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1)
상태바
(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1)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9.02 07: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용호 박사'/전라 아리랑 연구--2(제9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아홉번째 주제는 '전라 아리랑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존재양상

전래되던 아리랑이 역사적 기록물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이다. 아리랑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자료 중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기록은 1894년의 『매천야록』이다.

내용 중에는 ‘아리랑타령(阿里娘打令) 신성염곡(新聲艶曲)’이라는 표현이 있다. 아리랑(阿里娘)의 뜻은 젊은 여자를 뜻하며, 동시에 신성염곡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896년 헐버트(H. B. Hulbert)는 「조선의 성악」, 조선 노래 모음집(The Korea Repository)에서 아리랑을 아르랑(영문은 Ararung)으로 표기하였다.

음식에서 주식인 쌀밥과 같은 위상의 노래이며 뱃노래에서 불리는 곡이라고 하였다. 이와 동일한 내용이 비숍(Isabella Bishop)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1897)과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의 『한반도(韓半島)』(1901) 및 알렌의 『조선견문기(Things on Korea)』(1908) 등에 다시 수록되어 전한다.

1912년 전국에 걸쳐 조사된 자료에는 아리랑⋅아르랑⋅아라랑⋅아라리 타령이라는 표기가 있고, 노래 곡명으로는 <아리랑가(歌)>⋅<아리랑 타령>⋅<어르렁 타령(打令)>⋅<아르렁 타령(打令)> 등 다양한 명칭으로 나타난다. 이 자료 중에는 전라 지역에서 전래되던 아리랑의 모습도 보인다.

 

389

打麥歌

魚遊河 흥

我何苦 흥 (旌義郡) (『한국민요집 』Ⅳ-389)

아리랑타령

 

437

산도나 설고 물도나 선데

누구를 보랴고 아이고 여기 왔나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

이 났네의

아리랑 응 어 - 응 아르랑이

났네 (金堤公立普通學校)

(『韓國民謠集』Ⅳ-437)

아리랑타령

 

438

저놈의 계집애

눈매를 보소

겉눈은 감고서

아이고 속눈 떴네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리랑이 났네의

아리랑 응 어 -

응 아르랑이 났네 (金堤公立普通學校)

(『韓國民謠集』Ⅳ-438)

 

아리랑은 <어르렁 타령(打令)>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사랑가(歌)>라는 형태로도 존재한다. 노래 가사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구절이 생략된 형태이다.

1918년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에는 메리 테일러(Mary Linley Taylor)가 금강산 장안사에서 들었던 구슬픈 가락의 한 소절을 수록하였다. 다만 이 기록은 2014년에 국문으로 번역되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용호는 이 노래를 <메리 아리랑>이라고 명명하였다.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면서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삼천리』, 1937. 1)에서 회고하였다.

전체 4절중에 1절은 <아리랑>이며, 2절은 1918년에 채집된 가사와 내용이 같다. 장안사에서 들었던 아리랑의 전체 가사는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일부 내용에 해당되고 있다.

1927년 이광수의 「조선민요에 나타나는 조선 민족성이 한 단면」에 일역되어 있는 내용을 국문으로 옮기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가서 발병난다’와 유사한 내용이 된다.

다만 <아리랑>을 민요라고 하면서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는 부분은 기술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후렴구 부분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여 생략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30년 2월 잡지 삼천리에 실린 <아리랑>에는 또 다른 형태의 노랫말이 있다. 가사 전체는 3절로 되어 있는데, 특이한 점은 ‘나를 버리고’가 ‘날 버리고’라는 형태로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형태는 고어적 표현이기 때문에 단순히 ‘나[我]를’만을 표현하지는 않고 다른 의미도 가지게 되며, ‘나를 버리고’와 혼용되어 왔다는 측면에서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고개로’와 ‘고개를’이라는 형태가 같이 사용되고 있어서 ‘를’이나 ‘로’ 같은 조사는 특별한 의미가 없으며, 노래를 부르는 과정에서 가창자의 특성에 따라 붙여졌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십리도’가 ‘십리를’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으나 텍스트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노랫말이 뜻하는 바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서 김지연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신(新) 아리랑>이라고 다르게 명명하였다.

바야흐로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출현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전통아리랑에서 변형된 노래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곡목에 변동은 없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정식 노래 곡목으로서 사용하게 되었다. 내용이 다른 다수의 <신아리랑>이 나타났으며, 신민요라는 명칭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전라지역에 존재하는 아리랑이 채집되어 있기도 하다.

 

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버리고가는님은

十里를못가서발병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豐年이온다네 豐年이온다네

三千里江山에 豐年이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山川에草木은 젊어가고

人間에青春은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青天하늘엔 별도만코

우리네살림사리 말도만타

 

<아리랑>과 비교하면 ‘가시는 님’이 ‘가는 님’, ‘십리도’가 ‘십리를’로, ‘발병난다’가 ‘발병나네’로 되어 있고, 노래의 구성은 4절까지 되어 있다.

1930년 12월의 「조선민요 아리랑」에는 또 다른 형태의 전라 아리랑이 나타난다.

우선 <정읍 신태인 아리랑>에는 용천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며 가사의 표현 형식이 특이한 부분이 있다.

 

井邑 新泰仁아리랑

 

一. 논中에沃土는 新年路로 들고

사람이난놈은 監獄으로든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二. 홍둣박망이 八字가조화

큰아기손길에 다녹아난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三. 열두살먹어서 술잔을드니

謂之日公論이 갈보라한다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四. 보담더단것은 진고개사당

초보담더신것은 큰아기중동

아리랑인가 용텬인가

얼마나조흐면 저질알인고

 

<정읍 신태인 아리랑>에는 ‘아리랑인가 용텬인가’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러한 구절이 더 변형되면 <순창 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淳昌아리랑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

거름손이나 하는놈는 제자품팔고(길품)

물자먹이나 하는놈은 전중이가고

글자나 하는놈은 긔장질가고(書堂教師노릇)

일주먹이나 하는놈은 治道판간다

아라린가 지라린가 용텬인가

 

<순창 아리랑>에는 ‘아라린가 질아린가 용텬인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가사의 형태로 보면 <정읍 신태인 아리랑>이 발전하여 <순창 아리랑>이 되었고, 이것이 변형되어 ‘아라린가 스라린가 영천인가’라는 형태의 <영천 아리랑>이 된 것이다. <영천 아리랑>의 원조는 <순창 아리랑>이다.

구례지역에서 채집된 <구례 아리랑>이 있고, 남원 지역에서 유행하던 <남원 아리랑>도 두 종류나 있다.

 

求禮아리랑

 

三角山몰랑에 비오나마나

어린家長품안에 잠자나마나

아리랑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얼씨고 날예워주소

南原아리랑 [其一]

 

1

青天하늘엔 별도만코

요내가승엔 愁心도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3

門前沃土는 다팔어먹고

鐵窓生活이 왼일인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5

山川草木은 절머가고

우리네青春은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구례 아리랑>애서는 후렴구 형태가 뒷부분에 나온다. 가사의 내용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낫네”이며, “얼씨고 날예워주소”라는 <구아리랑> 형태의 표현도 있다.

<남원 아리랑 1>에서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후렴구 형태는 뒷부분에 나타난다.

<남원 아리랑 二>에는 현재의 <밀양 아리랑>과 유사한 가사가 있기도 하다.

 

南原아리랑 [其二]

 

(1)

날좀보소 날좀보소 나를조매보소

冬至섯달본드시 나를조매보소

아리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얼씨고 날넘겨주소

 

(2)

情든님오시는대 人事는못해

행주치마입에물고 입만긋

아리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얼씨고 날넘겨주소

 

(5)

물네방아는 물을안고돌고

南原邑內花中仙이는 나를안고돈다

아리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낫네

아리랑얼씨고 날넘겨주소

 

<남원 아리랑 1>에서와 같이 후렴구 형태가 뒷부분에 나오며, <구례 아리랑>의 내용과 유사하다. <아리랑> 보다 더 오래된 <구아리랑>의 후렴구 형태와 혼용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남원 아리랑>과 <밀양 아리랑>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생겼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가사에 나타나는 “날좀보소 날좀보소 나를조매보소”라는 표현을 통해 판정할 수 있다. “날좀보소”나 “조매보소”는 밀양에서 사용되는 사투리이다. <밀양 아리랑>의 영향을 받아 후에 생겨난 것이 <남원 아리랑>이 된다.

한편 1959년에는 <본조(本調)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조선의 민요(성경린⋅장사훈 공저)에 11절로 구성된 새로운 아리랑의 명칭이다.

 

이씨(李氏)의 사촌(四寸)이 되지 말고

민씨(閔氏)의 팔촌(八寸)이 되려무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이하(以下) 후렴은 생략(省略)함)

문전(門前)의 옥토(沃土)는 어찌 되고

쪽박의 신세(身世)가 왼 말인가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풍년(豊年)이 왔다네 풍년(豊年)이 와요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豊年)이 와요

 

<본조 아리랑>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이나 <아리랑>과 다른 것이다. 후렴구가 뒤에 나오며, 가사가 다르고, 일부의 내용이 빠져있다. 가사가 다른 부분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대신에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라고 되어 있다.

영화 ‘아리랑’에 나오는 가사 중에 2절과 4절의 내용도 없다. <본조 아리랑>이라고 붙인 이유는 경기 지역에서 불리던 노랫말이기 때문이다. <본조 아리랑>은 경기지역 아리랑의 한 종류를 기술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리랑>은 1912년에 전래되던 형태가 발견된 이래 지속적으로 관련 자료가 나타나고 있다. <어르렁 타령(打令)>을 비롯하여, 장안사에서 들은 <메리 아리랑>, 영화주제가 <아리랑>, 잡지 『삼천리』의 <아리랑>, <신아리랑>, <본조 아리랑> 등을 통해 연속성의 측면에서 아리랑이 전개되어온 변천의 과정과 연원을 알 수 있다.

 

Ⅳ. 연원 고찰

그렇다면 <진도 아리랑>을 포함한 전라지역 아리랑은 어떠한 연원을 가지고 있을까?

첫 번째 방법은 후렴구에 대한 해석을 통해 노랫말의 연원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밀양아리랑 연구에서 논한 바 있다.

두 번째 방법은 기록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들을 통해 연원을 알 수 있다. 기록에 나타나는 ‘아리랑’은 특정한 의미를 상징한다거나, 조선 초기에 나온 정치적 방임주의라든가, ‘아리랑’의 뜻은 ‘아리랑[阿里娘]’이며 신성염곡(新聲艶曲), 곡연음희(曲宴淫戱), 애조를 띠면서, 충신불사이군이고, 남녀상열지사의 변풍(變風), 비밀결사(秘密結社), 생활의 만화경(萬畵鏡),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한(恨)의 노래, 물과 관련된 노래 등을 포괄하는 다중의시로 재구할 수 있다.

세 번째 방법은 기록에 나타나는 노래 구성의 형태라든가 중세한어와 중세국어의 어휘적 측면에서 고려할 수 있다.

채집된 가사에 나타나는 소재(所載)의 상황을 통해 노랫말의 연원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요 이언급 통속적 독물등 조사』(조선총독부, 1912)에는 아리랑에 대한 가사 뿐만 아니라 이요(俚謠)라는 형태로 전래되던 한시의 형태도 전해지고 있다.

작성된 시기와 관련하여 가장 큰 문법적 특색 중의 하나는 13세기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파자문(把字文)이 사용된 문장 형태라는 점이다.

기록적 측면에서 황현의『매천야록(梅泉野錄)』에 나오는 신성염곡(新聲艶曲)은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13세기 이후에 나타난 형태로, 원과의 교섭을 통해 국문학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는 장르적 특성이 있다. 또한 님 웨일즈의『아리랑(Song of Ariran)』(1941년)에서는 몇 백 년 전 조선시대를 발생 시기로 제기하고 있다.

님 웨일즈는 <아리랑>이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조선민요이며, 300년 동안이나 애창되어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리랑>은 영화 아리랑(1926년)에서 처음 만들어진 노래로도 알려져 왔으나, 김산은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불리어 왔음을 증언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아리랑의 발생 시기는 여말선초에 해당하는 조선 초기까지 소급할 수 있고,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더구나 고권삼은 <아리랑>이 조선 초기의 정치적 방임주의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고, 시노부 쥰페이(信夫淳平)는 슬픈 음조를 띤 노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신성염곡이라는 측면에서 망국의 시점인 여말선초의 시기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아리랑>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오다가 조선 초기에 특정한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 발생 시기는 여말선초로 추정된다.

또한 비교문학적으로 고려후기에 해당하는 중국의 원대(元代)에 만들어진 다양한 형태의 산곡(散曲)을 비롯하여, 명대(明代) 초기에 만들어진 <벽파옥(劈破玉)> 등과 같은 작품에는 문장 구성적 측면에서 경기체가나 <아리랑>과 유사한 형태의 모습이 있다.

<벽파옥(劈破玉)>은 형태상 334조이고, 노랫말 속에서 사용된 특수한 한어 음운적 형태인 ‘얼[兒]’이 사용된 문장[蜂針兒, 蛛絲兒, 絲線兒]이고, 특정한 시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한어 문법적 특징인 ‘파[把]’를 사용한 문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세한어로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한어에서 13세기 이후부터 나타난 특징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명대 초기에 지어진 작품이므로 여말선초에 해당한다.

나아가 기록에 나오는 『매천야록』의 아리랑(阿里娘)이라는 표기는 고어적 특성이 있다. 아(阿)의 용법은 문장 형태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국문학의 경우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1761년)이 만들어진 시점을 전후로 아(啊)라는 형태로 자형이 변화되어 나타난다.

원래에 있던 아리랑(阿里랑)의 뜻을 여성을 뜻하는 랑(娘)으로 바꿔주면서 새롭게 정의하는 문장으로서의 ‘아리랑 시랑(阿里랑 是娘)’이 되었고, 세음절로 줄여 아리랑(阿里娘)이라는 문장이 되었다.

하나의 문장 속에 2개의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자를 뜻하는 랑(娘)이 신성염곡의 주제가 노래로 불리는 형태는 13세기 이후에 유행한 특정한 예술 장르와 관련이 있다.

 

Ⅴ. 결론

아리랑의 연원은 오래 된 것이 아니며, 각지의 아리랑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형성 발전되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전라도를 대표하는 <진도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에 특정인에 의해 만들어져서 전국적인 민요로 발돋움했다고 주장되고 있다. 다름아닌 1926년에 만들어진 영화 ‘아리랑’의 흥행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만들어졌고, 그러한 결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래에 메리 린리 테일러의 아리랑에 대한 기록이 발견되면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전라지역 아리랑에 나타나는 후렴구를 대비해서 고찰할 때 아리랑의 생성 시기는 여말선초에 해당하는 14세기가 된다. 다양한 기록을 통해 나타나는 시점과도 일치한다.

‘아리랑’은 특정한 의미를 상징한다거나, 조선 초기에 나온 정치적 방임주의, ‘아리랑’의 뜻은 아리랑[阿里娘]이며 신성염곡(新聲艶曲), 곡연음희(曲宴淫戱)의 특성이 있다.

또한 애조를 띠면서, 충신불사이군이고, 남녀상열지사의 변풍(變風), 비밀결사(秘密結社), 생활의 만화경(萬畵鏡),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한(恨)의 노래, 물과 관련된 노래 등의 기록이 존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라 지역 아리랑이 형성된 시기도 여말선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지금부터의 아리랑 연구는 선행연구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기록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더욱 깊이 있고 내실 있는 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노랫말 텍스트에 담겨있는 상황을 콘텐츠로 만들어 가는 것은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자료의 발굴과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 밀양 아리랑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제9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