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인터뷰)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이, 나는 넓은 땅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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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이, 나는 넓은 땅에 그림을 그렸다..”
  • 고현준
  • 승인 2023.03.20 15: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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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뚝심으로 일궈낸 명품 빌레뱅디.. 자연예술가 김자현 주)빌레뱅디 회장에 듣는 개척이야기
주)빌레뱅디 김자현 회장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청수리 11번지)에는 한 남자의 뚝심으로 조성한 ‘빌레뱅디’라는 제주 천연의 비경이 숨어 있다.

척박해도 그렇게 척박할 수가 없는 이곳 버려졌던 땅을 자연의 보물처럼 일궈낸 곳이다.

그렇게, 지난 17년간 혼신을 기울여 직접 만든 주)빌레뱅디 김자현 회장(75세)의 인생을 건 역작이 지금은 유명세를 타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빌레뱅디는 자연 그대로를 살린 용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지만, 나무는 김 회장이 곳곳에 직접 심어 아름드리 큰 나무로 자라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자연 그대로를 머금고 있는 빌레뱅디를 찾았을 때 김 회장은 여전히 직접 나무에 올라 전정을 하는 중이었다.

“하루도 일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며 늘 부지런히 자기 일에 매진하고 있는 김자현 회장.

불모지나 다름 없던 땅을 자연과 더불어 빛나게 만든 것도 그런 남다른 의욕 때문일 것이다.

김 회장의 그런 의지와 뚝심이 만들어 놓은 걸작품은 이제 영원히 이 지역의 소중한 명물로 남게 됐다.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제주도의 척박한 불모지도 자연이 준 예술처럼 함께 빛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빌레뱅디.

제주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살려 자연을 승화시킨 자연예술가 김자현 회장과 빌레뱅디에서 만나 현장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는 김 회장 며느리인 배경아 대표가 운영하는 이탈리아 음식점 빌레뱅디 레스토랑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김자현 회장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 이곳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17년 전에 이곳 보리밭을 샀는데 처음에는 다 소나무밭이었다. 불모지나 다름 없는 땅에 나무를 심고 돌을 사다가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돌이 쌓여있고 쓰레기가 가득 한 쓸모없는 땅으로 내버려 졌던 곳이었기 때문에 당시 이 땅을 사고 난 후 동네 사람들은 속아서 샀다고 말하기 까지 했다.

더욱이 지대가 다른 곳보다 1미터 정도 낮았고 물통밭을 샀다는 얘기를 해서 나중에 보니 비가 내리면 물이 다 이곳으로 흘러드는 그런 곳이었다.

당시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비만 오면 다 쓰러져 버릴 정도였다. 안되겠다 싶어 흙을 1천 차 정도 들여와 땅을 채우고 자연석 등을 갖다 놓았다. 그동안 들어간 돈을 다 합치면 적어도 1백억원 이상은 투자됐을 것이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는지..

“처음 이 땅을 살 당시는 주위 땅을 더 사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그때는 땅값도 아주 쌌을 때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6천평만 구입했다.

처음에는 이곳에 상하수도도 없었고 도로도 없었지만 허가를 받아 컨테이너에 살면서 하나씩 개척했다.

이곳을 개척할 때는 모든 사람과의 인연을 모두 끊고 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죽은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날 정도였다.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까지는 안해 본 일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복싱으로 금메달을 4개나 땄을 정도로 운동에 매진하던 때가 있었다

각종 사회활동을 하면서 표창장 감사장 등 62개를 받았다. 교도소교화 회장도 했고 심판위원 경찰, 검찰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아마 계속 그런 일을 했다면 거지처럼 됐을 거라는 생각도 가끔 하곤 한다.

막상 도심을 떠나 다 잊자고 하면서 오늘날 이곳까지 오게 됐다. 다만, 입구 쪽에 대지로 된 곳이 있다. 앞으로 임대주택을 지어 볼까 생각하고 있다.”

 

옥상에서 조망되는 한라산

 

 

- 50대 후반이면 젊은 나이에 이곳으로 들어 왔는데..

“젊은 시절 장사를 잘했다, 27세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관광버스, 레스토랑, 닭장사 모텔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루 아침에 모든 부가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 후 모두 접고 농사를 짓자고 결심을 했다. 조경 공부를 50여년 동안이나 해온 노하우가 있어 조경을 겸한 개척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맨 땅에 나무를 심어 이렇게 큰 나무로 자라도록 만든 것이다.

이곳은 지금 전으로 돼 있지만 처음 허가를 받을 때 조경 관상수 목적으로 농지원부에 올려놓으니까 계획관리지역이 되면서 40%(2500평 정도)을 대지로 만들 수 있었다. 지금은 소문이 많이 나서 여러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앞으로 10년후가 되면 이곳은 진짜 명픔이 될 것이다.”

 

-개척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처음에 이 땅을 살 때는 지적도만 보고 샀는데 도로가 8미터에서 20미터 도로가 있었다.

그런데 옛날 사람들이 양쪽 도로를 다 사용해서 사유화, 농장을 만들어 버린 상태였다. 행정이 다 나서도 하루아침에 이 일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묘지이전비를 기당 5백만원씩 주고 옮겨가도록 하는 등 죽도록 노력해서 도로를 되찾았고 지금도 반 이상을 차지한 곳이 조금 남아 있긴 하지만 거의 마무리 된 상태다.

이제 조금 있으면 이곳에 오폐수 시설이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며느리인 배경아 대표와 함께

 

 

-보람이라면..

“시골사람들은 콩이나 브로콜리나 마늘이나 심어서 수익을 보지만 내 자신이 이런 큰 숲을 만들었다는데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 이곳은 내가 죽은 후에도 만인이 오게 되고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들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런 일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1남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건축설계사고, 딸은 의상디자이너학과 교수로 있다가 제주로 내려와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다.

하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듯이, 나는 넓은 땅에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일..

“대지로 남은 2500평 정도 되는 곳에 고급주택 10동 이상 건설하는 것을 생각중이다.

건강을 위해 매일 유산소 운동과 목욕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일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이리 예술인마을처럼 제주에도 100동 이상 그런 특별한 곳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곳을 만든 후 우리와 비슷하게 만든 곳이 주변에 3-4곳이 더 생겼다. 이곳은 대접받는 기분으로 들어오는 곳이다.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식사 후에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 즉 휴양지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크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식당도 9시부터 4시까지만 운영한다.

이익은 거의 없지만 빌레뱅디가 일단 많이 알려졌다는 것과, 고생은 했지만 그림을 그리듯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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