밭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지라는 우물(용천수)과 가까운 곳에 있는 연대여서 우지연대 또는 소못연대(쇠못연대)라고도 부른다. 지형이 높고 돌출된 곳에 위치하고 있어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적당하다.


탐라방영총람에 의하면 동쪽으로 도내봉수(직선거리 3.2㎞), 서쪽으로 죽도연대(직선거리 2.3㎞)와 교신하였으며, 소속 煙軍(연군)은 모두 12명으로 되어 있고 매번 2명이 한 조가 되어 5일씩 근무를 했었다.

동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귀덕연대(직선거리 1.2km)가 있는데 더 멀리 있는 도내망과 교신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동쪽으로 애월연대(직선거리 4.5km정도)와 직접 교신하게 되자 귀덕연대는 폐하였다고도 하는데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 연대는 제주도 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되었으며, 1976년 고증을 거쳐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복원된 연대의 모양을 보면 사방을 모두 돌로 쌓아올렸고 위는 평평하게 만들고 층계 오르는 부분 외엔 2자 정도의 벽면과 같은 돌담을 쌓아올려 바람을 막는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지가 경사져 있어 높이 0.5~1.2m의 기단을 쌓았는데 이는 원래는 없던 구조가 복원 과정에서 덧붙여진 것이다. 그 위는 상부 8.5×8.5m, 하부 8.9×8.7m, 높이 2.3×2.7m 크기의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았다. 방호벽은 폭 2m, 높이 0.5m이고, 입구 폭은 1.1m이며 밖으로 돌출시킨 돌계단을 12단 쌓았다.


다른 연대에 비하여 계단 경사가 완만하고 방호벽 또한 폭이 매우 넓다. 축조 방법은 거친돌허튼층쌓기이며, 테두리는 허물어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석(心石)을 2단마다 엇물려 쌓았다.


그러나 복원과정에서 돌이 남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만들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맨 아래에 높이 1m 남짓한 기단부를 만들고 그보다 안쪽으로 연대를 쌓았다.

연대에는 기단이 따로 없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지역 주민의 증언을 들어보면 4.3사건 때까지만 해도 연대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모양은 지금과는 다른 원형(圓形)이었다고 한다.
《작성 041103, 보완 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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