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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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6)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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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아리랑의 명칭에 대한 연구-1(제7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일곱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명칭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아리랑의 명칭에 대한 연구 Studies on the naming of Arirang

조용호(趙容晧)

 

Ⅰ. 서 론

학술지나 학위논문은 물론이고 아리랑에 대하여 글을 쓰거나 연구를 하는 경우에 있어서 당면하게 되는 문제는 아리랑의 뜻이라든가 발생 시기, 명칭 등 선행연구(先行硏究)에 대한 탐색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아리랑에 대한 명칭(名稱)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은 아리랑 연구의 기본이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리랑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저명한 한국의 노래이다. 아리랑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한 곡의 노래를 특히 <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ARIRANG ARIRANG ARARIO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ARIRANG GOGAIRUL NAUMO KANDA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NAR RUL PAURIGO GASINUN NIMUN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SIMNIDO MOTGASAU PALPONGNANDA

 

<아리랑>은 애조를 띤 아름다움 속에 우리민족의 순박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한국심(韓國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널이 알려져 있는데, 영문으로는 아리랑(Arirang), 중국어로는 아리랑(阿里郞), 일본어로는 아리랑(アリラン) 등으로 표기되고 있다.

아리랑의 종류는 다양하다. 노래 곡목으로서의 <아리랑> 외에도 여러가지 있다. 가창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아리랑>⋅<밀양 아리랑>⋅<진도 아리랑>⋅<정선 아리랑> 등 전국적으로 다양하며, 중국⋅일본⋅미국⋅중동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또한 곡조가 오래된 것은 <구아리랑>, <구조아리랑>, <긴아리랑>이라고도 하며, 출현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이전부터 불리어 온 것을 전통 아리랑, 1920년대 이후에 새롭게 변형된 신민요 아리랑, 현대적인 모습의 대중가요 아리랑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명칭을 대하면서 생기는 의문은 노래제목으로서의 아리랑은 어떻게 명명된 것일까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리 불린 것인지, 중간에 변화는 없었는지, <경기아리랑>⋅<강원아리랑>⋅<경상도아리랑> 등과 같은 지역명을 사용하는 명칭은 올바른 것인지, 일부 사람들이 <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나 <서울아리랑> 등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올바른 것인지, 정당하지 않다면 어떻게 개정해 나갈 것인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물음과 대답이다.

왜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의 명칭이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학술적인 체계로 정립되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리랑의 경우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지역명을 사용한 형태인 <경기아리랑>이라든가 <밀양아리랑> 등의 경우 과연 노래 곡목으로 적합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지역 아리랑이 한 종류만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2곡 이상 여러 곡목이 있을 경우는 사용에 혼란을 주는 명칭이 되어 변별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역명을 사용한 아리랑의 명칭은 마치 경기민요와 같은 그룹핑 개념이 된다. 지역 또는 권역을 구별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따라서 노랫말의 특성에 맞는 특징적인 단어를 추출하고 이를 중심으로 자체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이름이 있어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해주아리랑>⋅<진도아리랑>⋅<정선아리랑> 등 다른 지역별 아리랑도 마찬가지이며,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구아리랑>이나 <긴아리랑>도 다를 바 없다.

본고는 전체적인 연구사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아리랑의 명칭에 대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기록에 대한 검토와 비평을 동시에 가함으로써, 그간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오던 아리랑 각편이 가지는 명칭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하면 체계적인 명명법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주제어 : 아리랑, 명칭, 경기아리랑, 전통아리랑, 신민요아리랑

 

Ⅱ. 초기 명칭에 대한 고찰

아리랑 각편(version)의 명칭은 민요의 특성상 특별한 학술적 검증 없이 명명되어 왔기 때문에 혼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1894년, 현존하는 가장 이른 기록인 『매천야록』에서 황현은 아리랑(阿里娘)으로 표현하였다. 이후에 나타나는 다른 기록에서는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896년, 미국인 헐버트는 「조선의 성악」, '조선 노래 모음집(The Korea Repository)'(1896, 49~50쪽)에서 아르랑[영문은 Ararung]으로 표기하였고, 다양한 특성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아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음식중 주식인 쌀밥에 해당하며, 조선의 성악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중 애창곡인데, 단가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오랜 기간 불리어져 왔으며,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고, 수많은 변형이 가능한 곡조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후렴구는 뱃놀이와 관련된 내용이 많은데, 아리랑의 뜻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 보이며, 주제는 다양하다고도 하였다.

원문에는 아리랑을 주식인 쌀밥에 비유하고 있는데, 거의 모든 국문 번역 자료에는 “아리랑은 쌀”이라고 잘못 번역하고 있다.

1901년,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는 아라랑(アララン)歌로 표기하였고, 한역(漢譯)하여 아란곡(阿蘭曲)이라는 명칭으로도 표현하였다. 중류층 이하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으며, 슬픈 음조의 노래라고 하였는데, 이는 헐버트의 기록과 동일하다. 아리랑은 깊은 감동을 주는 노래로, 이미 조선을 대표하는 노래로 자리매김 되어 있었다.

1912년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민요 조사 자료인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는 다양한 아리랑의 모습이 있다.

한 예로, 경기지역에서 전래되던 명칭의 형태로는 아리랑, 아르랑, 아라랑, 아라리 타령, <아리랑가(歌)>, <아리랑 타령>, <아리랑 타령(打令)>, <아르렁 타령(打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경기지역에 전해지던 아리랑은 모두 <경기 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발음상의 차이는 있으나 노랫말에 나타나는 아리랑이나 아라리 등의 구절을 사용하여 제목을 정하고 있다. <경기아리랑>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특정한 노래에 대하여 <경기 아리랑>이라고 곡목을 정하는 것은 잘못된 명명법이 된다.

1918년,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기록한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는 금강산 장안사에서 들었던 구슬픈 가락의 아리랑을 채집되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아리랑은 뱃노래를 연상시키며, 노래 가사에 정치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노래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간 논란이 되었던 것 중에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라는 구절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는 1926년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노래가 불린 지역은 금강산이지만 노랫말의 형식은 경기지역에서 불리던 아리랑이다.

1921년, 와다 텐민[和田天民, 久保田天南 畵, 조선의 향기(朝鮮の匂ひ), 京城:ウツボヤ書籍店, 1921]은 아리랑의 후정화적 성격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아리랑이 발생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조선 말기에 궁궐에서 한창 유행하다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널리 불리어졌다. 노래는 <후정화>에 비유될 정도로 애조를 띤 곡조이다.

1924년, 이광수는「民謠小考(1)」에서 아르랑 타령으로,「민요에 나타나는 조선 민족성의 한 단면」에서는 아라랑(アララン)으로 표기하였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면서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노랫말은 어린 시절에 들었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삼천리』, 1937. 1)에서 회고하였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날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만타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 가네

 

전체 4절중에 1절은 <아리랑>이며, 2절은 1918년에 채집된 가사와 내용이 같다. 장안사에서 들었던 아리랑의 전체 가사는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일부 내용에 해당되고 있다.

1927년 1월, 조선민요 연구(朝鮮民謠の硏究)가 발표되었다. 총독부 관련자들이 관여되기는 하였지만,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연구로 특집호로 출판되었다.

최남선(崔南善), 이광수(李光洙), 이은상(李殷相) 등을 포함한 다수의 논문이 실려 있다. 서문에 해당하는 예언(例言)에 조선민요에 대한 관심이 잘 나타나 있다.

이광수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구절이 생략되어도 <아리랑>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조선민요연구」)

 

유행가가 아니라 전래되는 민요로 인식하고 있다. 노랫말은 1912년에 채집된 <어르렁 타령(打令)>의 가사와 같다.

최남선도 아라랑(アララン)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아리랑이 전국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경상⋅전라⋅강원⋅서도 등지의 아리랑을 제시하였다.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는 측면에서 1912년에 채집된 자료와 일치되는 부분이 있다. 이때까지는 지역 명칭을 사용한 아리랑의 형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자료에서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는 “민요에 대한 연구는 지금에 이르러 여러 문명국에서는 자료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조선의 경우는 아직 단 한 번의 쟁기질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근래 들어, 여러 방면에서 점차적으로 조선에 대한 연구열이 고조되고 있지만, 진실한 의미에서 조선을 알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이 나라의 민족성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차원에서, 소박한 민중의 시대적인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민요를 통해 조선인의 민족성을 엿보는 일은 가장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민요 개관(朝鮮民謠の槪觀)」에서 아리랑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궁중이 온통 민요의 향락장이 되면서 새로운 노래들이 수없이 만들어 졌다.

고종 임금이 어렸을 적에 들었던 경복궁 부흥시의 노작민요(勞作民謠)는 물론이고, 기존에 전래되던 아리랑 등의 민요가 새로운 형태로도 만들어졌다는 측면을 이야기하고 있다.

1929년, 김소운은 최남선이 아리랑을 지역별로 나누어 분류한 이래, 경성(京城)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지방의 것, 서부 조선을 주로 한 것, 강원도 부근의 강원 아리랑, 부산 등지에서 듣는 남부 조선의 것, 전라도의 특이한 아리랑 등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아리랑에 대한 율조(律調)를 논하면서 <江原 아리랑>⋅<京畿 아리랑>⋅<西道 아리랑>⋅<嶺南 아리랑> 등을 악보와 함께 소개한 것이다. 이때 비로소 지역명을 사용한 아리랑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김소운은 당대 지식인의 입장에서 느끼는 조선 민요의 위상, 아리랑의 발생 시기, 조선 문학의 해외 소개 방안 등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리랑의 율조에 대하여」는 그러한 생각을 담아 일본어로 정리한 것이다.

아리랑이 언제 발생한 것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경복궁 수축시기에 널리 퍼졌다고 인식하고 있다. 노랫말 속에 애조(哀調)를 띠고 있고, 채보된 악보를 통해 지역마다 다른 율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선 <경기 아리랑>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는 <アリラング(1)>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모도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노다가게

 

한편 <京畿 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병기된 가사는 같은 내용이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노다가게

 

이 부분에서 잘못된 내용은 ‘띄여라’에 대한 일본어 해석이다. 배를 띄우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뛴다는 뜻의 뛰어라[跳べよ]로 되어 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이다.

아리랑(3)은 <江原 아리랑>이다. 노랫말 곡조는 밝고 경쾌하다. 일부에서 제기한 망국적이라는 비가적(悲歌的) 음조가 아니다. 우리말로 해석하여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열나는 콩파튼 아니 열고

아주까지 동백은 왜 여련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얼시고 노다가게

 

채보에서 표기된 명칭은 아리랑[アリラング(1)]이며 영문으로는 Alirang으로 되어 있다. 노래의 명칭을 <京畿 아리랑>이라고도 한 것은 경기 지방에서 만들어져 불렸기 때문이다.

김소운이 <京畿 아리랑>이라고 명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과 무관하게 노랫말에 나오는 ‘문경새재’라는 가사 때문에 <문경 아리랑> 등으로 재명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경기아리랑이라는 지역명을 사용하는 것이 일부 부담이 되었는지 경기 아리랑 1, 2, 3, 4로 표기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근래에 들어와 사용하고 있는 <영천 아리랑>이라는 명칭도 만주의 용천이라는 지명이 영천으로 바뀐 것[金志淵, <井邑新泰仁 아리랑>, 「朝鮮民謠 아리랑(二), 朝鮮民謠의 硏究(三)」, 朝鮮, 朝鮮總督府, 1930.7, 76쪽 및 金志淵, <淳昌 아리랑>, 「朝鮮民謠 아리랑(二), 朝鮮民謠의 硏究(三)」, '朝鮮', 朝鮮總督府, 1930.7, 78~79쪽 참조]이다. 후렴구 형태는 원래 <순창아리랑>의 변종이며, 사설은 아리랑(3)으로 명명된 <강원아리랑>을 채용하고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영천이라는 지명은 원래 용천의 전음이기 때문에 구태여 지역명을 사용하여 명명한다면 <용천아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곡명으로서의 <용천아리랑>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진도 아리랑>이나 다른 아리랑에도 노래가 만들어져 불리는 지역 이외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아리랑이라는 노래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노랫말에 반영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음에 계속)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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