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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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0)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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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아리랑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비평 연구-2(제4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네번째 주제는' 아리랑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비평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아리랑 발생설 비평

아리랑 발생설의 내용과 당시에 출판된 자료와의 대비를 통해 변형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우선적으로 아이롱(我耳聾)과 관련된 것은 아이롱(啞而聾) 또는 아아이롱(我啞而聾)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啞而聾打詠

 

394

啞而聾 我啞而聾

啞而聾 얼시고 노다 가소 (綾州郡) (韓國民謠集Ⅵ–394)

啞聾歌

 

476

간다구 간다구

가더니만

十里도 못 가고

발병 났네

汽車는 가자고

쌍고동을 트난데

임을 잡구서

落淚한다 (群山公立普通學校) (韓國民謠集Ⅵ–476)

啞利聾打令

 

679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러구려

아리랑 어리얼슈

아라리러구려

기차는 가지고

쌍고동 트는데

정든 임잡구서

선앵도 딴다 (楊口郡) (韓國民謠集Ⅵ–679)

 

<아이롱 타령(啞而聾 打詠)>에서는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말고, 말하지 말고, 놀다가는 의미에서의 아이롱(啞而聾)이다. <아롱가(啞聾歌)>, <아리롱 타령(啞利聾 打令)>에서는 기차(汽車) 소리가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떠나는 님을 잡고서 낙루하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는[聾] 의미이다.

이를 통해 아이롱(我耳聾)이라는 본래의 의미는 대원군이나 경복궁 부흥공사, 백성들이 원납 소리에 귀가 아픈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발생설에 나오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의미인 것을 알 수 있다.

어유하(魚遊河)와 관련된 것은 <모내기>, <김매기요(謠)>와 <타맥가(打麥歌)> 등에 나온다.

 

모내기 김매기 謠

 

107

어럴널널 상사디

어럴널널 상사이댜

네 다리 빼라

내 다리 박자

어럴널널 상사디야

神農氏 본을 받아

하여보세

魚遊河라 防故

驪州利川 자채방아

魚遊河라 防故

金浦通津 밀따리방아

魚遊河라 防故 (安山郡) (韓國民謠集Ⅵ–107)

打麥歌

 

389

魚遊河 흥

我何苦 흥 (旌義郡) (韓國民謠集Ⅵ–389)

 

412

萬山에 春氣 둘러

꽃도피고 풀도나니

人生도 때 만나면

花草와 같을 것

魚遊河 上瑞多

우리도 언제야

旱天에 빗발되야

枯苗를 潤滋할꼬

魚遊河 上瑞多 (興陽郡) (韓國民謠集Ⅵ–412)

 

<모내기>, <김매기요> 에서 어유하의 의미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옆에서 노는 물고기를 본다는 뜻이다. <타맥가(打麥歌)>에서는 보리타작 농사를 힘들게 하는데 물고기가 논다는 뜻이며, 또 다른 노래에서는 인생도 때 만나면 좋은 시절이 오니 물고기처럼 놀아 보자는 내용이다.

경복궁 공사에 동원된 역군들이 불렀는지의 여부를 떠나 원래의 의미는 농사를 지으면서 부르는 노래이고, 아난리 차역(我難離 此役)이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어유하는 대원군과 관련이 없는 농사에서 나온 노래인데 상황을 무리하게 대원군 연결시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대원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민요에 나온다. <방아 타령(打令)>이 그것이다.

 

방아打令

 

815

乙丑三月 열나흩날

景福宮을 짓느라고

役事로다

景福宮을 役事時에

八道富者가 願納을 한다

正方山城 위좁은 길로

알가진 처자가

상금살작 기누나

그대 맘은 綠水오

이 내 말은 靑山이라

綠水는좇아 흘러가도

靑山조차 변할소냐 (陽德郡) (韓國民謠集Ⅵ–815)

 

그렇지만 경복궁을 짓는 것이 역사(役事)이며, 팔도 부자가 원납을 한다는 이야기가 전부로 백성들이 원납 소리에 귀 막는다거나 일하던 곳을 떠나기 어렵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자료가 변형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목표는 무엇일까? 발생설에서 제기되는 방향성은 당시의 집권자인 대원군을 공격함으로써 조선의 통치자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압제하는 정치를 하였다는 논리를 통해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를 통해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총독부가 추구하던 목표가 무엇인지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1912년)와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년)에 공통적으로 나온다.

 

371

옛적에는 官廳에서

人民의 것을 빼앗기만 하여

壓制를 하드니

지금은 每年 官廳에서

農産物 鐘子며 外他各種 勸業品을

無代 주며 親切히 하니

堯舜世界인 듯

그러나 手續을 몰라 걱정이야 (延豐郡) (韓國民謠集Ⅵ–815)

 

조선의 통치자들이 압제 정치를 해서 조선이 망했는데, 식민지가 되고나니 백성들의 삶이 요순시대와 같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난 것을 통해 민요 조사 시작 전부터 이미 일부의 자료에 대해서는 특정한 의도를 갖고 끼워 넣어진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일제를 찬양했거나 아부성을 보이는 것은 조작된 것일 수 있으므로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년)에는 이와 동일한 내용이 속담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즉 1910년에 없던 내용이 1914년 자료에 추가된 것이다.

 

1298

옛날에는 빼앗기기 바쁘고 지금은 받기에 바쁘다. 이것은 최근 총독부의 시정 이후에 생겨난 말이다. 실로 총독부의 정치는 백성에게 환원함으로써 백성을 풍요롭게 하는 일을 도모해왔다. 과거의 조선 왕조가 수탈만 일삼고 환원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백성들에게 이런 느낌이 생겨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 있는 민요를 속담이라는 형태로 변형시킨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통치함으로써 요순시대가 되었고, 이를 통해 총독부 정책에 대한 예찬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 속담집(朝鮮俚諺集)'(1926년)에는 이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총독부를 노골적으로 예찬하는 내용은 개인의 저술에만 한정하고 공식 문서에서는 제외한 것이다.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를 일본 민간인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변형이 가미된 자료였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었고, 그러한 이유로 비밀자료 취급을 한 것이다.

아랑(阿娘)과 관련된 것은 <아랑가(阿郞歌)>, <애아랑가(愛我娘歌)> 등이 있다.

 

阿郞歌

 

70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아르랑타령을 정잘하면

술이나생기어도 삼잔이라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세월아봄철아 가지마라

長安의 호걸이 다 늙는다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저 달은 반달인데

임 계신데를 보련마는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달아보느냐 임 계신데

明氣를빌려라 나도 보게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明沙十里 海棠花야

꽃 진다고 설워마라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明年三月 春節이 되면

너는다시 피려니와

아르랑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얼시고 아라리야

人生한번 죽어지면

움이날까 싹이날까 (竹山郡) (韓國民謠集Ⅵ–70)

 

阿郞歌

531

에그럭 데그럭 軍刀 소리

노름군 肝腸이 다 녹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이요

阿郞 阿郞 阿郞이야 (私立扶安普通學校) (韓國民謠集Ⅵ–531)

 

愛我嫏歌

360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 병들면 못 노느니 (槐山群) (韓國民謠集Ⅵ–360)

 

<아랑가(阿郞歌)>는 술을 잘 마시는 장안의 호걸이나, 노름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애아랑가(愛我嫏歌)>는 젊었을 때 재미있게 놀고 지내자는 내용이다.

아랑(阿郞)과 아랑(阿娘)의 관계가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밀양 전설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정조를 지키려다 통인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여 꿈속에 나타나는 아랑(阿娘)에 대한 내용은 없으며, 이는 같은 자료에 나오는 <밀양 아리랑>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랑 전설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가? 그것은 젊은 여자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민족성을 부각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년)에 나오는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 내린다는 속담과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904(361)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백성을 두려워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속담의 원래 뜻은 여자에게 한 맺힌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이를 '조선 속담집 부록 민담'(1914)에서 임금이 정치를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속담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속담이 목표로 하는 것은 조선 위정자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의 식민통치를 정당화시키는 논리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에서는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단순해 보이는 내용이지만 그 배경에 대해서는 한자로 병기되어 있다.

 

兒郞偉, 築室時頌禱之文也, 起於六朝時, 其後宋楊誠齋, 王介甫集中, 亦見之, 文用騈語, 末附詩上下東西南北等凡六章

 

아랑위로 축문을 하는 풍습이 중국의 육조시대에 기원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건축할 때 아랑위를 하는 행위는 중국에서 받아들인 사상을 조선에서 사용한다는 논리이며, 이는 조선 민족성을 분류할 때 지적한 ‘사상(思想)의 무창견(無創見)’과 연결시키고 있다.

무창견이란 철학 및 종교에 있어서 중국사상 외에 조선에서 독립적으로 창조된 사상이 하나도 없음을 말한다. 이는 진화론에 입각한 우등과 열등의 논리에 근거를 두며, 그러한 이유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구조이다.

그러나 식민사관에 의해 편찬한 역사책에서 조차도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 등 수많은 고대의 한국인들이 왜국(倭國)에 건너가 문명을 일깨우고, 사상을 불어넣어 주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알영(閼英) 이야기는 어디에서 주은 것일까? 발생시기와 관련하여 이광수가 민요소고에서 제시한 삼국시대 기원설과 일부 관련이 있을 수 있으나, 삼국시대 중에서 신라에서 발생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당시의 식민사관(植民史觀)의 입장에서 보는 신라(新羅)와 박혁거세라는 측면이다.

식민사관에 의하면, 임나일본부를 비롯하여 신라는 왜의 식민통치를 받았다는 논리체계에 있었고, 더구나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가 일본 왕족이라는 사관을 갖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라의 노래는 고대 일본 식민지의 노래이고, 이는 일본의 노래이며, 일본왕족 출신으로 신라에 건너와 박혁거세로 이름을 바꾼 일본사람의 아내인 알영을 찬양하는 노래라는 논리를 통해 식민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신라는 시조인 박혁거세부터 일본 왕족에 의해 다스려진 식민지라는 논리도 성립된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알영(閼英)이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발음상의 특이성은 당시의 논리와 결합되어 김알지(金閼智)를 연상시키는 작용을 한다.

즉 식민사관에서의 김알지는 일본호족인 기무오치(金閼智)로, 또 다른 일본호족 출신인 석탈해(昔脫解)가 박혁거세를 몰아내고 왕이 되자 바다를 건너와 신라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왕이 된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이름의 알영(閼英)을 등장시킴으로써 알지(閼智)를 연상시키는 과정을 통해 아리랑을 일본 왕족을 찬양하는 노래로 유도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아리랑 발생설에 나오는 화소들을 총독부 자료와 대비해 보면 실제 민요의 내용과 다르게 되어 있고,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물론 그와 유사한 명칭들인 아르랑, 아리랑가(歌), 아리랑 타령, 아리랑 타령(打令), 아라랑, 아르렁 타령(打令), 아라리 타령 등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언급하지 않는 대신 아이롱, 아난리, 아랑, 아랑위, 알영 등을 조작하여 발생설의 기원으로 주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발생설은 다른 의도를 갖고 만든 것이다.

 

Ⅳ. 아리랑 동북공정 비평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만주 등 동북지방의 지리, 역사, 민족 문제 등을 연구하는 국가 연구 사업으로, 동북 변강사 및 현장 계열 연구 공정(東北 邊疆史 與 現狀 系列 硏究 工程, Northeast Borderland History and the Chain of Events Research Project of the Chinese Academy of Social Sciences)을 이르는 말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2002년부터 사회과학원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근래 들어 한복, 민요, 김치, 아리랑 등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중국에 포함시키려는 '문화 방면의 동북공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아리랑의 경우, 지난 2009년 8월 문화재청은 정선아리랑의 등재신청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지만 다른 무형문화유산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심사 대상이 되지 못했다. 등재가 시급해진 것은 2011년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阿里郞)를 자국의 국가급 무형유산으로 발표하면서부터다.

문화재청은 중국의 움직임에 대응해 다음해 1월 아리랑을 등재 우선심사대상으로 선정했다. 6월에는 정선아리랑의 범위를 확대해 등재 대상을 후렴구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끝나는 ‘전 국민의 아리랑’으로 수정한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초 문화재청은 남북 공동으로 아리랑의 등재를 추진하려 했으나 일정이 촉박한데다 북한과의 교류가 원활치 않아 이 계획은 무산됐다.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12년 5일 유네스코 제7차 무형문화유산위원회가 한국의 대표 전통민요 아리랑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발표하였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릉단오제 등을 비롯해 총 15건에 이르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아리랑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리랑이 단지 한국 일부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가 아니라 북한은 물론 중국의 조선족 등 외국에 거주하는 동포들까지 공유하는 민족 전체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몇 년 후, 북한도 독자적으로 아리랑을 등재했다. 즉 2014년 11월 2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북한이 신청한 'Arirang Folk song i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아리랑 민요)를 등재했다. 이는 북한의 첫 인류무형유산 등재다.

 

아리랑 동북공정

뉴스 매체 등에 의하면 중국 매스컴에서 조선족이 등장하는 무대에 한복, 아리랑, 부채춤 등이 중국 문화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이 국내 누리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한국문화를 중국의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거나, '한국 전통 민요인 아리랑에 맞춰 춤을 추는데 한국에 대한 얘기는 하나도 없기 때문에 중국 것으로 생각하는 문화 동북공정이 아니고 뭔가라든지, '아리랑과 한복은 엄연히 한국 고유의 것인데 중국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상황은 계속 반복된다.

한국 전통문화가 조선족 문화와 '공유'되는 측면이 있지만, 중국 예능에서 마치 중국 것인 양 소개되는 것은 세계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중국 행보에 대해 역사 문제를 정치화하기보다 학술 자료와 연구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리랑 원형연구로 정면 돌파

아리랑이 중국의 것이냐 아니냐로 국민적 정서가 혼란스러운 모양새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리랑의 본질을 정확히 알면 혼란스러울 것도 없고, 중국의 것이다 아니다 할 필요도 없다. 아리랑은 왜 중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노래이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아리랑 원형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즉 중국이 아리랑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한다거나,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신청하면 스스로 자기 부정(自己 否定)을 하는 모양새가 된다.

중국은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기 등록한 아리랑을 "기원이 같고 공유하는 무형문화유산은 주변국과 공동으로 신청, 협력과 연구를 강화하고 선린우호 관계도 증진"한다는 측면에서 유네스코에 무형문화유산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떠나 오해(誤解, 誤会)에서 비롯된 잘못된 결정이다.

물론 모든 형태의 아리랑에 대한 등록이나 지정 신청을 반대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리랑에는 다양한 각편(version)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중국 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불리는 장백산 아리랑 등 변이 형태에 대하여 무형문화재로 등록하고,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 하는 일은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는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지정 신청하는 일은 중국 스스로에게도 문제가 된다. 아리랑은 한국의 노래이며, 중국을 포함한 어떠한 나라도 아리랑을 소유할 수는 없다. 아리랑의 본질을 잘 모르는데서 나오는 오해이다.

아리랑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인 만큼 역사적으로도 왜곡과 오해가 존재해 왔다.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은 오해(misunderstanding)의 문제이다. 중국은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아리랑이 "기원이 같고 공유“한다고 생각하지만 역사 기록을 통해 보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나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유행가가 아니라 여말선초에 만들어진 참요이다. 아리랑의 원형을 재구하면 젊은 남녀가 남녀혼성 듀엣이라는 형태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다.

여말선초에 재구된 아리랑은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부활시키려는 애국과 충성의 노래로 “내 조국은 고려다!” 라는 충신들의 애국심이 담겨있다.

고려의 멸망과 더불어 아리랑은 금지곡이 되었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조선의 궁궐에서도 아리랑을 부르게 됨으로써 국가적으로 공인받게 되었다. 고려의 노래가 조선의 노래로 인정되는 과정을 통해 민족의 노래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아리랑은 현대국어가 아니라 14세기 중세국어로 되어 있으며, 고려에 대한 충성의 노래임을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중국의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이므로 다양한 민족의 문화전통을 계승하려는 측면의 노력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아리랑은 상황과 역사적 전통이 다르다. 일련의 상황들은 아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잘못된 인식의 결과이므로, 오해를 풀고 더 이상 중국의 노래라고 주장하지도 말고, 유네스코 신청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의 조국은 언제나 영원한 고려(高麗)이기 때문이다.

본 연구를 통해 아리랑에 숨겨져 있던 동북공정을 해결하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될 될 것이며, 아리랑 바르게 알리기 세계화 운동의 이론 정립(确立正确宣传阿里郎的世界化运动理论)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아리랑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아리랑은 왜 중국의 노래가 될 수 없는가? 韩国的阿里郎为什么不能成为中国大陆的歌曲? Why Korean Arirang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can't be a song of mainland China?” 등의 내용으로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여 년 세월, 아리랑 원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아리랑이 다른 어떤 나라의 노래가 아닌 한국(Korea)의 노래임을 증명하고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민족 노래를 대표하는 아리랑의 본질적이고 숭고한 의미를 세계에 바르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Ⅴ. 결론

아리랑은 한민족 정신세계의 중추신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민족의 노래이지만 주변국의 무례와 왜곡으로 인하여 민족적 존엄성과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해야 할 것이나 아직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틈나는 대로 아리랑을 중국의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아리랑의 원형을 재구하면 아리랑은 무너져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애국과 충성의 노래로 “내 조국은 고려다!” 라는 충신들의 애국심이 담겨 있다.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조국은 고려가 되고, 대한민국이 되는데, 과연 중국은 아리랑을 자국의 노래라고 할 것인가?

아리랑이 고려에 대한 충성의 노래임을 알지 못한데서 나오는 중국의 오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리랑을 부르는 사람들의 조국은 언제나 영원한 고려(高麗)이며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찍이 조선총독부에서 연구한 논리로 아리랑 발생설을 만들었다. 아이롱(我耳聾)설, 아리랑(我離娘)설, 아난리(我難離)설, 아랑(阿娘)설은 조선 망국의 책임을 위정자들의 압제에 돌림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전개하려는 논리를 숨기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설은 자체적으로 만든 사상이 없는 무창견의 민족이므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알영(閼英)설은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일본 왕족이고 신라는 고대로부터 식민지였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 구조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조로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결정체였던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국권을 빼앗겼던 1910년으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족 노래 아리랑은 식민사관의 틀에 갇힌 채 뜻 모르는 노래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리랑 연구라는 학술적 포장 속에 숨겨져 있던 식민사관을 걷어내고 원래 아리랑이 갖고 있는 숭고한 의미를 찾아 민족적 자존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앞으로 아리랑의 선행기록과 원형연구에 대한 투철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을 더욱 굳세게 지켜나가면서, 한국의 아리랑을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 나가야 할 것이다.(제4부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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