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판 등에다 지고”..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 제주해녀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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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판 등에다 지고”..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 제주해녀관 들어선다”
  • 김태홍
  • 승인 2024.01.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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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 2024년 울릉도 소재 기념관에 연내 설치…국비 1억 3,400만 원 확보’
강승오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 “위대한 제주해녀들 역사적 가치 발굴해 지속적 선양”밝혀

제주해녀들의 억척스런 근성이면 못할 게 없다는 얘기가 요즘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태어나면서부터 억척같은 삶에 길들여진 탓일까. ‘생존’에 초점일 수밖에 없던 숙명에 힘겹거나 슬퍼도 고이 받아들여야 했던 제주해녀. 위안 받아야 할 기구한 운명인데도 자식 걱정에 미안한 마음만 감돌뿐이다.

해녀의 삶이 지겹지도 않은지 남들이 바다에 뛰어들면 따라가게 된다는 제주해녀들은 그날의 배고픔의 서러움을 잊지 못한다.

요즘은 해녀복(수트)에 오리발도 있지만 예전에는 면 옷 하나만 입고 추운 날에도 바다에 들어가는데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 무서워 울기도 했다고 한다.

제주해녀들은 ‘좀녀’, ‘잠수’라고 불려 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존재로 주목 받고 있다.

제주해녀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전국 각처와 일본 등지로 원정을 가면서 제주 경제의 주역을 담당했던 제주 여성의 상징이다.

제주해녀는 생업을 위해 거친 바다를 강인한 개척정신으로 헤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제주여성의 상징이다. 깊은 바다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다가 바다 위에 떠올라 겨우 참던 숨을 휘파람처럼 내쉬는 숨비소리에는 그들의 삶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해녀는 나잠어업으로 해산물을 채취한다. 나잠어업은 산소호흡장비 없이 수심 10~20m 이내의 바다 밑으로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말한다. 제주도의 여자들은 7, 8세부터 헤엄치기 연습을 시작해 15, 16세에 독립된 해녀가 되고, 40세 전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며 60세 전후까지 해녀생활을 한다.

해녀는 마을 단위로 공동체를 이루는데 여자들은 여남은 살이 넘으면 얕은 바다에서 조개를 캐고 미역을 딴다. 더 나이가 들면 하군 해녀가 되어 갯가에서 가까운 얕은 바다에서 일한다.

상군(上軍) 해녀들은 이들에게 작업하기 쉬운 구역을 물려주고는 더 깊은 바다로 나가 작업한다. 이렇게 해녀들은 능력에 따라 작업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이것은 해녀 공동체의 관례이다. 그 연륜과 능력에 따라 하군·중군·상군·대상군 해녀로 구분되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불 쬐는 장소를 ‘불턱’이라 하는데, 이곳은 일종의 사랑방 역할로 동네 소식들을 전하고, 물질 기술을 전수하거나, 해녀회의를 하곤 한다.

해녀들의 물질 작업은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한다고 할 만큼 위험하다.

때문에 제주해녀는 희소성과 독특한 공동체문화를 인정받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 지정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됐다.

이처럼 억척스러운 제주해녀들의 고단한 삶이 결실을 맺게 됐다.

국가보훈부가 기존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 상설전시장 내에 제주해녀홍보관을 설치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국비 1억 3,400만 원을 확보, 제주해녀들의 독도 물질 자료와 사진, 영상, 구술채록집과 해녀거주시설(모형), 물질도구 등을 전시관에 설치하고 영상물 제작, 전시품 수집 후 연내 개관할 계획이다.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은 국가보훈부의‘독도의용수비대 지원법’에 따라 독도 수호를 목적으로 1953년 4월 20일부터 1956년 12월 30일까지 독도에 상륙해 활동한 33명의 의용수비대원이 결성한 단체를 기념하기 위해 2017년 10월 27일 울릉군 북면에 건립해 운영 중이다.

제주해녀들은 1953~1956년 독도 인근에서 원정 물질을 하면서 의용수비대원들과 합심해 독도 수호에 이바지한 공적이 크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과 홍보가 이뤄지지 않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이에 제주도는 그동안 제주해녀들의 독도 출향물질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검증을 거쳐 국가보훈부에 지속적으로 건의한 결과 제주해녀관 설치를 관철시켰다.

제주도는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많은 수의 제주해녀들이 독도 물질에 나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독도의용수비대가 독도를 지켰던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대략 35명 내외의 제주해녀들이 함께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도에서 독도에서 제주 해녀들의 물질과 영토 수호 역할 증빙 자료를 보면 ▲  (제주환경일보) 한해 30~40명 해녀들 독도에서 물질(2022. 4. 8.) ·1955년 김정연 등 30여명의 해녀가 독도에서 미역 등을 채취 ▲(논문) 김수희, 독도어장과 제주해녀(2012.11.15. 대구사학) 등이다.

강승오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
강승오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

강승오 제주도 해녀문화유산과장은 “국가보훈부가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에 제주해녀관을 설치하기로 한 것은 정부가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 수호에 제주 해녀들이 기여한 역할을 인정한 것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앞으로도 위대한 제주해녀들의 역사적 가치를 발굴해 지속적으로 선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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