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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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17)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8.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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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아리랑의 명칭에 대한 연구-2(제7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일곱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명칭에 대한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신민요 이후의 변모

전통적인 아리랑과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을 구분하는 분수령이 되는 것은 1920~30년대이다. 그중에서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서 김지연은 영화 주제가 ‘아리랑’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신(新) 아리랑>이라고 다르게 명명하였다.

<신아리랑>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출현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전통아리랑에서 변형된 노래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곡목에 변동은 없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정식 노래 곡목으로서 사용하게 되었다. 신민요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명이 된 것이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이 온다네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에 초목은 젊어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靑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신(新) 아리랑>은 기존에 불리던 아리랑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붙여진 곡명이다. 내용이 다른 다수의 <신아리랑>이 나타났으며, 신민요라는 명칭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주제가 ‘아리랑’과 <신(新)아리랑>을 비교하면, 영화 주제가 ‘아리랑’의 4절을 <신(新)아리랑>에서는 2연으로 했고, ‘십리도’가 ‘십리를’로, ‘이 강산 삼천리’가 ‘삼천리 강산’으로 바뀌었으며, 일부의 글자도 한자로 바뀌었다.

한편, 같은 해 7월에 수록된 <신아리랑>은 이전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나중에 나타나는 <신아리랑>이라는 곡명도 모두 이러한 변형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1934년 <최신 아리랑>⋅<마즈막 아리랑>⋅<아리랑 눈물고개>⋅<아리랑 눈물고개> 등의 노래가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강남향⋅고복수⋅이난영은 함께 <신아리랑>을 불렀다.

1930년대 중반에 다양한 종류의 <신아리랑>이 대거 등장하여 유행한 이래,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이외에도 <新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타령> <新 아리랑> <新作 아리랑> 등의 형태를 수록하였다.

명명 방법은 지역명이 붙는 아리랑과 관련하여 <{하나 또는 두 개의} 지역명(또는 道) 명칭+아리랑>(타령/打鈴/세상)이라는 형태를 사용하였고, <新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타령> <아리랑 打鈴> <아리랑 고개> <新作 아리랑> 등과 같은 형태의 명칭도 사용하였다.

<서울아리랑>이라든가 <별조아리랑>도 등장하였는데, 이는 후일에 또 다른 명칭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된다.

김지연의 글이 발표된 다음 달에 김재철은 「民謠 아리랑에 對하야(三)」(조선일보, 1930.7.13.)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에 불리고 있던 또 따른 형태의 아리랑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노래의 성격과 관련하여, 시대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적(直接的)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풍자적(諷刺的)이라는 형태로 시대에 대한 원망(怨望)을 나타내는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경복궁 타령과 같은 동시대에 나온 노래들을 풍자미(諷刺味)가 농후(濃厚)한 반감(反感)의 노래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치야마 모리오(市山盛雄)는 『조선풍토가집(朝鮮風土歌集)』(眞人社, 1935)에서 아리랑(アリラン)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기존에 사용하던 아라랑(アララン)이라는 대신에 아리랑(アリラン)으로 정정하여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1941년 '아리랑(Song of Ariran)'에서 님 웨일즈(Nym Wales)는 아리란(Ariran)으로 표현하였다. 아리랑이 만들어진 시기가 조선시대이며, 노랫말에 아리랑 고개라는 구절이 없었는데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비밀결사의 노래로 바뀌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1918년 『호박 목걸이』에서 아리랑이 정치적 성격을 띤 암호라고 한 내용과 같다. 아리랑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참요 성격을 띤 비밀결사의 노래로 외면에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신아리랑>이 과거로부터 연속되며 나아가고 있다는 측면에서 1959년 성경린⋅장사훈은 <본조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진도 아리랑>, <긴아리랑>, <신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과 같은 명명법을 사용하여 아리랑의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11절로 된 <본조(本調)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것이다.

이 명칭이 등장함으로써 후일의 연구자들은 <아리랑>이 <본조아리랑>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갖게 되었다.

 

Ⅳ. <본조아리랑> 명칭의 대체

4.1 本調 아리랑 명칭의 오용

성경린⋅장사훈의 공저 '조선의 민요'(국제음악문화사, 1959).에서 <본조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本調 아리랑

 

이씨(李氏)의 사촌(四寸)이 되지 말고

민씨(閔氏)의 팔촌(八寸)이 되려무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以下 후렴은 省略함)

남산(南山) 밑에다 장충단(獎忠壇)을 짓고

군악대(軍樂隊) 장단에 바뜨러 총(銃)만 한다

아리랑 고개다 정거장(停車場) 짓고

전기차(電氣車) 오기만 기다린다

문전(門前)의 옥토(沃土)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身世)가 왼 말인가

밭은 헐려서 신작로(新作路) 되고

집은 헐려서 정거장(停車場) 되네

말깨나 하는 놈 재판소(裁判所) 가고

일깨나 하는 놈 공동산(公同山) 간다

아(兒)깨나 낳을 년 갈보질 하고

목도깨나 메는 놈 부역(賦役)을 간다

신작로(新作路) 가상다리 아까시 은

자동차(自動車) 바람에 춤을 춘다

먼동이 트네 먼동이 트네

미친 님 꿈에서 깨여 났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풍년(豊年)이 왔다네 풍년(豊年)이 와요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豊年)이 와요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를 정확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그러한 결과 <아리랑>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본조 아리랑>은 아리랑 노랫말의 한 종류를 기술한 것일 뿐이다. <아리랑>과 유사한 부분만을 따로 띄어내어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한 차이가 있다.

 

<本調 아리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본조 아리랑>은 <아리랑>과 달리 후렴구가 뒤에 나온다. 또한 가사의 일부도 다르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대신에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아리랑>을 학술적으로는 <본조 아리랑>이라고 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本調 아리랑>에 대한 다음과 같은 해설 부분도 있다.

 

解說

朝鮮 民謠中에서 가장 널리 普及된 것으로 적어도 朝鮮 땅에 발을 듸디고 있는 사람이면 이 노래를 모르지 않는다. 條條한 哀愁 부드러운 節奏 朝鮮의 情緖가 잘 表現되고 時代 呼吸에 닷는 것으로 그렇다.

從來 아리랑에 對하여서는 그 由來도 여러 가지요 또 地方에 따라 派生된 各種의 아리랑도 많다.

서울의 것을 本調아리랑 그밖에 密陽아리랑 江原道아리랑 旌善아리랑 珍島아리랑 긴아리랑 新아리랑등 여러 가지 種類가 있다.

아리랑의 起原이며 아리랑의 뜻에 對하여서는 新羅 始祖 朴赫居世의 妃 閼英의 說 또는 慶尙道密陽 嶺南樓의 悲話 阿娘說이 있는 外에 近世 大院君이 景福宮을 重建할 때 國民이 願納制를 不平한 我耳聾說 亦是 그와 類를 함께 하는 我離娘 我難離들이 있으나 모다 사람의 그럴듯한 造作이오 아리랑에 아모 意味는 없다.

 

명칭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한 것은 지방의 아리랑 노래와 구별하기 위하여, 즉 서울 지역의 아리랑을 정의하려는 시도였다. 아리랑에 ‘본조’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별조 아리랑>과 대응되는 다른 의미를 정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아리랑>을 <본조 아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근거가 없는 이야기라고 해 왔지만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연구사 검토를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4.2 본조 아리랑의 대용 명칭

<본조아리랑>이라는 명칭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원문을 확인하지 않고 사용해 왔다. 경우에 따라서는 <서울아리랑>이라고 명명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러나 <서울아리랑>은 이미 1930년에 동일한 명칭이 나와 있어서 적합하지 않으며, 근거도 없다.

가능한 대안은 지역명이 아니라 노랫말을 대표하는 특성을 추출하여 명명해야 하는 것이다.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가사를 중심으로 고려한다면 <십리도 아리랑>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본조라는 명칭은 왜색 용어이다. 별조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본조아리랑은 과거에 있었던 한 종류의 아리랑라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후에도 다양한 아리랑이 채집되었다. 임동권[韓國民謠集Ⅰ~Ⅶ(集文堂, 1961~1991]은 <서울 아리랑>, <원산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춘천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본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긴아리랑>, <광복군 아리랑>, <태평 아리랑>, <아리랑 타령> 등을 채집하였다.

특정한 레코드 음반을 중심으로 북한에서 불리던 <긴아리랑>, <경기 긴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영천 아리랑>, <경상도 아리랑>, <아리랑>, <진도 아리랑>, <밀양 아리랑>, <본조아리랑>, <구조 아리랑>, <아리랑>, <랭산모판 큰애기 아리랑> 등이 소개되기도 하였다[신나라레코드, '북한 아리랑', 1999. 8.; 신나라레코드, 북한 아리랑 명창 전집, 2006].

연구사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아리랑의 명칭은 다양하다. 특별한 명명 규칙 없이 채보자의 식견에 따라 명명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과 명칭상에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아리랑>의 경우 동일한 가사에 대하여 <아리랑>, <신 아리랑>, <본조 아리랑>, <신민요 아리랑> 등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기록된 이래 일부의 변형은 있었지만 같은 명칭으로 불려왔다. 영화 아리랑 전단지에서도 아리랑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동일한 형태의 가사를 김지연이 <신아리랑>으로 표기하여 혼란이 야기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신아리랑>과 유사한 이름인 <신작 아리랑>이나, 명명의 규칙이 정의되지 않은 <별조 아리랑>과 <본조 아리랑>이라는 명칭까지 사용되면서 아리랑이 <본조 아리랑>인 것으로 착각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원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의 명칭은 겉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당한 평가를 통해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Ⅴ. 결론

아리랑의 명칭은 다양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일한 명칭의 곡목이 여러 개 존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명칭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고, 학술적 체제 정립에도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말 이래 기록에 등장하는 시점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명칭에 대하여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바로잡는 일은 아리랑 연구의 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우선적으로 지역명을 사용한 아리랑은 세부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부차적인 명명을 고려해야 할 당위성이 생긴다.

예를 들어 <경기아리랑 1>, <경기아리랑 2>와 같은 형식을 생각할 수 있고, 노랫말에 나타나는 특정 키워드를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또한 기존에 있었던 영화 주제가 ‘아리랑’이나 <신아리랑>은 전래되던 노랫말을 일부 변형하기는 하였지만 구별되는 유일한 형태가 되었으므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리랑>을 <본조아리랑>이라고 명명하면 안 된다. <본조 아리랑>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아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명칭이 필요하게 되는데, <서울아리랑>은 적합하지 않다. 1930년 자료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방법은 노랫말에 나오는 키워드를 활용하는 방안인데, <십리도 아리랑>으로 명명하면 적절할 것이다.

본고는 아리랑의 다양한 형태의 명칭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앞으로 명명이나 명칭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문제는 기록과 연구사에 바탕을 두고 정당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제7부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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