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4)-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14수(1465)
상태바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4)-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14수(1465)
  • 현행복(전 제주특별자치도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3.22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고증) “40년 전 한 신문 기사의 내용을 고증함”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4)

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4.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탁라가(乇羅歌)> 14수(1465)

 

【원문(原文)】

<그림 (1)> 김종직의 《점필재집》 중 <탁라가(乇羅歌)> (1)

 

【판독(判讀)】

〇 佔畢齋 乇羅歌

乙酉二月二十八日 宿稷山之成歡驛 濟州

貢藥人金克修亦來 因夜話 畧問風土物産

遂錄其言 爲賦乇羅歌十四首

郵亭相揖若相親 包重般般藥物珍 衣袖帶腥言

語澁 看君眞是海中人

當初鼎立是神人 伉儷來從日出濱 百世婚姻只

三姓遺 風見說似朱陳

 

【해석(解釋)】

〇 점필재(佔畢齋) 탁라가(乇羅歌)

을유(乙酉, 1465)년 2월 28일에, 직산(稷山)의 성환역(成歡驛)에 투숙했다. 제주 사람인 약초 납품업자 김극수(金克修)가 또한 (그곳에) 투숙 차 찾아왔다.

그러기에 그와 밤새 이야기 나누며 (제주의) 풍토(風土)와 물산(物産)에 관해 물어보았다. 드디어 그 말을 기록해서 한 편의 부(賦)가 되었으니 곧 탁라가(乇羅歌) 14수(首)이다.

 

(1)

郵亭相揖若相親(우정상읍약상친) 여관에서 처음 만났어도 서로 금세 친해져서

包重般般藥物珍(포중반반약물진) 겹겹 보따리에 싸인 갖가지 약재 진기해라.

衣袖帶腥言語澁(의수대성언어삽) 옷소매엔 비린내 배고, 말소리 난삽하니

看君眞是海中人(간군진시해중인) 그댈 보니 과연 바닷가에 사는 섬사람일세.

※ 운자 : 평성(平聲) ‘眞(진)’운 - 親, 珍, 人

 

(2)

當初鼎立是神人(당초정립시신인) 애당초 나라 세운 건 삼신인(三神人)이었는데

伉儷來從日出濱(항려래종일출빈) 배필들 찾아온 건 해 뜨는 나라에서라.

百世婚姻只三姓(백세혼인지삼성) 백세 동안 오직 세 성씨끼리만 혼인한다니

遺風見說似朱陳(유풍견설사주진) 전해오는 풍속 들으니 주진촌과 비슷하구나.

※ 운자 : 평성(平聲) ‘眞(진)’운 - 人, 濱, 陳

 

【원문(原文)】

<그림 (2)> 김종직의 《점필재집》 중 <탁라가(乇羅歌)> (2)

 

【판독(判讀)】

星主已亡王子絶 神人祠廟亦荒凉 歲時父老猶

追遠 簫鼓爭陳廣壤堂

水路奚徒數千里年年來往飽曾諳雲帆掛却馳

如箭一夜便風到海南

漢拏縹氣通房駟雲錦離披水草間一自胡元監

牧後驊騮歲歲入天閑

烏梅玳瑁黑珊瑚附子靑皮天下無物産非惟東

府庫精英盡入活人須

車螯海月與蠔山巨口文鱗又幾般日暮腥炯冪

鄕井水虞千舶泛鮮還

 

【해석(解釋)】

 

(3)

星主已亡王子絶(성주이망왕자절) 성주(星主) 이미 죽고, 왕자(王子)는 대 끊겨

神人祠廟亦荒凉(신인사묘역황량) 삼신인(三神人) 모신 사당 또한 황폐해졌네.

歲時父老猶追遠(세시부로유추원) 절기마다 부로(父老)들 제사하며 추모하는데

簫鼓爭陳廣壤堂(소고쟁진광양당) 광양당에서 퉁소와 북소리 앞다퉈 울려대네.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凉, 堂

 

(4)

水路奚徒數千里(수로해도수천리) 바닷길이 아무리 수천 리나 된다 해도

年年來往飽曾諳(연년래왕포증암) 해마다 왕래하니 일찍부터 익숙해져 있네.

雲帆掛却馳如箭(운범괘각치여전) 흰 돛 달아 올리고 쏜살같이 치달으면

一夜便風到海南(일야편풍도해남) 하룻밤 만에 순풍 타 해남(海南)에 이른다네.

※ 운자 : 평성(平聲) ‘覃(담)’운 - 諳, 南

 

(5)

漢拏縹氣通房駟(한라표기통방사) 한라산의 푸른 기운, 방성(房星)과 통하는데

雲錦離披水草間(운금리피수초간) 아침놀 마냥 말떼들 물풀 사이에서 풀 뜯네.

一自胡元監牧後(일자호원감목후) 한 번 오랑캐 원(元)나라의 감목관을 둔 후로

驊騮歲歲入天閑(화류세세입천한) 준마들 해마다 원 황실 마구간으로 들어갔네.

※ 운자 : 평성(平聲) ‘刪(산)’운 - 間, 閑

 

<그림 (3)>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공마봉진(貢馬封進)>

 

(6)

烏梅玳瑁黑珊瑚(오매대모흑산호) 오매(烏梅), 대모(玳瑁), 흑산호(黑珊瑚)와

附子靑皮天下無(부자청피천하무) 부자(附子), 청피(靑皮) 천하에 없는 것들.

物産非惟東府庫(물산비유동부고) 물산이 우리나라 부고(府庫)일 뿐만 아니라

精英盡入活人須(정영진입활인수) 그 정수(精粹)가 다 사람 살림에 쓰임이라.

※ 운자 : 평성(平聲) ‘虞(우)’운 - 瑚, 無, 須

 

(7)

車螯海月與蠔山(거오해월여호산) 대합, 해파리와 함께 굴조개 산더미로 쌓여,

巨口文鱗又幾般(거구문린우기반) 농어(盧魚)며 온갖 물고기, 또 그 몇몇이던가.

日暮腥炯冪鄕井(일모성형멱향정) 날이 지고 비린 내음이 온 마을 뒤덮을 때면

水虞千舶泛鮮還(수우천박범선환) 관청 소속 온갖 배, 생선 싣고 돌아올 때라.

※ 운자 : 평성(平聲) ‘刪(산)’운 - 山, 般, 還

 

【원문(原文)】

<그림 ()> 김종직의 《점필재집》 중 <탁라가(乇羅歌)> (3)

 

【판독(判讀)】

萬家橘柚飽秋霜 採着筠籠渡海洋 大官擎向彤

墀進 宛宛猶全色味香

使君車騎簇長圍 雉兎麏䴥百族披 海島但無熊

虎豹 林行露宿不驚疑

庭除草際遇錢龍 祝酒焚香是風土 北人驚怕爭

相笑 還怨吳公在竹筒

閭閻子弟游庠序 絃誦而今樂育多 滄海何曾断

地脉 翹材往往擢巍科

頭無岳上靈湫水 旱不能枯雨不肥 霹靂雲嵐生

造次 遊人疇敢褻神威

 

【해석(解釋)】

(8)

萬家橘柚飽秋霜(만가귤유포추상) 집집마다 귤 · 유자, 가을 서리 맞아 잘 익어

採着筠籠渡海洋(채착균롱도해양) 광주리 가득 귤을 따 담아 바다를 건너오네.

大官擎向彤墀進(대관경향동지진) 대관(大官)이 이를 받들고서 궁궐에 진상하면

宛宛猶全色味香(완완유전색미향) 색깔 · 맛 · 향기 완연함은 온전히 그대로라.

※ 운자 : 평성(平聲) ‘陽(양)’운 - 霜, 洋, 香

<그림 (5)> 송(宋) 임춘(林椿)의 <등황귤록도>
- * 소장처 : 대만 고궁박물관

 

(9)

使君車騎簇長圍(사군거기족장위) 목사(牧使) 이끄는 기마대, 주위를 에워싸면

雉兎麏䴥百族披(치토균가백족피) 꿩, 토끼, 노루 사슴 온갖 짐승 다 걸려들어.

海島但無熊虎豹(해도단무웅호표) 섬이라 다만 곰 ‧ 범 ‧ 표범 없기에 망정이지

林行露宿不驚疑(임행로숙불경의) 숲 사이 거닒, 한뎃잠에 놀랄 일 거의 없네.

※ 운자 : 평성(平聲) ‘支(지)’운 - 披, 疑

 

<그림 (6)>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교래대렵(橋來大獵)>

 

(10)

庭除草際遇錢龍(정제초제우전용) 뜰 안 마당 풀 사이로 행여 뱀 마주칠 때면

祝酒焚香是土風(축주분향시토풍) 축주(祝酒) 붓고 분향함, 이 고을 풍속이라네.

北人驚怕爭相笑(북인경파쟁상소) 육지서 온 사람들 놀라 앞다퉈 서로 비웃으며

還怨吳公在竹筒(환원오공재죽통) 도리어 대통 속에 든 지네[吳公]를 원망하네.

※ 운자 : 평성(平聲) ‘東(동)’운 - 風, 筒

<그림 (7)> 공자(孔子)의 현송(絃誦) 조각상
- * 중국 운남성 건수고성(建水古城) 앞

 

(11)

閭閻子弟游庠序(여염자제유상서) 여염집 자제들, 향교 찾아 많이 모여들고

絃誦而今樂育多(현송이금락육다) 현악 반주 암송 시라, 즐겨 많이 교육함이네.

滄海何曾斷地脉(창해하증단지맥) 푸른 바다라고 어찌 일찍 지맥 끊어 놓았으랴

翹材往往擢巍科(교재왕왕탁외과) 뛰어난 인재, 왕왕 과거시험에도 급제했다네.

※ 운자 : 평성(平聲) ‘歌(가)’운 - 多, 科

 

(12)

頭無岳上靈湫水(두무악상령추수) 한라산[頭無岳] 정상에 영험한 못물 있어

旱不能枯雨不肥(한불능고우불비)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비 와도 불지 않네.

霹靂雲嵐生造次(벽력운람생조차) 벼락 천둥 치고 이내 낌, 별안간 생겨나니

遊人疇敢褻神威(유인주감설신위) 유람객 중 뉘 감히 신령의 위엄 업신여기리.

※ 운자 : 평성(平聲) ‘微(미)’운 - 肥, 威

 

【원문(原文)】

 

【판독(判讀)】

火脫島西水相摯 風雷噴薄怒濤高 萬斛海鰌傾

側過 行人性命若鴻毛

候風淹滯朝天舘 妻子相看勸酒盃 日中霢霂霏

霏雨 知是鰍魚噴氣來

<그림 (9)> 바다고래[海鰍魚]의 상상도(작자미상)

 

【해석(解釋)】

(13)

火脫島西水相摯(화탈도서수상지) 작은 관탈섬 서쪽으로 물결이 서로 부딪혀

風雷噴薄怒濤高(풍뢰분박노도고) 바람에 우레 치듯 성난 파도 높이 뿜어대네.

萬斛海鰌傾側過(만곡해추경측과) 만곡(萬斛)쯤 된 바다고래 비켜서 지난 뒤면

行人性命若鴻毛(행인성명약홍모) 길손 목숨, 기러기털 마냥 가볍기 그지없네.

※ 운자 : 평성(平聲) ‘豪(호)’운 - 高, 毛

 

(14)

候風淹滯朝天舘(후풍엄체조천관) 순풍 기다려 조천관(朝天館)에 체류할 적이면

妻子相看勸酒盃(처자상간권주배) 처자(妻子) 서로 만나 이별 술잔 권한다네.

日中霢霂霏霏雨(일중맥목비비우) 대낮인데도 가랑비 부슬부슬 내릴 양이면,

知是鰍魚噴氣來(지시추어분기래) 아마도 고래가 숨을 내뿜어 날아드는 거겠지.

※ 운자 : 평성(平聲) ‘灰(회)’운 - 盃, 來

 

【해설(解說)】

제주도의 옛 이름은 일반적으로 ‘탐라(耽羅)’라 불렸다. 그런데 이것 말고도 달리 불리는 이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탁라(乇羅)’란 게 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그의 나이 35세 때인 세조 11년, 을유(乙酉, 1465)의 해 2월 28일에, 직산(稷山)의 성환역(成歡驛)에 투숙했다가 그때 마침 그 숙소에서 제주 사람 김극수(金克修)를 만나게 되었다.

약재 운반상인 김극수를 통해 제주도의 풍토와 물산에 관해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때 들은 내용을 엮어 시문으로 엮어낸 게 바로 이 <탁라가(乇羅歌)> 14수이다. 그 형식이 칠언절구(七言絶句)의 시 14수를 한데 엮은 형태로 제주에 관한 역사와 풍속을 읊은 일종의 영사시(詠史詩)라 할 것이다.

<그림 (10)>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초상화
- * 월전(月田) 장우성(張遇聖) 그림

 

점필재 김종직은 조선 전기 사림파의 영수(領袖) 격으로 위치했는데, 그의 문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다. 그 대표적 인물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등을 꼽을 수 있고, 그 밖에도 소총(篠叢) 홍유손(洪裕孫), 금남(錦南) 최부(崔溥),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는 생전에 <조의제문(弔義帝文)>이란 글을 남겼다. '의제(義帝)를 조문하는 글'이란 뜻인 이 글은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가 권력 쟁탈전을 벌일 때, 항우에게 살해당한 초의제(楚義帝)의 귀신이 꿈속에 나타나는 형식을 취했는데, 여기서 항우는 세조로, 의제는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을 의미하는 셈이 된 것이다.

결국 이 글로 말미암아 그의 사후에 내려진 평가는 세조(世祖)의 왕위찬탈을 비난한 것으로 지목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연산군 때 일어난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빌미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그는 부관참시(剖棺斬屍) 되었고, 그의 많은 제자들도 함께 참화를 당하게 되었다.

점필재 김종직은 향년 62세라는 그리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어도, 그는 일생 동안 조선 성리학의 발전과 정치개혁의 초석을 놓은 사림파의 영수이자 절의를 지킨 선비로서 추앙받았다.

그가 제주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도 않았음에도 이처럼 <탁라가> 14수를 짓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연보(年譜)>에 따르면, 이 시를 지을 때인 세조 11년(1465)은 그의 나이 35세인 때로, 이미 한해 전 문신들에게 칠학(七學; *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음양(陰陽)ㆍ율려(律呂)ㆍ의약(醫藥)ㆍ복서(卜筮)ㆍ시사(詩史) 등의 잡학(雜學))을 나누어 배우게 한 것에 대한 간언(諫言)을 올렸다가 세조(世祖)의 뜻에 거슬려 파직된 상태였었다.

그러다가 그해 2월에 영남병마평사(嶺南兵馬評事)로 임명되어 경상도 각 고을을 순찰하면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고 했다. 아마도 이때 직산현(稷山縣; * 현재의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의 성환역(成歡驛)에 묵으면서 <탁라가> 14수를 지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문이 후대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후대의 학자들로부터 이 시문을 차운해 지은 작품 수가 다른 이들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월등히 많은 수효로 나타남은 이 작품에 대한 지대한 관심의 결과를 반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구체적으로 이 <탁라가>란 시편의 명칭을 달고 차운시를 남긴 이들의 사례를 든다면, 곧 김상헌(金尙憲) ‧ 이증(李增) ‧ 남구명(南九明) ‧ 이형상(李衡祥) 등 여럿이 있다. 특히 남구명의 경우엔 무려 세 편의 다른 <탁라가> 차운시를 남기고 있기도 하다.

한편 금남(錦南) 최부(崔溥)가 <탐라시 35절>이란 장편 서사시를 남길 수 있었던 배경에도 어쩌면 간접적으로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의 <탁라가> 14수의 영향을 받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점필재 김종직이 제주와 얽힌 다른 일화로서 정의현감(旌義縣監)을 지냈던 이섬(李暹)과의 관계가 있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14년, 계묘(癸卯, 1483)의 해 8월 22일조>의 기록에 보면, ‘홍문관직제학(弘文館直提學) 김종직(金宗直)이 이섬(李暹)의 행록(行錄)을 다시 적어 글로 올리다’란 글이 실려있다.

이섬은 무과 출신의 관료로서 당시 정의 현감에서 체임(遞任)되어 일행 47명과 함께 한양으로 돌아가던 중에 추자도 지경에서 큰바람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10여 일을 떠다니다가 다행히도 중국 해안의 장사진(長沙鎭)에 이르렀는데, 일행 중 14명은 굶어서 죽고 33명만이 살아남았다.

처음엔 중국 관료들로부터 왜구로 오인되어 곤혹에 처했지만, 서툰 필담을 통해 겨우 소통의 길이 트여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홍문관직제학이었던 김종직은 이섬의 표류 이야기를 듣고 새로 정리해 올려 결국 그에게 가자(加資)의 영예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 되기도 했다. 이섬의 표류기는 시기상 최부(崔溥)의 《표해록(漂海錄)》보다도 5개월여나 앞서 발생한 일의 기록이기도 하다.

 

 

 

각주(脚註) 모음

1)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신으로서 사림파(士林派)의 영수이다. 자는 계온(季溫) 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시호는 문충(文忠), 본관은 선산(善山)이다. 그의 부친 김숙자(金叔滋)는 고려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문인이기도 하다. 1453년에 진사(進士), 1459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해 관계로 진출해 도승지(都承旨), 공조참판(工曹參判),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했다. 그의 문하에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 우수한 문인들을 많이 배출시켰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 되는 화를 당하기도 했다. 저서로 점필재집(佔畢齋集), 청구풍아(靑丘風雅), 유두류록(游頭流錄), 당후일기(堂后日記), 이존록(彝尊錄)등이 있다.

2) 郵亭(우정) : 역참에 설치한 여관.

3) 伉儷(항려) : 아내. 배우자. 배필(配匹).

4)朱陳(주진) : 본래 주()씨 성과 진()씨 성 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현재 중국 강소성(江蘇省) 서주시(徐州市) 풍현(豊縣) 조장진(趙莊鎭)이 여기에 해당한다. ()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주진촌(朱陳村)>이란 오언고시에 보면, “서주의 옛 풍현에 마을 하나 있는데 주진촌이라 하네. 현에서 가자면 백여 리인데, 뽕나무 삼나무 푸르고 향기롭네. 살아서는 주진촌 사람으로 살고, 죽어서는 주진촌의 흙으로 돌아가네. 한 마을에 오로지 두 성씨만이 있어서 대대로 두 집안이 혼인을 하네.[徐州古豊縣 / 有村曰朱陳 / 去縣百餘里 / 桑麻春氛氲 生爲村之民 / 死爲村之塵 一村有兩姓 / 世世爲婚姻 ]”라고 소개하고 있다.

5) 星主已亡王子絶(성주이망왕자절) : “성주(星主)는 이미 죽고, 왕자(王子)는 대가 끊김.” 여기서 성주(星主)와 왕자(王子)라고 한 호칭은 이미 신라 때부터 탐라 사신에게 내려져 왔던 것이기에 그 호칭을 바꿔 달리 부르면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6) 縹氣(표기) : 푸른 기운. 본래 ()’는 옥색비단을 뜻함.

7) 房駟(방사) : 방성(房星). 이십팔수의 하나로 창룡칠수(蒼龍七宿)의 넷째 성수로, 별 넷으로 구성됨. 거마(車馬)를 맡는다고 함.

8) 雲錦(운금) : 조하(朝霞), 곧 아침놀을 뜻함. 당서(唐書)<왕모중전(王毛仲傳)>에 보면, “당 현종(唐玄宗) 때 감목사(監牧使) 왕모중(王毛仲)수만 필의 말을 잘 길러서 각 색깔별로 대열(隊列)을 나누어 놓으니, 바라보기에 마치 아침놀雲錦빛과 같았다.[牧馬數萬匹 每色爲一隊 忘如雲錦]’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여기선 말 떼들이 풀을 먹는 모습으로 풀이해야 할 것이다.

9) 驊騮(화류) : 주목왕(周穆王)의 팔준마(八駿馬)의 하나. 인신하여, 준마(駿馬).

10) 精英(정영) : 사물의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부분.

11) 車螯(차오) : 대합과 비슷하게 생긴 조개.

12) 海月(해월) : 바다 위에 뜬 달이란 의미로 해파리를 두고 지칭함.

13) 蠔山(호산) : 석화(石花). 굴조개가 산을 이룸. 소식(蘇軾)<화도잡시 11(和陶雜詩十一首)>중 일수(一首)의 시에 호포는 산에 끈끈적하고, 여름 길도 서리가 내린다[蠔浦旣黏山 / 暑路亦飛霜]’란 표현이 있다.

14) 巨口文鱗(거구문린) : 입이 크고 비늘무늬가 진, 작은 물고기, 곧 농어(鱸魚)를 이름. 소식(蘇軾)<후적벽부(後赤壁賦)>에 나오는 巨口細鱗狀如松江之鱸(거구세린상여송강지로)’란 표현에서 전고를 삼은 듯하다.

15) 水虞(수우) : 해산물을 관장하는 기관. 보통 虞人(우인)’이라 하면 고대에 산림 · 천택(川澤)과 원유(苑囿)의 일을 맡아보았던 벼슬을 지칭함.

16) 彤墀(동지) : 붉은 빛깔의 정원인 대궐. 곧 대궐 섬돌이 붉은색으로 장식되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임.

17) 麏䴥(균가) : 암사슴과 숫사슴.

18) 錢龍(전룡) : 용의 한 가지. 여기서는 뱀의 상징어로 쓰인 듯하다.

19)吳公(오공) : ‘蜈蚣(오공)’을 지칭한 말로서 지네를 뜻함.

20) 庠序(상서) : 고대에 지방에 설치했던 학교. 여기에선 향교(鄕校)를 지칭함.

21) 絃誦(현송) : 가르침을 받아 배우고 익힘. 글 읽는 소리. 여기선 특히 현악기 반주에 맞춰 시를 암송하는 교육 현장을 상징화한 표현으로 이해된다.

22) 断地脈(단지맥) : 지맥(地脈)을 끊다. 이는 전설상 중국의 호종단(胡宗旦)이란 인물이 제주에서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단혈(斷穴)로 지맥(地脈)을 끊어놓은 일을 상기해 이렇듯 표현한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서 ()’()’의 속자(俗字)이다.

23) 翹材(교재) : 교재관(翹材館)의 준말. 본래 교재관(翹材館)’이란 재능이 뛰어난 인재를 초치하기 위하여 한()나라 공손홍(公孫弘)이 세운 관()의 이름에서 비롯했다.

24) 巍科(외과) : 과거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함.

25) 頭無岳(두무악) : 한라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제주목(濟州牧)> ‘산천(山川)’조에 한라산은 일명 두무악(頭無岳)이라 칭한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26) 旱不能枯雨不肥(한불능고우불비) :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비와도 불지 않는다네.” 이 표현은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보이는 보광(葆光)’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 “거기에는 물을 부어도 차는 일이 없고, 퍼내도 마르는 일이 없는데, 그 근원을 알지 못하니 이러한 경지를 일컬어 보광(葆光)’이라고 한다.[注焉而不滿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此之謂葆光]”라고 함이다.

27) 疇敢褻(주감설) : 누가 감히 업신여기랴.

28) 火脫島(화탈도) : 관탈섬. 추자도에서 제주로 들어오는 길목에 두 개의 섬이 있는데, 대화탈도(大火脫島)와 소화탈도(小火脫島)로 불린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제주목(濟州牧) 산천(山川)>조에 보면, “대화탈도(火脫島) 추자도 남쪽에 있는데 돌 봉우리가 삐쭉삐쭉하고 그 꼭대기에 샘이 있다. 수목은 없고 풀이 있는데 부드럽고 질겨 기구를 만들 만하다. 소화탈도(火脫島) 추자도 서남쪽에 있는데 석벽이 깎은 듯이 서 있고, 양 섬 사이로 두 물이 합쳐서 흘러 파도가 높고 급하므로 배가 많이 표류하고 침몰되니, 왕래하는 사람들이 매우 괴롭게 여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29) 萬斛(만곡) : 10만말[]. ‘()’은 본래 1곡이 10말을 뜻하는 고대의 곡식을 재는 단위였음.

30) 海鰌(해추) : 바다고래. 혹은 파도가 세차게 이는 바다.

31) 鴻毛(홍모) : 본래 기러기의 털이란 뜻으로 가볍게 여김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의 용례를 보면 이렇다. 문선(文選)(47)에 실린 한()나라 왕포(王褒)<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이란 글에 보면, “그러므로 성군은 반드시 현신을 만나야 그 공적을 넓힐 수 있고, 뛰어난 인재도 밝은 임금을 기다린 이후에야 자신의 덕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위아래가 함께 바라던 바이므로 즐겁게 서로 교류하며 천재일우의 기회를 빌려 아무 의심도 없이 토론하고 대화합니다. 큰 기러기가 순풍을 만난 것처럼 일의 진행이 빠르고, 거대한 물고기가 대해에서 마음대로 헤엄치는 것처럼 거침이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얻음이 이와 같으니 어찌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그치지 않을 수 있고, 명령을 내렸는데도 그 명령이 시행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故聖主必待賢臣而弘功業俊士亦俟明主以顯其德上下俱欲歡然交欣千載一會論說無疑翼乎如鴻毛遇順風沛乎若巨魚縱大壑其得意如此則胡禁不止曷令不行]”라 했다. 또한 한서(漢書)<사마천전(司馬遷傳)>문선(文選)(41)에 수록된 사마천의 <임소경(任少卿)에게 보내는 글[報任少卿書]>에 보면, “사람은 본래 한 번은 죽게 되지만 그 죽음이 더러 태산보다 무거울 때가 있고, 기러기 깃털보다 가벼울 때도 있으니 그것은 죽음을 사용하는 방향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人固有一死或重於泰山或輕於鴻毛用之所趣異也]”라고 했다. 한편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의 시, <양보음(梁父吟)>, “지혜로운 자 숨고 우매한 자 날뛰니, 세상사람 나를 기러기 털처럼 가볍게 업신여기네.[智者可卷愚者豪 / 世人見我輕鴻毛]”란 구절이 보인다.

32) 霢霂(맥목) : 가랑비.

33) 霏霏(비비) : 미세한 것이 날아 흩어지는 모양.

34) 鰍魚(추어) : 참고래.

 

 

【고증(考證)】

 

“40년 전 한 신문 기사의 내용을 고증함”

고증자 :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84년 2월 23일에 《동아일보(東亞日報)》 (7면 – 사회면)에 사진 2점과 함께 실린 기사의 내용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자료 (1)> (7면 전문)

 

<자료 (2)> (부분확대)

 

<기사내용>

 

○ 高麗때 濟州민요 乇羅歌 발견

全文42首기록 木板 • 木版本 발견

 

【大邱聯合】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제목만 전해내려오던 高麗때의 유일한 濟州道 민요인 乇羅歌(일명 耽羅歌) 전문 42수(首)가 기록된 목판 1백 84장과 목판본 전 5권(卷)이 발견됐다.

이같은 사실은 조선조 숙종때 濟州통판을 지낸 이 민요의 최초 수집편집자격인 우암 南九明의 9대손 南永福씨(58 ‧ 大邱시 壽城구 壽城1가 219의 2)가 英陽南씨 종가재실인 지연정사(止淵精舍 ‧ 慶州시 暗谷동)에 보관돼있는 것을 발견, 학계의 고증을 받은 결과 23일 밝혀졌다.”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의 고증>

우암(寓庵) 남구명(南九明, 1661~1719)은 제주 판관(判官)으로 재직했던 인물로, 그 기간은 숙종 38년(1712) 10월에서 숙종 41년(1715) 5월까지로 2년 7개월에 해당한다. 당시 함께 재직했던 제주 목사로는 이익한(李翊漢)과 변시태(邊時泰)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제주 판관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어사 황구하(黃龜河)의 별단(別單)에 따라 파직당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숙종실록(肅宗實錄)》 <숙종 42년 병신(丙申, 1716)의 해 11월 27일>조에 보면, 이에 대한 관련 기사가 보인다.

곧, “제주(濟州)의 진정(賑政)을 살펴, 전 제주 판관(濟州判官) 남구명(南九明)은 파직(罷職)하여 추고(推考)하고 가자(加資)를 삭탈하며, 전 제주 목사(濟州牧使) 변시태(邊是泰)ㆍ전 정의 현감(旌義縣監) 김초보(金楚寶)는 나문(拿問)하고, 전 대정 현감(大靜縣監) 이현징(李顯徵)은 파직하였는데, 어사(御史) 황구하(黃龜河)의 별단(別單)에 따라 비국(備局)에서 등급을 나누어 논죄(論罪)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사후 100여 년이 지난 뒤에 목판본 《우암선생문집(寓庵先生文集)》(5책1권)이 출간되었다. 그런데 그 책에는 부제를 ‘탐라시기사지(耽羅時紀事志)’라고 달 만큼 탐라와 관련된 글들이 많이 실려있다.

특히 그 책 1권에 보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탁라가>를 차운한 <보탁라가(補乇羅歌)> 14수(首), <우보탁라가(又補乇羅歌)> 14수, <중보탁라가(重補乇羅歌)> 14수 등 도합 칠언절구(七言絶句) 42수의 시를 실어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탁라가(乇羅歌)’란 이름을 공통으로 내건 이들 세 편의 시편(詩篇)은 모두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의 <탁라가(乇羅歌)>에 대한 차운시(次韻詩)들이며, 이를 ‘고려(高麗) 때의 제주민요 탁라가(乇羅歌)’라 소개함은 잘못이다. 아울러 42수(14수 × 3편)의 목판은 이들 시를 새겨놓은 《우암선생문집》 제1권의 판각 중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은 그 오류가 명백한 만큼 바로잡혀 정정(訂正)돼야 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연재 계속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