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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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4)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2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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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밀양 아리랑 연구-1(제6 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여섯번째 주제는 '밀양 아리랑 연구'이다.(편집자주)

 

 

 

밀양 아리랑 연구 Studies on Milyang Arirang

조용호(趙容晧)

 

Ⅰ. 서 론

아리랑이 언제부터 불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역사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에 의한 기록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아리랑의 연원에 대하여 매우 특별한 주장이 제기되었다. 1930년 6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는 총독부 촉탁 김지연이라는 이름으로 「조선민요 아리랑」이 기고되었다.

아리랑의 어원과 더불어 몇 개의 아리랑 노래들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아리랑 연구의 흐름을 바꾸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거기에 나오는 6개의 ‘아리랑 발생설’은 추구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리랑 연구의 연원이 되고 있다.

아리랑 발생설은 경복궁 부흥공사나 신라시대라는 역사적 사실과의 연관성, 밀양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설화, 건축과 관련된 민속 등과 결부되어 있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설로 자리 잡았고, 지금까지도 아리랑 연구에 기본이 되는 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밀양 아리랑>에 대한 발생의 연원이라든가, 가사 채집 등에 대한 연구도 있었다. 진행된 결과를 종합하면 <밀양 아리랑>은 1900년대 이후에 다양한 아리랑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근대민요이며, 신민요 형태로 유행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밀양 아리랑>은 근대에 만들어진 유행가라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신민요라는 견해는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의 성격과 기록을 심층적으로 고찰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새롭게 발견되는 기록을 반영하지 않은 채 진행해 왔으며, 개인적인 기호에 따라 선별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왜곡된 연구를 도출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근대에 만들어진 신민요로 고착되었다.

본고는 <밀양 아리랑>의 학술적 체계 정립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역사성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롭게 발굴되고 연구되는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사를 정립함으로써 학술적 체계를 마련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밀양 아리랑>의 연원에 대한 지속적인 고찰이 가능하게 된다.

주제어 : 밀양아리랑 메리아리랑 전통민요 여말선초

 

Ⅱ. 선행연구의 정립

아리랑에 대한 학술적 체계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선행연구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다양한 기록과 자료를 심도 있게 고찰해 보면, 아리랑이 처음부터 학술적 연구의 대상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근대의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매우 특별한 노래로서의 아리랑에 대하여 기록하였고, 내국인에 의한 기록도 시간이 흐름 속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민요 연구로서의 아리랑이 학술적 논의의 대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의 뜻조차 밝히지 못하게 됨으로써 뜻 없는 후렴구의 노래이고, 발생 시기는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생각으로 고착되어져 왔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기록들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황현, 헐버트, 시노부 쥰페이, 임동권, 메리 린리 테일러, 와다텐민, 최영년, 이치야마 모리오, 최남선, 김소운, 어영(於英)설, 고권삼, 님 웨일즈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록들이 학술적 범주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밀양 아리랑>도 전통민요가 아니라 영화 ‘아리랑’의 유행을 바탕으로, 창작한 신민요라는 주장으로 고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근대민요는 많은 경우 걸출한 음악가에 의해 창작되기도 한다는 관점인데, 영화 ‘아리랑’은 단성사의 음악인이 만들었다든가, <밀양 아리랑>은 작곡가 박남포가 창작했다는 주장과도 맥을 같이 한다.

또한 아리랑 연구의 연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아리랑 발생설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비평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아리랑’과 유사한 형태의 발음과 이에 대한 설화적 설명을 곁들이면 아리랑이 된다는 김지연 식 연구방법의 기원과 그것이 갖는 사상적 배경 및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서 결코 단 한 번도 학술적 회의의 대상이 된 바 없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없었다.

뜻 모르는 후렴구로 판정한 당대의 아리랑에 대하여 다양한 종류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어떠한 시대적 상황에서 나타난 것이며 의도하는 목표가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없었던 것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조선 총독부에 의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논리구조로서 식민사관의 결정체였다. 이는 1912년부터 시작된 조선 민요 연구에 관한 사상적 완결편이었다.

민요를 통해 나타나는 조선의 민족성을 파악하는 차원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며, 이와 동시에 소실된 것으로 판정된 아리랑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총독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으며, 조선민족의 혼이라는 아리랑을 통해 조선 민족성에 대한 열등성을 객관화시키고 내선일체의 기반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다.

아리랑 연구사에 대한 다양한 종류의 자료 수집과 이에 대한 객관적인 비평을 통해 아리랑의 현상과 <밀양 아리랑>의 위상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있게 된다.

 

Ⅲ. 존재양상과 상관관계

<밀양 아리랑>과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밀양 아리랑>이 어떠한 영향으로 만들어진 노래인가라는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노랫말이 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912년, 전국에 걸쳐 조사된 민요 관련 자료에는 아리랑⋅아르랑⋅아라랑⋅아라리 타령 등과 같은 표기가 있고, 노래 곡명으로는 <아리랑가(歌)>⋅<아리랑 타령>⋅<어르렁 타령(打令)>⋅<아르렁 타령(打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난다.

 

<어르렁 타령(打令)>

날 바리고 가는 임은

십리를 못 가서 발병 나지 (한국민요집 Ⅳ-364)

 

<사랑가(歌)>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十里)도 못가서 발병난다 (한국민요집 Ⅳ-1125)

 

<아리랑>의 가사와 동일한 내용들이었으나, 전체 가사가 없다는 이유로 <아리랑>과는 다른 것으로 여겨져 왔다. 또 다른 자료 중에 <아랑가>는 <밀양 아리랑>의 가사와 연관성이 있고, 경북지역 아리랑도 채집되어 있다.

 

阿郞歌

531

에그럭 데그럭 軍刀 소래

노름군 肝腸이 다 녹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이요

阿郞 阿郞 阿郞이야 (私立扶安普通學校)

(『韓國民謠集』Ⅳ-531)

 

전라도 부안에서 채집된 <아랑가>에는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이요 / 阿郞 阿郞 阿郞이야”라는 특이한 형태의 후렴구가 나온다.

또한 아리랑은 <어르렁 타령(打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라는 후렴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사랑가(歌)>라는 형태로도 존재한다.

1918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는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금강산 장안사에서 들었던 구슬픈 가락의 한 소절이 수록되어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이 뱃노래를 연상시키며, 곡조 자체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노래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 기록은 2014년에 국문으로 번역되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조용호는 이 노래를 평가하면서 <메리 아리랑>이라고 명명하였다.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서 김지연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신(新) 아리랑>이라고 다르게 명명하였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이 온다네 […]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靑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출현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전통아리랑에서 변형된 노래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곡목에 변동은 없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정식 노래 곡목으로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가사 내용이 다른 다수의 <신아리랑>이 나타났으며, 신민요라는 명칭도 차층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전라지역에서 채집된 노랫말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

 

<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버리고가는님은

十里를못가서발병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豐年이온다네 豐年이온다네

三千里江山에 豐年이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山川에草木은 젊어가고

人間에青春은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青天하늘엔 별도만코

우리네살림사리 말도만타

 

<아리랑>과 비교하면 ‘가시는 님’이 ‘가는 님’, ‘십리도’가 ‘십리를’로, ‘발병난다’가 ‘발병나네’로 되어 있고, 노래의 구성은 4절까지 되어 있다. 이 가사는 영화 ‘아리랑’의 영향으로 생겨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동일한 자료에서 <별조(別調) 아리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곡명으로 출현하기도 한다.

 

<別調 아리랑>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오

넘겨나 줄마음 간절하나

시부모 무서워 못넘기네

아무렴 그럿치 그럿코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성화냐

 

(2)

白頭山 아래다 憲兵隊짓고

새방안 補助員 出張만난다

너-는 죽어서 自動車되고

나-는 죽어서 運轉手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오

 

기존에 불리던 4행과 달리, 6행으로 되어 있다. 곡조가 어떤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기존의 아리랑과는 형태가 다르다. 곡조가 다르기 때문에 별조(別調)라는 명칭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밀양(密陽) 아리랑>이라는 지명이 표기된 가사도 있다. 다만 지금의 <밀양 아리랑과>는 내용이 다르다.

 

<密陽 아리랑>

一.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얼시구노다 가게

십오야 밝은달에 님업스면

단장에 상사로 눈물이난다

 

二.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얼씨구 님하고놀가

심산궁곡 깁흔곳에

오작이한쌍이 입에물고 논다

 

三.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얼씨구 님하고놀가

내가잘나 네가잘나 그-누가잘나-

구리백통 지전이라야 일색이지

 

四.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얼씨구 님하고놀가

저기저기 저산이 계룡산이드냐

오-동지섯달에 고목이픠엿네

 

五.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아리랑 응 얼씨구 날이젓네

엇던에 삽놈이님좃타드냐

알고나보면 원수로구나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아리랑 얼씨구 날이젓네

 

<서울 아리랑>이라는 명칭도 이미 사용되고 있다. 아리랑의 명칭은 기존에 사용된 명칭과 대비하여 새롭게 명명하거나 구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커다란 혼란이 야기된다.

 

<서울 아리랑>

아서라말아라 네가그리말아

사람의괄세를 네가그리말아

아리랑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속에서 넹겨넹겨주소 […]

날삽아가오 날삽아가오

한양의랑군아 날삽아가오

아리랑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속에서 넹겨넹겨주소

 

<서울 아리랑>이라고 명명할 정도의 서울에 대한 내용은 없으나 “한양의 랑군아“라는 내용이 있어서 이해는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서울 지역에서 불리던 노래를 채집한 것이어서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이다. 후렴구는 기존과 달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낫네“라는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30년 12월 「조선민요 아리랑」에는 또 다른 형태의 아리랑이 나타난다. <정음 신태인 아리랑>이 그것인데, 용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며 가사의 표현 형식에도 특이한 부분이 있다.

 

<井邑 新泰仁아리랑>

 

一. 논中에沃土는 新年路로 들고

사람이난놈은 監獄으로든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二. 홍둣박망이 八字가조화

큰아기손길에 다녹아난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三. 열두살먹어서 술잔을드니

謂之日公論이 갈보라한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四. 보담더단것은 진고개사당

초보담더신것은 큰아기중동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정읍 신태인 아리랑>에는 ‘아리랑인가 용텬인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러한 구절이 더 변형되면 <순창 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淳昌아리랑>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

거름손이나 하는놈는 제자품팔고(길품)

물자먹이나 하는놈은 전중이가고

글자나 하는놈은 긔장질가고(書堂教師노릇)

일주먹이나 하는놈은 治道판간다

아라린가 지라린가 용텬인가

 

<순창 아리랑>에는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사의 형태로 보면 <정읍 신태인 아리랑>이 발전하여 <순창 아리랑>이 되었다.

<영천 아리랑>이라고 불리는 아리랑의 원형에 해당하는 후렴구 형태이다. 영천 아리랑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순창 아리랑>의 변이형일 뿐이며, 구태여 명명한다면 <용천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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