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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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 한민족의 혼(魂), 그 영원한 비밀의 암호 코드를 해독하다!(39)
  • 조용호 박사
  • 승인 2022.10.1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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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박사/ '아리랑의 최신 연구 -2(제18주제)

아리랑의 비밀을, 저서 ‘아리랑의 비밀話원’을 통해 밝혀낸 조용호 박사가 제주에서 이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뜻 있는 자리를 가졌다.

한라산에 있는 사)제주도아리랑보존회(이사장 강소빈)가 주최한 '2022 한국아리랑의 원형연구 조용호 박사 초청강연회' 자리에서였다.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 출신이기도 한 조용호 박사는 이날 모두 6개의 주제로 나눠 아리랑에 대한 모든 내용을 소개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조용호 박사는 아리랑에 대해 “‘아리랑’은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노랫말 속에 고도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는 특수한 문장이었다.”며 “그래서 아무도 다른 뜻이 숨겨져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고, 아리랑이라는 뜻조차도 알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반도체, 정보통신(IT), 암호학 및 고대시가문학, 중세국어 등의 분야에 종사하면서 오랜 기간 아리랑과 민요, 고려가요 등에 나타나는 뜻 모르는 후렴구를 연구해 온 조용호(趙容晧) 박사는 아리랑을 600년 전의 한문과 고려어로 된 의사향찰구조로 재구함으로써 그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을 풀어내게 된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지는 이 자리에서 이에 대한 모든 원고를 긴급 입수, 조용호 박사로부터 연재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차제에 아리랑과 제주아리랑의 대중화 및 세계화에 대한 폭넓은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를 차례로 연재하기로 했다. 열 여덟번째 주제는 '아리랑의 최신 연구'이다.(편집자주)

 

 

(이어서 계속)

 

Ⅳ. 역사 기록 비평과 개념의 정립

지금까지의 아리랑 연구는 뜻 없는 아리랑과 아라리요에 대한 해석이라든가, 조선총독부의 아리랑 발생설을 기본으로 하여 근대에 만들어진 노래로서의 아리랑을 탐색해 왔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존재하는 기록에 대한 정당한 해석과 평가이다.

『매천야록』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아리랑에는 여자라는 뜻이 있으며, 그것을 노래에 대입한 결과는 신성염곡이 되어야 하고, 그러한 결과에 따라 발생 시기를 논해야 한다. 더구나 기존 자료에 대한 개념 정의를 잘못 이해한 경우도 있어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

문제가 되고 있는 대표적인 것들로는 첫째, 아리랑과 신아리랑, 본조 아리랑을 동일한 것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신성염곡을 근대의 노래라고 잘못 해석하고 있다.

셋째,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경성제대 강의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아리랑 발생설을 김지연이 만든 것으로 아리랑 발생을 오해하고 있다. 넷째, 아리랑은 1926년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잘못 이해되고 있는 내용들은 아리랑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며 정확한 해석이 요구된다. 심도 있는 연구는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4.1 아리랑 명칭의 구별

책이나 논문은 물론이고 다양한 매스컴 등을 포함하여, 많은 경우에 아리랑을 신아리랑이나 본조 아리랑 등으로 혼용하며 부르고 있다. 그렇지만 아리랑과 신아리랑, 본조 아리랑은 서로 다른 것이다.

아리랑과 관련된 기록을 보면, 본조는 별조로 부터 만들어졌다. 시발점이 되는 것은 와다텐민의 책이다. 1921년, 와다 텐민[和田天民, 久保田天南 畵, '조선의 향기(朝鮮の匂ひ)', 京城:ウツボヤ書籍店, 1921]에서 별조(別調)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이를 바탕으로 1930년, 김지연은 별조 아리랑이라는 곡명을 수록하였고, 이후에 '조선의 민요'(성경린⋅장사훈 공저)에는 11절로 된 본조 아리랑이라는 곡명이 나오게 된다.

별조 아리랑이라는 개념은 아리랑이 4행을 기본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6행으로 변형되었고 곡조가 다르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명명한 것인데, 별조 아리랑이 6행이기 때문에 4행으로 된 아리랑은 본조 아리랑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본조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아리랑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데서 나오는 틀린 연구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며 본조 아리랑이라는 형태로 변형된 것일까? 1912년,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민요 조사 자료인 『이요⋅이언급 통속적 독물 등 조사』에는 전래되던 아리랑의 모습이 있다.

 

영화 아리랑

1926년, 영화 아리랑이 상영되면서 주제가로 사용되었다. 노랫말은 어린 시절 회령에서 들었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아리랑 등 자작 전부를 말함」(『삼천리』, 1937. 1)에서 회고하였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날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사린 말도 만타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이 온다네 풍년이 온다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 가네

 

전체 4절중에 1절은 아리랑과 유사하며, 2절은 1918년에 채집된 가사와 내용이 같다. 장안사에서 들었던 아리랑의 전체 가사는 영화 아리랑의 일부 내용에 해당되고 있다.

신아리랑

1930년 6월, 「조선민요 아리랑」에서 김지연은 영화 아리랑에 나온 것과 거의 동일한 가사를 신(新) 아리랑이라고 명명하였다.

 

1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십리를 못가서 발병나네

 

2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풍년(豐年)이 온다네 풍년(豐年)이 온다네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이 온다네

 

3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산천에 초목은 젊어 가고

인간에 청춘은 늙어가네

 

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靑天) 하늘엔 별도 만코

우리네 살림살이 말도 많다.

 

신아리랑이라는 명칭이 출현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전통아리랑에서 변형된 노래들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곡목에 변동은 없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정식 노래 곡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에 내용이 다른 다수의 신아리랑이 나타났으며, 신민요라는 명칭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별조 아리랑

그러한 과정에 등장한 것이 별조 아리랑이라는 명칭이다. 별조라는 것은 구성은 물론 곡조 등이 기존과 다른 형태라는 뜻이다.

 

別調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날넘겨주오

넘겨나 줄마음 간절하나

시부모 무서워 못넘기네

아무렴 그럿치 그럿코말고

한오백년 살자는데 웬성화냐

 

김지연의 별조 아리랑은 기존에 있던 아리랑과 달리 형식상으로 6행으로 되어 있으며, 곡조가 다르다.

 

본조 아리랑

1949년, 별조 아리랑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본조(本調) 아리랑이라는 명칭이 등장하였다. 조선의 민요(성경린⋅장사훈 공저)에 11절로 된 노랫말이 등장한다.

 

本調 아리랑

 

1

이씨(李氏)의 사촌(四寸)이 되지 말고

민씨(閔氏)의 팔촌(八寸)이 되려무나

(후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 (以下 후렴은 省略함)

 

10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十里)도 못 가서 발병 난다

 

11

풍년(豊年)이 왔다네 풍년(豊年)이 와요

삼천리(三千里) 강산(江山)에 풍년(豊年)이 와요

 

본조 아리랑은 영화 아리랑이나 아리랑, 신아리랑과 다르다. 후렴구가 뒤에 나오며, 가사도 다르고, 일부의 내용이 빠져있다. 가사가 다른 부분은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대신에 “아리랑 띄여라 노다 가세”이다. 영화 아리랑에 나오는 가사 중에 2절과 4절의 내용도 없다.

본조 아리랑이라고 붙인 이유는 경기 지역에서 불리던 노랫말이기 때문이다. 본조 아리랑은 경기지역 아리랑의 한 종류를 기술한 것이다. 그런데 본조라는 명칭에 대한 힌트가 김지연의 아리랑 발생설이라는 것이 주석에 나타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의 연구자들은 이를 확인하지 않았고 단순히 가사가 유사한 것만으로 아리랑과 같은 개념으로 잘못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한 잘못은 수정되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원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결과이다.

 

4.2 신성염곡의 오역

황현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는 아리랑이 신성염곡(新聲艶曲)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아리랑 연구자들은 신성 즉, 새로운 노래라는 측면에서 근대에 생긴 노래로 생각하였다. 아리랑이 근대에 생긴 노래라는 증거로 활용해 온 것이다.

그러나 신성염곡이라는 표현은 『매천야록』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성종실록』(1499년)은 물론 『고려사절요』(1453년), 『고려사』(1454년) 및 『세종실록』(1454년) 등에도 나타나며, 고려시대에 유행한 특정한 문학 장르에 연원이 닿아 있다.

즉 조선 초기에 간행된 고려시대의 역사적 기록 속에는 13세기 이후인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특정한 음악적 형태에 대해 신성(新聲), 신성음사(新聲淫詞), 신조(新調)라든가 의미는 같지만 표현을 달리한 후전(後殿) 또는 북전(北殿)이라는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신성(新聲)이라는 표현은 1894년대에 처음 나타난 근대의 노래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성(新聲)의 신(新)의 의미를 ‘새로운’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여 근대(近代)의 노래라든가 신민요 등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신성(新聲)이란 신성음사(新聲淫詞)를 뜻하며, 고려시대에 유행한 쌍화점(雙花店), 이상곡(履霜曲) 등과 같은 북전(北展)또는 후전(後殿)의 노래를 뜻한다. 옥수후정화와 유사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문학에서 신조(新調)나 신성(新聲)이라는 표현은 비교문학적으로 곡(曲)이라는 문학 장르와 관련이 있다.

곡(曲)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신성(新聲)이란 의미는 새로운 소리 또는 노래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성(新聲)이라는 표현이 역사상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기원전 11세기 전후, 은나라 주왕(?~BC 1046)이 즐겨듣던 애조를 띤 슬픈 음조의 노래인 신성백리(新聲百里)에서 기원한다. 이때에 비로소 이런 형태의 음악이 처음 나타났다.

국문학의 경우 13세기 이후 여말선초에 이르는 기간에 해당하는 고려 망국 시점에 만들어진 애조를 띤 내용의 시 형태들을 유사한 예로 들 수 있다. 신성이라는 용어는 원곡과 교섭이 이뤄지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4.3 식민사관 비평

1930년 6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朝鮮)에는 총독부 촉탁 김지연이라는 이름으로 「조선민요 아리랑」이 기고되었다. 아리랑의 어원과 더불어 몇 개의 아리랑 가사들을 소개하였는데, 이는 아리랑 연구에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아리랑 발생설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롱(我耳聾)설⋅아리랑(我離娘)설⋅아난리(我難離)설⋅아랑(阿娘)설⋅아랑위(兒郞偉)설을 소개하면서 어영(於英)설에서 변형된 알영(閼英)설을 주장하였다.

김지연의 아리랑 발생설은 경복궁 부흥공사나 신라시대라는 역사적 사실과의 연관성, 밀양 지역에 기반을 두었다는 설화, 건축과 관련된 민속 등과 결부되어 있어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설로 자리 잡았고, 기본이 되는 설로 등장하고 있다.

채집된 가사로는 신 아리랑, 별조 아리랑, 아리랑 타령 등은 물론 지역 명칭이 붙은 원산 아리랑, 밀양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서울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이 제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증적 내용임을 시사하는 두 개의 자료인 아리랑 발생설과 아리랑 가사를 하나로 합쳤을 때 실증적이지 못하는 모순이 생긴다. 즉 아리랑의 뜻을 채집된 노랫말에 대입하면 발생설 내용과 어떠한 연관성도 찾을 수 없다.

결국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인의 공통 심성인 조선심과 민족성을 파악하는 과정 속에서 조선인의 핵심이 아리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아리랑의 기원에 대하여 변형하고 희화화하여 뜻을 잃어버리게 함으로써 조선민족의 혼 아리랑에 대한 존엄성을 박탈하고,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것이 아리랑 연구의 목적이었다. 한민족의 혼이 크게 훼손한 상황이 된 것이다.

 

4.4 영화 주제가의 발생 시기

아리랑 연구자들은 아리랑 노래가 영화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그러할까?

영화에서 노래가 불리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1926년에 들어오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던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배우 나운규에게 영화 대본을 부탁하였다. 이때 구상한 작품이 바로 ‘아리랑’이고, 영화에서 불릴 노래도 아리랑으로 하기로 하였다.

아리랑을 주제가로 만들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고향 회령에 있을 때 남쪽에서 온 노동자들이 철도부설공사를 하면서 민요조로 부르던 노래인 아리랑에서 느꼈던 애잔한 정서를 영화의 바탕으로 삼고, 그것에 이야기를 추가해서 구속을 벗어나려는 인간성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영화 아리랑은 남녀의 애정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의 영화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노랫말 가사를 나운규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한 것은 정작 나운규 자신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問―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넘겨주오」하는 이 노래는 누가 지었어요? 한동 안은 ―그것이 벌써 10 년은 되었지만 ― 그때 서울이든 시골이든 어데서 든지 어린 아이 자란 할 것 없이 모다 즐겨 부르든 「아리랑」의 이 주제가(主題歌)를 누가 지었서요.

答― 내가 지었오이다. 나는 국경 회령(國境 會寧)이 내 고향인 것만치 내가 어린 소학생 때에 청진(淸津)서 회령(會寧)까지 철도가 노키 시작하였는데 그때 남쪽에서 오는 로동자들이 철로길 뚝을 닥그면서「아리랑 아리랑」하고 구슬픈 노래를 불르드군요.

그것이 어쩐지 가슴에 충동을 주어서 길가다가도 그 노래 들리면 거름을 멈추고 한참 들었서요. 그러고는 애연하고 아름답게 넘어가는 그 멜로디를 혼자 웨어 보았답니다. 그러다가 서울 올라와서 나는 이 「아리랑」노래를 찾었지요.

그때는 민요(民謠)로는 겨우 강원도 아리랑(江原道)이 간혹 들릴 뿐으로 도모지 찾어 들을 길 없더군요. 기생들도 별로 아는 이 없고 명창(名唱)들도 즐겨 부르지 않고 ― 그래서 내가 예전에 듣든 그 멜로디를 생각하여 내어서 가사(歌詞)를 짓고 곡보는 단성사(團成社) 음악대에 부탁하여 만들었지요.

 

노래 4절 가운데 3절에 해당하는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이 강산 삼천리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날 넘겨주오’라는 가사는 확실히 나운규가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나머지 가사들은 본인이 지었다는 이야기가 없다. 또한 옛날에 들었던 기억을 살리면서 편집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가사에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있으며, 악보는 자신이 들었던 멜로디를 영화관 음악대에 알려주어 당시 리듬에 맞도록 일부 편곡하였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변형되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인터뷰 기사에 대한 해석을 노래 3절만을 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확대 해석하여 아리랑 가사 전체를 지은 것으로 오해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결코 다른 부분의 가사를 지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러던 중 근래에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책이 번역 출판되었다. 1996년에 영문으로 간행된 책이 국문으로 번역된 것이다. 영화 아리랑에 수록된 가사가 이미 1918년에 산골에서도 불리고 있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이 내 가슴엔 수심도 많다

 

가사의 형태와 관련하여, 아리랑은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 졌다거나, 영화 아리랑에서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형태가 처음으로 정전화 되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기록을 통해 사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아리랑 중의 변이형일 뿐이다.

 

Ⅴ. 결론

아리랑은 민족 노래로 자리매김 되었지만,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리랑의 뜻조차 모르는 상황에 있었으며, 근대에 만들어진 노래라는 초기적 단계에 머물러 왔다. 지난 시간 동안의 연구를 통해 역사 기록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과 비평을 하게 되었다.

첫째, 아리랑과 신아리랑, 본조 아리랑 등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2002년부터 지속적으로 논증하고 있지만, 다른 것이다. 본조(本調)라는 개념은 경기 아리랑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거의 모든 연구자들은 본조 아리랑을 아리랑의 별칭으로 오해하고 논문, 매스컴, 소개자료 등에 함부로 사용하고 있다.

둘째, 신성염곡(新聲艶曲)을 근대의 노래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이미 기원전 11세기부터 존재한 표현이며, 국내의 경우는 13세기 이후에 성행한 문학 장르이다.

셋째,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아리랑 발생설을 아리랑 연구의 연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아리랑 발생설은 아리랑을 뜻 모르는 노래로 희화화하는 근원이 되었고,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식민사관을 감추고 있다.

아이롱(我耳聾)설⋅아리랑(我離娘)설⋅아난리(我難離)설⋅아랑(阿娘)설은 조선 망국의 책임을 위정자들의 압제에 돌림으로써, 식민통치의 정당성을 전개하려는 식민사관의 논리를 숨기고 있다.

아랑위(兒郞偉)설은 자체적으로 만든 사상이 없는 무창견의 민족이므로 일제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이다. 알영(閼英)설은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일본 왕족이고 신라는 고대로부터 식민지였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왜곡된 논리 구조이다.

아리랑 발생설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식민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 구조로 만들어진 식민사관의 결정체인 것이다.

더구나 김지연이 만든 게 아니라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의 강의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기고한 것이다.

넷째, 아리랑이 영화 아리랑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잘못된 것이다. 1912년의 채집자료 및 1918년의 기록을 통해 이전부터 불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근래에 메리 린리 테일러가 금강산 장안사에서 1918년에 채집한 자료에는 영화에서 불린 것과 같은 노랫말도 나온다.

아리랑 연구는 기존의 잘못되고 왜곡된 내용에 대한 학문적 비평이 취약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 진행된 거의 모든 연구가 불안정한 상태에 직면한 것이다.

향후의 연구는 새로 출현하는 기록은 물론이고 기존 자료에 대한 정당한 비평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튼실한 연구가 되리라 기대한다.(제18주제 끝)

 

 

조용호(趙容晧)박사는..

조용호(趙容晧)박사

 

문학박사(文學博士).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아리랑 원형연구』 및 『아리랑의 비밀화(話)원』, 『아리랑 영웅(英雄)』, 『아리랑 연구사(硏究史)』, 『아리랑 원형학』, 『아리랑 연구사』, 『아리랑 연구총서 1』, 『아리랑 연구총서 2』 등 저자(著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집필진.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아리랑 연구기획위원장. 민요학회 임원. 모바일 반도체그룹 본사부사장. 한국지사장. 시인.

(블로그) '아리랑의 비밀話원, 그 오랜 세월을 당신을 기다리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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