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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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9)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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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아리랑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비평 연구-1(제4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지난 27일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네번째 주제는' 아리랑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비평 연구'이다.(편집자주)

 

 

 

아리랑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비평 연구 Criticism on China's attempts to distort Arirang as a Northeast Asian history and Japan's colonial view of history to Arirang

 

조용호(趙容晧)

 

Ⅰ. 서 론

아리랑은 한민족 정신세계의 중추신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민족의 노래이지만 주변국의 횡포와 왜곡으로 인하여 민족적 존엄과 위상이 흔들리며 고달픈 노정을 걸어오고 있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 불리는 동북 변강사 여 현장 계열 연구 공정(東北 邊疆史 與 現狀 系列 硏究 工程, Northeast Borderland History and the Chain of Events Research Project of the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틈나는 대로 주기적으로 아리랑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하며 선전하고 있다.

일본은 일찍이 조선총독부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이상한 논리로 아리랑 발생설을 만들어 아리랑을 낮춰보며 폄훼하고 희화화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 것을 빼앗아 가는데 왜 우리는 분노하지 않습니까?

고귀한 민족적 영혼을 빼앗겨도 제대로 된 대응책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것인가? 중국의 아리랑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이길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계속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이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아리랑에 대한 폄훼가 역사적으로 먼저 나타난 것은 1930년 6월에 기고된 「조선민요(朝鮮民謠) 아리랑」이다. 여기에는 아이롱설, 아리랑설, 아난리설, 아랑설, 아랑위설, 알영설 등으로 통칭되는 아리랑 발생설과 함께 관련 노랫말 가사도 여러 종류 수록되었는데, 이는 아리랑 연구의 전환점이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증적 내용임을 시사하는 두 개의 자료인 발생설과 아리랑 가사를 하나로 합쳤을 때 실증적이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아리랑의 뜻을 채집된 노랫말에 대입하면 발생설 내용과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당시의 조선총독부와 일정한 학문적 관련성을 가진 학자(學者)들인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이나바 이와키치(稻葉岩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등이 추구하던 실증적 성격의 학풍이라든가, 조선총독부가 통치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선의 역사⋅언어⋅문화⋅풍습⋅자연⋅사상⋅문학⋅정치⋅군사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는 학술적 기능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였을 때 단순히 자료들 간의 결합에서 나온 오류가 아니라 또 다른 의도가 있음을 뜻한다.

이후 유사한 주장들이 나타나며 발생설에 대한 비평도 이어졌다. 권상로(權相老)의 아이농(啞而聾)설(1941년), 이병도(李丙燾)의 아라(樂浪)설(1959년), 양주동(梁柱東)의 아리령(嶺)설(1959년), 임동권(任東權)의 의미소실(意味消失)설(1969년), 정익섭의 얄리얄리 전음설(1969년), 최재억의 난랑난랑(卵郞卵娘)설(1970년), 원훈의(元勳義)의 아리고 쓰리다설(1978년), 박민일(朴民一)의 아뢰야설(阿賴耶)(1989년), 조용호(趙容晧)의 여말선초 암호문론(2002년) 등 다양한 주장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최초로 제기된 김지연의 설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유사한 형태의 발음과 이에 대한 설화적(說話的) 설명을 곁들이면 아리랑이 된다는 연구방법의 기원(起源)과 그것이 갖는 사상적 배경 및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서는 결코 단 한 번도 학술적(學術的)인 회의(懷疑)의 대상이 된 바 없으며, 그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없었다.

뜻 모르는 후렴구로 판정한 당대의 아리랑에 대하여 다양한 종류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며 의도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이후에 나타난 설들도 최초에 제기된 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이제 근본원인의 실체를 규명해야 할 때이다.

두 번째로 나타난 것은 중국의 아리랑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즉 중국에서 만주 등 중국 동북지방의 지리, 역사, 민족 문제 따위를 연구하는 국가 연구 사업으로, 동북 변강사 여 현장 계열 연구 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Northeast Borderland History and the Chain of Events Research Project of the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하여 2002년부터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에는 아리랑을 중국의 것으로 판정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아리랑 동북공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평범한 필부(匹夫)의 오래되고 작은 물품에도 그 사람과 함게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인생과 주위 상황이나 역사가 녹아 있고 미래에 일어날 이야기까지도 상상할 수 있는 소중한 것인데, 한민족의 혼이고 민요의 정수라고 칭송받는 아리랑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소품 하나의 가치도 없이 아무런 취급도 없다는 것은 일종의 모욕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비밀화(秘密話)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질 그날만을 기다려 왔다.

본고는 일본의 아리랑 발생설에 대해 비평하고, 동북공정 아리랑 왜곡에 대해 이론적 비평을 가함으로써 아리랑의 갖고 있는 위상과 존엄과 본질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주제어 : 아리랑 동북공정, 식민사관, 총독부, 중국사회과학원

 

Ⅱ. 아리랑 발생설의 구성 논리

아리랑 발생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원의 생성 그 자체만을 보아서는 안 되며 이러한 종류의 설을 만들기 위해 참조한 자료, 만들어진 배경이나 추구하는 목표,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던 사상(思想)까지 알아야 진정한 의미에서 발생설이 만들어진 이유와 목적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상은 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동시대인의 세계사적인 생각의 뭉치이며, 당대 가치관의 집대성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발생설의 문제

그러한 측면에서 발생설이 만들어진 시대적 상황에서 고찰해 보면 숨겨져 있던 문제점들이 나타나며, 이를 통해 조선총독부가 의도하던 바를 알아낼 수 있다.

즉 아리랑의 어원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 19세기 말을 기점으로 유사한 형태의 명칭이 이미 있었고,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논의가 있어왔는데도, 기록에 대한 언급이나 제기된 수많은 논의들은 누락하고, 단순히 몇 개의 설과 아리랑의 종류만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고의적으로 자료를 누락한 것이며, 동시에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발생설을 만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즉 특정한 역사적 상황(歷史的 狀況)을 만들어 결정적인 내용을 누락하거나 조합하는 논리체계이다. 그러한 논리는 「朝鮮民謠 아리랑, 朝鮮民謠의 硏究(二)」의 머리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第一次로 주은 바둑돌은 이 「아리랑」이올시다 맨든 것이 안이고 주은 것이에요 이에 對하야 여러 先輩의 말삼도 들엇슴니다만은 아즉 明確치 못한 점이 만코 採譜라든지 謠旨解釋이라든지 相互의 比較調査라든지는 後期를 두고 未完成인 이대로 씀은 퍽 미안함니다. 이것은 死馬骨을 五百金으로 買入하는 格이니 千里馬를 자랑하실분이 만이 기심을 바람니다.

아리랑 연구를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주웠으며, 선배의 말을 들었고, 직접 채보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자료를 줍는 방식과 말을 전해준 선배 등에 대한 다른 예가 있다. 발생설을 기고하고 나서 6개월 후인 12월호에 쓴 「앙모안회헌 선생(仰慕安脢軒先生)」의 말미에 자료를 만든 배경과 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다.

此는 恩師 高橋博士 드른 講義 一部을 土臺삼아 大槪譯함에 不過하니 誤謬가 잇스면 나의 잘못임을 告함

지금까지는 김지연 자신이 직접 자료를 채집하여 하나의 논리로 정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닌 것이다. 자료를 취합한 정도일 뿐이다.

강의에서 들은 자료를 번역하여 기고하였다는 것은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박사의 학문적 내용을 한글로 번역 후 대신하여 기고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기고문이 갖는 문제점은 자료를 강의했거나 설명해준 사람이 당시의 사상과 역사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거나 강의한 내용이 개인적 성향에 의해 변형되어 있을 경우 또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현재와는 전혀 다른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사상적 근원

아리랑 발생설을 만들기 위해 참조한 원천적인 자료에 대한 고찰과 당시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아리랑의 어원과 관련 설화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주웠다고 하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그와 같거나 유사한 화소(話素)가 있는 자료를 통해 변형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발생설 원문에는 제보자의 인적사항과 함께 배경설화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된 설화와 아리랑 어원 간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또한 확정되지 않은 여러 개의 설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아리랑은 뜻이 없고 유사한 발음을 갖는 설화나 비슷한 뜻이 있으면 그럴듯하게 될 수 있는 노래라는 논리체계이다. 이는 처음부터 아리랑을 뜻 없는 후렴구로 희화화(戱畵化)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심(朝鮮心)을 대표하는 노래인 아리랑에 대한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의도를 숨기고 있다.

둘째, 제기된 내용이 단순히 아리랑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발생설에 나타나는 다른 화소(話素)들인 대원군, 경복궁 부흥공사, 강제노역, 백성들의 고통,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 잔인하게 살해된 후 한을 품고 밤에 나타나는 아랑, 아랑위의 기원이 중국에 있다는 것,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왕비 알영에서 발생되었다는 설 등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설들이 하나로 종합되었을 때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며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형태상으로는 아리랑이라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아이롱, 아리랑, 아난리 등은 경복궁 부흥공사에 대한 강제 노역을 통해 대원군(大院君)이 백성으로부터 원성을 사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제시하는 바는 대원군을 비롯한 조선 집권층이 백성들을 압제한데에 조선망국의 원인이 있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상은 1926년 호소이 하지메(細井肇)가 조선이 망한 이유를 대원군과 연결시키려한 점과 같다. 또한 조선문화사론(朝鮮文化史論)(1911년), 붕당⋅사화의 검토(朋黨⋅士禍の檢討)(1921년) 등에서 당쟁의 원인 등을 들어 조선인의 심성을 비난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려한 논리는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사상과 같다.

타카하시 토오루는 진화론에 입각한 우등과 열등의 이론을 바탕으로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朝鮮の俚諺集附物語)'(1914년)을 통해 철학과 종교적 입장에서 조선사회 내면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특성을 “1.사상(思想)의 고착성 2.사상(思想)의 무창견(無創見) 3.무사태평 4.문약(文弱) 5.당파심 6.형식주의” 등으로 규정하고, '조선인(朝鮮人)'(1921년) 등을 통해 세분화함으로써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또한 무라타 시게마로(村田繁麿)는 '조선생활과 문화(朝鮮の生活と文化)'(1924년)에서 동일한 논리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병합 3년을 맞는 시점에서 향후의 통치 방향에 대하여 논의한 조선 제1집(朝鮮 第1輯)(1913년)에 나타나 있다.

이들이 사용한 자료 중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수집한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와 '조선 민담집 부록 속담(朝鮮の物語集附俚諺)'(1910년) 등이 있고, 민요나 속담 등의 변형을 통한 조선 민족성의 교화(敎化) 방안의 기초가 되는 식민사관은 '韓國倂合紀念史'(1911년) 등에 나타난 식민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편, 발생설이 갖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당시의 실증적 학술 태도를 무시한 연구 결과라는데 있다.

따라서 참조한 자료의 원천적인 내용에 대한 고찰과 당시의 사상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아리랑의 어원과 관련 설화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주웠다고 하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그와 같거나 유사한 화소(話素)가 있는 자료를 통해 변형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아리랑 발생설의 화소

발생설에 나오는 화소들과 같거나 유사한 내용인 어유하(魚遊河) ⋅ 아이롱(啞而聾) ⋅ 아아이롱(我啞而聾) ⋅ 아롱(啞聾) ⋅ 아랑(阿郞),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등과 같은 내용이 나오는 자료는 이요 ⋅ 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俚謠⋅俚諺及 通俗的 讀物等 調査)(1912년)이다.

조선총독부에서 전국경찰조직과 보통학교를 통해 비밀리에 간접 채보한 형태로 만든 자료로, 민요에 대한 논문집인 '조선민요 연구(朝鮮民謠の硏究)'(1927년)를 편찬한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 같은 일본인에게 조차도 보여주지 않았을 정도로 비밀리에 취급한 자료인데, 아직까지도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음 호에 계속)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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