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 최초의 표착지는 신도2리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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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 최초의 표착지는 신도2리 해안”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4.08.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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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상선 스페르웨르호 난파 361주년 추모헌다제 16일 개최

 

▲ 하멜표착지가 신도2리라는 주장의 근거들 하멜 표류기에 실린 난파당시의 모습과 신도리 해안에서 본 한라산과 녹남봉

▲ 현재의 신도리 해안에서 본 한라산과 녹남봉 ( 1653년도에는 인가가 없었다.)

올해는 네덜란드 상선 스페르웨르호가 난파 된지 361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배는 대만 해협을 거처 일본의 나가사키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1653년 8월 16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 해안가에서 좌초돼 산산 조각이 난후 침몰했다.

당시 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은 모두 64명으로 선장 에그베르츠를 포함 28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일부 선원은 난파 해안에 묻혔다.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이송됐고 이후 강진, 순천, 남원, 여수의 전라좌수영에 배치돼 13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1666년 하멜 일행 7명이 일본으로 탈출했다.

1668년 네덜란드로 돌아가 억류기간 동안의 임금을 받기 위해 보고서를 낸 것이 ‘난선 제주도 난파기’ 즉 하멜 표류기로 제주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 하멜표착지로 안덕면 사계리로 되어 있지만 고대항해 탐험연구소 채바다 소장은 “수십여 차례의 현지답사와 원로 향토사학자들의 문헌자료 및 1696년도에 이익태 목사가 지은 ‘지영록’에 근거해 최초의 표착지가 신도2리 해안”이라는 사실을 밝힌바 있다.

지영록을보면
《癸巳 七月二十四日 西洋國蠻人(서양국만인) 췬듥얌신 等六十四名(제 64명) 同乘 一船致敗(동승 일선치패) 于大靜縣地方(우대정현지방) 遮歸鎭下(차귀진하) 大也水沿邊(대야수연변) 渰死者二十六名(엄사자26명) 病死者二名(병사자2명) 生存者三十六名(생존자 36명)…….》이라 했다는 주장이다.

▲ 2012년도 추모헌다제 거행 장면

 

이에 따라 원표착지에서 고혼들의 넋을 달래주는 것이 고혼들에 대한 예의 이며 또한 표착지에 대해 잘못 알려지고 있어 역사 바로 알리기 차원에서 재작년도에 이어 이번에도 신도리 해안에서 추모 헌다 제를 지낸다고 밝혔다.

13일 고대해양 탐험 연구소 하멜기념사업회 와 신도2리 향민회는  오는 16일(토요일 11시) 신도2리 도구리알 해안에서 신도2리민 및 재 제주시 신도2리 향민회원과 관광객이 참석한 가운데 제 361주년 하멜표류 난파 희생자 추모 헌다제를 개최한다.

 

▲ 2012년도 추모헌다제 거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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