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축조방식 확인..고내리 환해장성
상태바
[향토문화]축조방식 확인..고내리 환해장성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06.06 0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식장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파괴, 복원했지만 성의 원형 훼손


고내리 환해장성


고내리 환해장성
위치 ; 애월읍 고내리 시니물 서쪽 해안
시대 ; 고려(조선)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고내리 환해장성은 고내포구에서 서쪽에 있는 '시니물'에서부터 약500m 정도가 남아 있는데, 성 위의 폭은 1m쯤 되며, 성 안쪽에는 폭 1.5-2m, 높이 1m 정도의 회곽도(군인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남아 있어 환해장성의 축조 양식을 알아볼 수 있다.

일부 구간은 양식장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파괴되었다가 복원되긴 했지만 성의 원형은 훼손된 상태이다.

다음 글은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의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고려 원종(元宗) 때에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진도에 웅거(雄據)하였다. 이에 원종이 사랑 고여림 등을 탐라에 보내 군사 1,000명을 거느리고 방비하게 함에 따라 환해장성을 쌓게 되었다.

『고지도첩(古地圖帖)』 중 「탐라전도」에는 애월개의 동쪽에 옛 장성이 보이고 있다.

[위치]
애월읍 고내리 오일수산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2㎞에 걸쳐 있다.

[형태]
1. 고내리 환해장성 1지점

애월읍 고내리 포구에서 서쪽으로 약 300m 지점을 필요상 고내리 환해장성 1지점이라 하는데, 성의 외벽 쪽이나 내벽 쪽은 수평, 혹은 안이 높고, 밖은 낮은 상태이다.

축성 형태는 단일 경사를 취하고 있으나 경사도가 직립에 가까운 상태이며, 성석(城石)의 크기는 내·외벽이 비슷한 상태이다.

축조 방식은 막돌 허튼층 쌓기에 잔돌 끼움을 하고 있다. 내·외벽을 쌓는 방식은 협축(挾築)이며, 잡석 채움을 하고 있다. 성의 부속으로는 성내의 도로와 외벽에 설치되어 있는 용천수를 들 수 있다.

2. 고내리 환해장성 2지점

이 지점은 고내리와 애월리 사이의 해안 중에서 가장 바다로 돌출된 곳이다. 성은 육지와 바다를 구분할 수 있는 위치, 즉 만조 때에도 파도에 의한 훼손을 일단 피할 수 있는 곳에 축성되어 있다. 지형은 안이 높고 밖이 낮은 곳이 대부분이다.

성의 상태는 다소 허물어진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양호하게 남아 있으며, 성내 회곽도(廻廓道)나 여장(女墻) 등이 확실하게 현존하고 있다.

성의 잔존 높이는 외벽 1.9m, 내벽 1.5m 내외이다. 너비는 하부가 약 1.2m, 상부가 1.0m, 너비는 1.5m 정도에 이르고 있어 실제 성의 너비는 약 2.7m이다.

축조 방식은 막돌 허튼층 쌓기에 잔돌 끼움을 하고 있다. 내·외벽을 쌓는 방식은 협축(挾築)이며, 잡석 채움을 하고 있다. 성내 회곽도는 평평한 돌을 이용하여 윗면을 고르게 맞추고 있으며, 틈새는 잔돌 끼움을 하여 맞추고 있다.

3. 고내리 환해장성 3지점

애월초등학교와 고내리 포구 중간을 3지점이라 하는데, 성의 지형 상태가 밖은 높고, 안은 낮은 형태, 즉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와는 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특이한 지형을 한 곳이다. 형태는 내·외벽 모두 단일 경사를 하고 있는데, 직립에 가깝다.

잔존 높이는 외벽이 2.2m 내외, 내벽이 2.6m 정도이며, 내부의 회곽도 너비 1.7m, 여장 높이 1.6m이다. 축성 방법은 지반의 특이한 상태, 즉 성 밖의 지형이 높아 외벽의 기단석은 지반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막돌 허튼층 쌓기에 잔돌 끼움을 하고 있다.

[현황]
간혹 중간에 끊어진 부분이 있으나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324m에 해당하는 부분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제주의 방어유적』(제주도, 1966)
• 『북제주군의 문화유적』1(북제주군, 1998)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