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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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5)-금남(錦南) 최부(崔溥)의 35절(絶)(1487)-4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03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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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해석(解釋)】 (21)

海吐瑞山供逸興(해토서산공일흥) 바다서 솟아난 서산(瑞山), 선계 흥취 풍기고

龍蟠牛島呈祥霧(용반우도정상무) 용이 서린 우도 섬에 상서론 안개 드리웠네.

山川喜我泛槎來(산천희아범사래) 사신 배 타고 오는 나를, 산천은 반기는 듯해

我亦有情堪指顧(아역유정감지고) 나 또한 느낌 있어 손 휘저으며 돌아보네.

※ 운자 : 거성(去聲) ‘遇(우)’운 - 霧, 顧

 

【해설(解說)】

‘바다서 솟아난 서산(瑞山)’에 대해 언급한 역사적 기록으로 《고려사(高麗史)》 <오행지(五行志)> ‘목종(穆宗) 10년’조에 보면, 이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곧, “탐라의 바다 가운데에서 서산(瑞山, * 상서로운 산)이 솟아 나왔으므로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 ?~1014)를 보내어 이를 살피게 했다. … 전공지가 몸소 산 밑에까지 가서 산의 형상을 그려 왕에게 바쳤다.[穆宗十年 耽羅瑞山湧出海中 遣太學博士田拱之 往視之 … 拱之躬至山下 圖其形以進]”라고 했다.

여기에서 언급한 서산(瑞山)을 두고 비정(比定)함에 있어 이를 해석하는 역사학계의 견해는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가 비양도(飛揚島)이고, 둘째가 우도(牛島)이며 셋째가 가파도(加波島)이다.

금남(錦南) 최부(崔溥)의 경우엔 우도(牛島)를 지목함에 관심이 쏠린 듯하다. 이는 중종 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제주에 귀양 왔던 충암(冲庵) 김정(金淨)이 남긴 <우도가(牛島歌)>에서도 그 시문에 ‘서산(瑞山)’을 언급하고 있음과 유사하다.

한편 작자는 자신이 제주로 올 때 타고 온 배를 두고 ‘범사(泛槎)’라고 표현했다. 곧 제주에서 ‘테우’로 지칭되는 뗏목 배를 바다에 띄워 그 배를 타고 왔음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상징화된 표현 양태로 파악해야 한다.

보통 사신(使臣)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외국으로 떠나는 경우, 종종 ‘槎(사)’란 표현이 등장하곤 한다. 예컨대 일본에 조선통신사 사절단으로 다녀온 기록을 남긴 조엄(趙曮)의 《해사일기(海槎日記)》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림 (28)> 뗏목[槎]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는 장건(張騫)의 모습을 그린 상상화(작자미상)

 

이는 본래 한(漢)나라 때 서역(西域)을 개척한 장건(張騫)의 ‘은하수 길 뗏목[槎船]’의 고사와도 연관이 깊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전하는 일화를 보면, 한무제(漢武帝)가 장건(張騫)을 대하(大夏)에 보내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槎]을 타고 은하수를 거슬러 올라가 직녀를 만났다고 전한다.

이로부터 ‘槎(사)’란 글자의 쓰임새는 사신(使臣)의 직임(職任)을 상징하는 말로 주로 쓰이게 되었다. 곧 사선(槎船)은 사선(使船)인 셈이다.

【해석(解釋)】 (22)

燕尾蜂腰千萬形(연미봉요천만형) 제비 꼬리 ‧ 벌 허리, 천만 가지 다양한 형세

爭流競秀不知名(쟁류경수부지명) 이름 모를 내와 산, 속도 높이 서로 다투네.

微茫樹色畫圖裏(미망수색화도리) 아득한 숲속 빛깔, 한 폭의 그림 속 같고

日暈紅霞照眼明(일훈홍하조안명) 햇무리 붉은 노을 눈앞을 환히 비치네.

※ 운자 : 평성(平聲) ‘庚(경)’운 - 名, 明

 

【해설(解說)】

배를 타고서 제주로 다가오면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보이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연미(燕尾)’라 함은 한라산에서 발원한 내[川]의 모습이 마치 ‘제비꼬리 마냥 두 갈래로 갈라짐’으로 보여 이를 형상화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거꾸로인 형태도 그 적용이 가능한데, 두 갈래로 흐르던 게 하나로 합해져 흐르면서 마치 ‘丫(아)’자형을 이룸이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바로 방선문(訪仙門) 계곡이다.

한편 ‘봉요(蜂腰)’란 ‘벌의 허리’란 뜻으로 제주의 오름들의 형세를 두고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풍수지리설에서는 이 ‘봉요’를 지맥 판단의 중요한 요건으로 규정하여 취급한다.

대개 산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고개로는 기맥(氣脈)이 지나간다고 하여 이를 과협(過峽)이라고 하는데, 과협 가운데 벌의 허리처럼 잘록하면서 짧은 것을 두고 ‘봉요’라고 일컫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 (29)> 한라산의 위용 (* 필자 촬영)

 

【해석(解釋)】 (23)

遠人頗識尊王命(원인파식존왕명) 먼데 사람들 그렇게 왕명(王命) 받들 줄 알아

扶我登途笳鼓競(부아등도가고경) 나를 영접함 피리 북소리 요란히 울려대네.

浦口巉嵓道士羊(포구참암도사양) 포구의 깎아지른 바위, 도사양(道士羊)인가

路周磊落仙人鏡(노주뇌락선인경) 길옆 쌓인 돌무더기, 선인경(仙人鏡)인가.

※ 운자 : 거성(去聲) ‘敬(경)’운 - 命, 競, 鏡

 

【해설(解說)】

작자인 최부(崔溥)가 제주의 조천포구에 닿아 하선한 후 제주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바닷가의 현무암 바위의 특성과 함께 길옆에 조성된 ‘거욱대’라 불리는 방사탑 형태의 돌무더기였던 것 같다.

이를 두고서 최부는 현무암 바위를 ‘도사양(道士羊)’에, 돌무더기인 거욱대를 ‘선인경(仙人鏡)’에 빗대어 비유하고 있다.

‘도사양’에 대한 고사는 대개 ‘질석성양(叱石成羊)’이란 성어로 표현되곤 하는데, 그 뜻이 ‘돌에 소리 질러 양이 되게 함’이다.

진(晉)나라 때 갈홍(葛洪)이 지은 《신선전(神仙傳)》 <황초평(黃初平)> 편에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황초평이 15세 때,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들판에 나가 양을 키우는데, 한 도사(道士)가 있어 그의 선량함과 근면함을 보고선 금화산(金華山) 석실로 데려가 함께 지냈다. 세월이 40여 년이 흘렀는데도 집 생각을 하지 않았다.

뒷날 형 황초기(黃初起)가 동생인 초평(初平)을 찾아나섰다가 한 도사를 우연히 만나서 그가 알려준 대로 산마을에 이르러 초평을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형제가 서로 만나게 되자 기쁨과 슬픔이 교차되었다.

형이 초평에게 묻기를, ‘양들은 어찌 되었느냐?’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근처 산 동쪽에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형인 초기가 그곳에 가서 보았는데 양들을 볼 수 없었다. 초평에게 말하길, ‘산 동쪽에 양들이 없어.’라고 하자, 초평이 얘기하길 ‘양들이 있긴 한데 형이 그걸 보지 못할 뿐이어요.’라고 했다.

초평과 초기가 함께 그곳에 가서 보는데 초평이 이내 소리를 지르길, ‘양들아, 일어나!’라고 하자 그곳의 하얀 돌들이 모두 양으로 변했는데 수만 마리가 되었다.”

양을 키우던 목동인 황초평이 금화산(金華山)에서 수련을 쌓은 뒤 신선이 되었으므로 능히 돌에 소리 질러서 양으로 완성케 했다고 하는 이야기인데, 이로써 ‘질석성양(叱石成羊)’이란 고사가 생기게 된 것이다.

한편 선인경(仙人鏡)이란 우리에게 선인장(仙人掌)이란 이름으로 익숙한 멕시코 원산인 식물을 두고 이름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림 (30)> 선인경(仙人鏡) 같은 제주의 돌무더기
<그림 (31)> 조천읍 신흥리의 방사탑(거욱대)

 

【해석(解釋)】 (24)

靑鳥彩鸞如有期(청조채란여유기) 청조(靑鳥) 채란(彩鸞), 마치 기약이나 한 듯

護予呵擁城中馳(호여가옹성중치) 나를 감싸 호위하며 곧바로 성중으로 치닫네.

奔迎拜跪稍知禮(분영배궤초지례) 분주히 맞아 절하고 꿇어서 예 갖춤 알겠건만

聒耳語音譯後知(괄이어음역후지) 귀 따갑게 듣는 말소리, 통역 후에나 알겠네.

※ 운자 : 평성(平聲) ‘支(지)’운 - 期, 馳, 知

 

【해설(解說)】

고전 해학소설 《배비장전(裵裨將傳)》에 보면, 신임 제주 목사의 도임(到任) 행차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좌우에 청장(靑帳)을 번뜻 들리우고 사령(使令) ‧ 군노(軍奴)를 비롯하여 앞뒤에 줄줄이 늘어섰다. 북 ‧ 장고 ‧ 해금 ‧ 태평소 ‧ 피리 등으로 풍악을 갖추게 하고, 물색 좋은 청일산(靑日傘)에 호기가 등등하였다.

뚜르르, 따, 따 … 뚜르르, 따, 따 …

엄숙함 속에도 아취(雅趣)가 넘쳐흐르는 행렬은 서서히 움직였다. 한편 이 고을 기생들은 모두가 마음껏 단장하고 동문 밖에 나와 줄줄이 늘어서서 마중하였다. 갖가지 군기(軍旗)는 바람에 펄럭여서 더욱 호화로웠다.”

한편 최부는 ‘새타령’ 노래 속에 등장하는 청조(靑鳥)와 채란(彩鸞)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자신과 신임 목사의 도착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본래 ‘새타령’의 노래 가사는 대개 이렇게 시작된다.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 새 중에는 봉황새 만수문전(萬壽門前)에 풍년새 / 산고곡심무인처(山高谷深無人處) 울림비조(鬱林飛鳥) 뭇새들이 / 농춘화답(弄春和答)에 짝을 지어 쌍거쌍래(雙去雙來) 날아든다 / 말 잘하는 앵무새 춤 잘 추는 학두루미 …/ 생증장액수고란(生憎帳額繡孤鸞)허니 어여쁠사 채란(彩鸞)새 / 약수삼천(弱水三千) 먼먼 길 서왕모(西王母)의 청조(靑鳥)새 / 성성제혈(聲聲啼血) 염화지(染花枝)의 귀촉도(歸蜀道) 불여귀(不如歸) …”

그러고 보면 ‘채란(彩鸞)새’는 봉황과 같은 상상 속의 새를 뜻하고, 청조(靑鳥)새는 서왕모의 소식을 전하는 파랑새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화려한 새들을 동원해서 마치 임금의 행차처럼 그날의 입도(入島) 장면을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해석(解釋)】 (25)

便從父老問風土(편종부로문풍토) 이내 부로(父老) 찾아가 이곳 풍토 물었더니

冬苦風威夏苦雨(동고풍위하고우) 겨울 바람의 위세, 여름 비 많음이 고역이라.

草木昆蟲傲雪霜(초목곤충오설상) 초목과 곤충들, 눈 서리쯤이야 우습게 알고

禽無鵂鵲獸無虎(금무휴작수무호) 조수(鳥獸) 중엔 부엉이 까치 호랑이 없다네.

※ 운자 : 상성(上聲) ‘麌(우)’운 - 土, 雨, 虎

 

【해설(解說)】

제주의 서북풍인 하늬바람이 불 때면 식물들도 그 영향을 받아 한쪽으로 쏠린다. 한경면 도로 옆의 한 나무가 바로 그 모습을 여실히 잘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림 (32)> 하늬바람 영향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나무

 

【해석(解釋)】 (26)

人知種植飽齁齁(인지종식포후후) 사람들 농사지을 줄 알고 포만감에 코를 고니

不羨江陵千戶侯(불선강릉천호후) 강릉(江陵)의 천호후(千戶候), 부럽지 않다네.

渾把生涯登壽域(혼파생애등수역) 온전히 생애를 마쳐 장수지역 경지에 오르니

閭閻到處杖皆鳩(여염도처장개구) 마을 곳곳의 지팡이가 모두 구장(鳩杖)이라네.

※ 운자 : 평성(平聲) ‘尤(우)’운 - 齁, 侯, 鳩

 

【해설(解說)】

제주 농부들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중국 강릉(江陵)의 천호후(千戶侯)가 부럽지 않음을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천호후는 천호(千戶)나 있는 넓은 땅을 영유한 제후를 말함인데, 《사기(史記)》(권 129) <화식열전(貨殖列傳)>에 보면, “촉한(蜀漢)과 강릉(江陵) 지방의 귤나무 천 그루를 가진 사람은 천호후(千戶侯)와 맞먹는다.”라고 한 표현이 있다.

한편 삼국시대 오(吳)나라 사람 이형(李衡)이 “강릉에 천 그루의 귤나무만 있으면, 식읍(食邑)을 가진 집안에 부러울 게 없다.[江陵千樹橘 當封君家]”라고 한 태사공(太史公)의 말을 상기하면서, 가족 몰래 귤나무 천 그루를 심어서 자손들이 부유하게 살도록 했다는 고사가 있기도 하다.

제주는 예로부터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장수의 섬으로 각인돼왔다. 옛사람들은 노인(老人)을 두고 생각하기를 육체가 시들어 단지 나이 많은 사람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오래 사는 것’, ‘천수(天壽)를 누리는 것’은 인간의 오복(五福) 중에서도 ‘수(壽)’와 ‘고종명(考終命)’을 달성하는 일로 보아 오히려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 온 것이었다.

<그림 (33)> 구장(鳩杖) 든 노인

 

여기서 장수한 노인들에게 하사된 구장(鳩杖)이란, 끝에 비둘기[鳩] 장식이 달린 길이가 긴 지팡이를 두고 이름이다. 대개 비둘기는 목이 막히지 않는 새로 알려졌기에 이는 노인들이 무슨 음식이든 잘 먹고 건강하길 바라는 염원이 그 속에 담긴 속뜻이라고 한다.

 

【해석(解釋)】 (27)

嫌將歲月虛抛擲(혐장세월허포척) 장차 세월 헛되이 내던질까 혐오하여

照里鞦韆傳自昔(조리추천전자석) 조리희(照里戱), 추천(鞦韆) 예부터 전해졌네.

僧刹了無香火時(승찰료무향화시) 절간이란 도무지 향불 피울 때가 없건만

騈闐簫鼓燃燈夕(병전소고연등석) 연등절 저녁때면 퉁소 북소리 요란하다네.

※ 운자 : 입성(入聲) ‘陌(맥)’운 - 擲, 昔, 夕

 

원문(原文)에 보면, ‘照里(조리)’에 각주를 달아놓았는데, 그 설명이 모호하다. 곧, “본토박이들은 밭머리에 무덤을 쌓는 일을 조리희(照里戱)라고 칭하는데, 일반 백성들로 하여금 일을 하게 한다.[土人田頭起墳稱照里戱役使平民]”라고 해석된다.

이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소개된 ‘조리희’ 관련 기록과 비교할 때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곧 그 책 <풍속(風俗)>조에 보면, “밭머리에 무덤을 만든다.[田頭起墳]”는 설명으로, “상사를 마친지 백일이면 복을 벗고 밭머리를 조금 파고 무덤을 만든다.

간혹 삼년상을 행하는 자도 있다. 풍속이 풍수지리와 복서(卜筮)를 쓰지 않고 부처의 법도 쓰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한편 ‘조리희(照里戱)’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는,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나누어 좌대(左隊) ‧ 우대(右隊)를 만들어 큰 동아줄의 두 끝을 잡아당기어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이 끊어져서 두 분대가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의 놀이라고 한다. 이 날에 또 그네뛰기[鞦韆]와 닭 잡는 놀이를 한다.”라고 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각주를 통해 부연 설명한 ‘조리(照里)’에 대한 설명은 아마도 청음 김상헌이 착오를 일으켜 최부의 시를 《남사록(南槎錄)》에 옮겨 소개하는 과정에서 《동국여지승람》의 기록 일부분을 잘못 소개한 것으로 생각된다.

 

【해석(解釋)】 (28)

革帶芒鞋葛織衣(혁대망혜갈직의) 가죽 허리띠, 짚신에 칡베 옷 걸쳐 입고

石田茅屋矮柴扉(석전모옥왜시비) 돌밭, 초가집엔 나지막한 사립문이라.

負甁村婦汲泉去(부병촌부급천거) 허벅 짊어진 시골 아낙, 샘물 길어서 가고

橫笛堤兒牧馬歸(횡적제아목마귀) 언덕에서 횡적 불던 아이, 말 몰아 돌아오네.

※ 운자 : 평성(平聲) ‘微(미)’운 - 衣, 扉, 歸

 

【해설(解說)】

제주의 풍속을 설명하는 가운데 특히 ‘負甁村夫汲泉去(부병촌부급천거)’란 대목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負甁(부병)’이라 함은 곧 ‘물허벅을 짊어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미 최부가 제주를 찾아왔던 15세기 후반에 벌써 물을 담는 용기류의 그릇인 ‘허벅’의 존재감을 드러낸 표현이기에 이는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서 물을 길어나름에 ‘목통(木桶)’을 쓴다고 함과 비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림 (34)> 물허벅을 진 제주 아낙들
* 출처 : 《백년전(百年前)의 한국(韓國)》(가톨릭출판사, 1986)

 

【해석(解釋)】 (29)

民風淳儉看來取(민풍순검간래취) 백성들 풍속 순박 검소함, 돌아보고 와 알아

不必彎絃徒尙武(불필만현도상무) 상무(尙武)라 해 꼭 활시위 당길 필요 없네.

絃誦東西精舍中(현송동서정사중) 동서의 정사 안에서 현악 반주에 시 암송하니

元來人傑擬鄒魯(원래인걸의추로) 원래 인걸들 공맹(孔孟)을 닮아가기 마련이라.

※ 운자 : 상성(上聲) ‘麌(우)’운 - 取, 武, 魯

 

【해설(解說)】

예로부터 한 고을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운데 세 가지 듣기 좋은 소리란 의미로 삼희성(三喜聲)이란 게 있었다. 곧 다듬이질 소리, 글 읽는 소리,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그것들이다. 그 가운데 글 읽는 소리는 자식의 교육과 직결되는 것이기에, 자식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이에 대한 부모의 관심이란 자연스레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향교나 서원 등의 정식 교육기관에서 경전 등을 암송할 시에는 대개 거문고 등의 현악 반주에 맞춰 행해지곤 했는데, 이를 두고 현송(絃誦)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 의미가 확대되어 가르침을 받아 배우고 익힘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림 (35)>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 모습
*출처 : 《백년전(百年前)의 한국(韓國)》(가톨릭출판사, 1986)

 

공자 또한 《시경(詩經)》 3백여 편의 시를 모두 현악 반주에 맞춰 노래할 수 있었다고 할 정도라고 했으니, 현송(絃誦)의 역사는 오랜 전통을 지닌 학습법의 한 방법이라 하겠다.

대개 향교나 서원의 교육체계를 보면 유생들의 교육은 대체로 동서(東西)로 나뉜 정사(精舍)라 불리는 공간에서 행해지는데 보통은 동재(東齋) ‧ 서재(西齋)로 불린다.

 

【원문(原文)】

<그림 36> 김상헌(金尙憲) 《남사록(南槎錄)》에 실린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5) * 자료출처 : 《제주사자료총서(濟州史資料叢書)》(Ⅰ)(제주도, 1998), 312쪽.<br>
<그림 36> 김상헌(金尙憲) 《남사록(南槎錄)》에 실린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5) * 자료출처 : 《제주사자료총서(濟州史資料叢書)》(Ⅰ)(제주도, 1998), 312쪽.

 

【판독(判讀)】

王 靑衿揖我明倫堂 誰知萬里滄溟外 有此衣

冠禮義鄕 更誇物産荊揚富 珎寶精華那可數

玳瑁蠙珠貝與螺 靑皮白蠟石鐘乳 乃知仙藥

百千般 箇裡分明有煉丹 收拾鐺中九轉後 定

應白日可飛翰 我來得覩神仙宅 採了天台劉

阮藥 願學麻姑看海桑 應將此身壺中托 紫殿

九重憶聖君 白雲千里戀雙親 此身猶未全

忠孝 不忍堪爲方外人 豈獨瀛洲在此地 求之

人世不難致 莫如還向華山陽 保我平生伊尹

 

【해석(解釋)】 (30)

(路入杏壇謁素)王(노입행단알소왕) 길 따라 향교(鄕校) 들어가 공자 알현하니

靑衿揖我明倫堂(청금읍아명륜당) 청금생(靑衿生)들 명륜당에서 내게 읍례하네.

誰知萬里滄溟外(수지만리창명외) 그 누가 알았으리오, 푸른 바다 만 리 밖에서

有此衣冠禮義鄕(유차의관례의향) 이런 의관 차림의 예의향(禮義鄕) 있다는 걸.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王, 堂, 鄕

 

【해설(解說)】

앞서 소개한 이 글의 서문에서 최부는 제주향교를 방문한 소감의 일단을 이렇게 피력했다.

“향교(鄕校)를 찾아가 성인(聖人)에게 예를 올렸는데, 마침 그곳의 교생(校生) 백여 명도 의관(衣冠)과 문물(文物)을 갖추어 예알(禮謁)하였다. 그 광경의 찬연함이란 바다 밖에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볼만 하였다.”

 

<그림 (37)> 정의향교 대성전(大成殿) 안의 공자(孔子) 위패 앞에서 제례를 행하는 모습 * 사진 : 필자촬영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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