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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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27)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09.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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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신아리랑 연구 -2(제12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열 두번째 주제는 '신아리랑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Ⅲ. 내용

아리랑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이른 기록인 『매천야록』(1894년)에서 존재가 확인된 이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 <신(新)아리랑>이라는 명칭으로 등장함으로써 신민요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명이 되었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十里)를 못 가서 발병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豐年)이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山川)에 초목(草木)은 젊어가고

인간(人間)에 청춘(青春)은 늙어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青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리 말도 만타 (1930년 6월)

 

영화주제가 <아리랑>과 <신(新)아리랑>을 비교하면,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4절을 <신(新)아리랑>에서는 2연으로 했고, ‘십리도’가 ‘십리를’로, ‘이 강산 삼천리’가 ‘삼천리 강산’으로 바뀌었으며, 일부의 글자도 한자로 바뀌었다.

한편, 같은 해 7월에 수록된 <신아리랑>은 이전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 나중에 나타나는 <신아리랑>이라는 곡명도 모두 이러한 변형의 방식을 취하게 된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밧흔- 헐어서 길이 되고

집은- 헐어서 정거장(停車場) 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밧일코 집일은 동모(同侔)들아

어듸로 가야만 조흘겨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버지 어머니 어서오소

북간도 벌판이 좃타드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괴나리 보ㅅ짐 짊어지고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30년 7월)

 

1934년 <최신 아리랑>, <마즈막 아리랑>, <아리랑 눈물고개>, <아리랑 눈물고개> 등의 노래가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강남향, 고복수, 이난영은 함께 <신아리랑>을 불렀다.

 

<신(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달이 떴네 별도나 떴네

구름 속 항아가 삥긋이 웃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가는 님을 잡지나 마소

갔다가 올 때가 더 반갑다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달빛 경대 꽃닢 연지

님 오실 문전에 불빛도 밝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며

날 버리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 가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1934. 8)

 

1930년대 중반에 다양한 종류의 <신아리랑>이 대거 등장하여 유행한 이래,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1959년 성경인⋅장사훈은 <본조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진도 아리랑>, <긴아리랑>, <신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세상> 등과 같은 명명법을 사용하면서 <신아리랑>을 소개하였다.

 

<신(新) 아리랑>

 

산천초목(山川草木)은 젊어 가고

인간(人間)의 청춘(靑春)은 늙어 간다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성황당(城隍堂) 까마귀 깍깍 짖고

정(情)든 님 병환(病患)은 날로 깊어

무산자(無産者) 누구냐 탄식(歎息) 마라\

부귀(富貴)와 빈천(貧賤)은 돌고 돈다

감발을 하고서 주먹을 쥐고

용감(勇敢) 하게도 넘어 간다

밭 잃고 집 잃은 동무들아

어데로 가야만 좋을가 보냐

 

아리랑은 『매천야록』에서 기록된 이래 전통 아리랑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러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났는데, 대표적인 노래가 영화주제가 <아리랑>이며, 이를 일부 수정한 것이 <신아리랑>이다.

 

Ⅳ. 현황과 의의

신민요가 유행하던 시기에 출현한 <신아리랑>은 영화주제가 아리랑의 가사를 변형하여 만들었다. 기존의 아리랑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신작(新作) 아리랑>이나 <신아리랑>, <최신 아리랑> 등과 같은 명칭도 사용되었다.

 

<신작(新作) 아리랑>

 

여바라동모야 말듯거라

요사이거리로 지날 때마다

더벅머리 아이들이 떼를지여

흥겨워 부르는 그노래를

동모야 들엇는가 말엇는가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시톄나 자식들 끝ㅅ아지보소

저의신주는 개물어간다

갯가에떠다니는 나무신짝을

멀정한길푸라고 주어다가

말갓케씨처놋고 절한다지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시톄나 자식들 꼴아지보소

의부의 눈칫밥 먹엇다고

한 개형을 미워하는 아우년석

제형을 흠뜨더 말하는곳이

도리어 의부의 청직이라나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시톄나 자식들 꼴아지보소

남보다 못한것 한탄은안코

남들이 저보다 나흔것만

엇잿든 미워서 날뛰다가

남까지 끌고서 개천에빠저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시톄나 자식들 꼴아지보소

명함에 무엇무엇 주어써서

척보면 제바로 점잔흐나

직함이 만흐면 만흘수룩

뒤딱지 먹틔가 더욱만하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시톄나 자식들 꼴아지보소

툭하면 아는톄 혼자하나

배속엔쑤세미 뭉텅이

잡짓장 신문쏙 어더들은

날문자 함부로 지절대어

아리랑 아라리요

얼마나 치면은 깨일는지

 

<別調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오

넘겨나 줄마음 간절하나

시부모 무서워 못넘기네

아무렴 그럿치 그럿코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성화냐

白頭山 아래다 憲兵隊짓고

새방안 補助員 出張만난다

너-는 죽어서 自動車되고

나-는 죽어서 運轉手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오

 

<아리랑 타령>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고나

아리랑 어리얼숭 노다가새

만경창파 거기등등 떠가는배야

거기좀 닷주어라 말무러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고나

아리랑 어리얼숭 노다가새

전긔차는가자고 발송 땅땅치는데

정든님은삼고서 시긋지긋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고나

아리랑 어리얼숭 노다가새

룡안여주 당대추는

정든님 공경으로 다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로고나

아리랑 어리얼숭 노다가새

 

신민요로서의 아리랑이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다. 왕수복은 <신아리랑>, <봄맞이 아리랑> 등을 불렀고, 선우일선의 <그리운 아리랑>, <즐거운 아리랑>, 장일타홍의 <아리랑의 꿈>, 김선영의 <아리랑 세상>, 백난아의 <아리랑 낭낭>, 김용환의 <꼴망태 아리랑>, 이화자의 <아리랑 삼천리>, 백년설의 <아리랑 만주>, 김봉명의 <아리랑 술집> 같은 노래도 있다.

신민요 가수 중에서 선우일선은 원래 평양 기생으로 있다가 1934년 폴리돌 레코드에 의해 발탁되었다. 본명은 최창선이라고 전한다. 선우일선은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아리랑> 관련 노래나 <그리운 금강산> 등이 일본에 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또 다른 신민요 가수인 왕수복은 17세 때인 1933년에 데뷔하여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인생의 봄>, <고도의 정한>이 실린 음반은 무려 120만 장이 팔려나가면서 대박을 터뜨렸다. 조선의 노래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의 가치에 눈을 떴고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봄맞이 아리랑>

 

아리랑 넘는 길 몇 만리던가

가며는 오지도 못하는가요

아리랑 스리랑 마음이 변해서 소식 없나요

아리아리 얼싸 스리스리 얼싸

아리랑 고개는 님 가신 고개

 

왕수복이 부른 노래 중에서 <봄맞이 아리랑>이라든가, <긴아리랑> 등은 해방 이후에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신민요 아리랑이나 <신아리랑>이 새롭게 창작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에 불리던 노래들은 유성기 음반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점하며 존재하고 있다.

 

Ⅴ. 결론

신민요 아리랑은 전통아리랑이 현대적인 대중가요 아리랑으로 변모하는 전환기에 나타나 가교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오면서 전통아리랑은 변형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영화주제가 아리랑(1926년)은 그러한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이라는 곡명은 바뀌지 않고 있었는데, 1930년 6월에 이르러 <신아리랑>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곡명이 등장하게 되었다.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명이 되었고, 신민요 아리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유성기 보급의 확대에 따라 많은 가수들이 음반으로 남겼는데, 그 중에는 곡명으로서의 <신아리랑>을 포함하여 다양한 노래들이 있다. 또한 곡명은 <신아리랑>이지만 서로 다른 내용의 노래들이 시차를 두고 존재하였다.

대중의 관심이 약해지면서 신민요 아리랑도 서서히 소멸되어 갔지만 레코드 음반 속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더욱이 신민요 형태로 음반에 남겨진 아리랑은 이후에 많은 민요 가창자들이나 대중이 따라 부르게 되었고, 그러한 결과 오늘날에는 신민요 아리랑이 전통아리랑으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신민요 아리랑이 유행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신아리랑>은 전통아리랑의 원형적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역사의 기록이 되었다.

신아리랑에 대한 이해와 정의는 본고 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있는 필자의 견해를 바탕으로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제12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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