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7-2)-7.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제주 유배시’ 3수(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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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7-2)-7.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제주 유배시’ 3수(1521)
  • 현행복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승인 2024.04.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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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한학자이자 음악가이기도 한 마명(馬鳴) 현행복 선생이 최근 충암 김정, 규암 송인수, 청음 김상헌,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 오현이 남긴 업적과 흔적에 대해 이를 집대성해 발표한 이후 다시 '현행복의 인문학이야기'를 주제로 새로운 연재를 계속한다. 한시로 읽는 제주 역사는 고려-조선시대 한시 중 그동안 발표되지 않은 제주관련 한시들을 모아 해석한 내용이다. 특히 각주내용을 따로 수록, 한시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사료된다(편집자주)

 

“한시(漢詩)로 읽는 제주 역사”<7>

엮어 옮김[編譯] ‧ 마명(馬鳴) 현 행 복(玄行福)

 

7.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제주 유배시’ 3수(1521)

 

나. <우도가(牛島歌)>

 

<그림 (6)> 우도 검멀레 입구에 2012년 10월에 세워진 충암 김정의 <우도가(牛島歌> 시비(詩碑) - * 필자 촬영

 

【원문(原文)】

<그림 7> 《충암선생집(冲庵先生集)》(4) <그림 8> 《충암선생집(冲庵先生集)》(3)

 

【판독(判讀)】

聞方生談牛島歌以寄興

瀛洲東頭鰲抃傾 千年閟影涵重溟 群仙上訴

攝五精 屭贔一夜轟雷霆 雲開霧廓忽湧出 瑞

山新畫飛王庭 溟濤崩洶噬山腹 谽谺洞

天深雲扄 稜層鏤壁錦纈殷 扶桑日照光晶熒

繁珠凝露濺輕濕 壺中瑤碧躔列星 瓊宮

淵底不可見 有時隱隱窺窓櫺 軒轅奏樂馮夷

舞 玉簫䆗窱來靑冥 宛虹飮海垂長尾 麤鵬戱

鶴飄翅翎曉珠明定塵區黑燭龍爛燁雙眼靑

驂虯踏鯶多娉婷 天吳九首行竛竮 幽沈水府

囚百靈 邪鱗頑甲毒風腥 太陰之窟玄機停 仇

池禹穴傳神蹟 惜許絶境訛圖經 蘭橈拏入㩳

神形 鐵笛吹裂老怪聽 水咽雲暝悄愁

人 歸來怳兮夢未醒 嗟我只道隔門限 安得列

叟乘風泠

 

【해석(解釋)】

<방생(方生)의 우도 이야기를 듣고, 노래로 흥을 부침[聞方生談牛島歌以寄興]>

(1)

瀛洲東頭鰲汴傾(영주동두오변경) 영주산 동쪽 머리, 산 졌던 자라 춤추면서 기울어

千年閟影涵重溟(천년비영함중명) 천년사직 비궁(閟宮)의 모습, 깊은 바다에 잠겼네.

群仙上訴攝五精(군선상소섭오정) 뭇 신선들 상제께 호소해 오정(五精)을 포섭하매

屭贔一夜轟雷霆(희비일야굉뇌정) 거령이 하룻밤 힘을 써 벼락 천둥소리 요란했네.

※ 운자 : 평성(平聲) ‘靑(청)’운 - 溟, 霆

 

【해설(解說)】

일반적으로 <우도가(牛島歌)>라고만 알려진 충암(冲庵) 김정(金淨)의 이 시는 원래 제목이 <방생(方生)의 우도 이야기를 듣고, 노래로 흥을 부침[聞方生談牛島歌以寄興]>이다.

위의 시를 전하는 원전에 쓰인 제명(題名) 중 초서체로 쓰인 ‘談(담)’이란 글자를 ‘淡(담)’으로 잘못 전하는 경우가 더러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방생(方生)’이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이 시편에서는 그와 관련해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 없지만, <제주풍토록(濟州風土錄)>에 보면 짤막하게나마 그와 관련된 언급이 실려 있다.

“본토박이[土人]가 아니면서도 가까이 지내는 이로 방생(方生)이란 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순현(舜賢)이며 판관의 처조카이다. 일찍이 우리로부터 유학을 배웠는데,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이 자못 만족할 만해서 서로 대화를 나눌 만하다. 그러나 세속에 물들어 아정(雅正)하지 못하고 아직 강호에 처할 만한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바다 건너와 이런 사람을 만남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且所偕非土人卽方生 生名舜賢 判官之妻姪 學儒於吾輩 事頗聞之意足 多稍可談話 而染俗乏雅於江湖無入處 然海外遇斯人 豈非幸甚歟]”

결국 우도 이야기를 전해준 이는 유생(儒生) 방순현(方舜賢)이며, 그는 당시 제주 판관이었던 진세인(秦世人)의 처조카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속에 물들어 아정함이 결핍되어 있다고 언급한 점으로 보면 그의 직업이 장사치나 혹은 어업에 관계된 일을 한 게 아닌가 하고 추정해 본다.

한편 첫째 구인 ‘瀛洲東頭鰲抃傾(영주동두오변경)’의 해석을 단순히 ‘영주의 동쪽 머리 자라가 쳐서 기울어’라고 해선 얼른 이해가 잘 안 된다.

바로 ‘영주산 동쪽 머리, 산을 등에 진 자라가 춤추며 놀다 기울어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선 먼저 중국의 고사 중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 영주산(瀛洲山)에 대한 고사와 더불어 산을 등에 진 자라[鰲]의 모습을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문의 글자 ‘오(鰲)’와 ‘변(抃)’ 사이에는 의미상으로 ‘대산(戴山)’이 생략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산을 등에 지고 있던 자라가 손뼉 치며 놀다가 기울어져[鰲戴山抃傾]’란 의미로 해석된다.

곧 여기서 ‘변(抃)’이란 글자는 손뼉을 치면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에 결국 영주산 동쪽 머리를 기울게 한 직접적인 요인은 산을 등에 지고 있던 자라가 손뼉 치고 춤추며 놀다가 발생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鰲(오)’와 ‘鼇(오)’는 ‘자라’를 뜻하는 동자(同字)의 한자어로서 부수만 다른 형태이다.

한편 작자의 이 표현과 비슷한 용례(用例)로는 먼저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천문(天問)>편 중에 ‘자라가 산을 이고서 손뼉 치며 춤추는데 어떻게 편안한가[鼇戴山抃 何安之]’란 부분이 있고, 서한(西漢) 장형(張衡)의 <사현부(思玄賦)>에도 ‘자라가 비록 손뼉 치고 놀아도 기울지 않아(鼇雖抃而不傾)’란 표현도 보인다.

한편 ‘천년의 역사를 지닌 비궁의 모습[千年閟影]’은 그 표현이 《시경(詩經)》 <노송(魯頌)>편 첫머리에 등장하는 ‘비궁유혁(閟宮有侐)’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는 곧 ‘천년사직(千年社稷)’의 의미를 내포하면서 오랜 역사를 지닌 신선 세계의 궁전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이 표현이 다음에 이어지는 ‘서산용출(瑞山湧出)’을 좀 더 실감 나게 표현코자 하는 의도에서 작자의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설정되었을 법도 하다.

‘뭇 신선들이 상제께 호소해 오정(五精)을 포섭했다[群仙上訴攝五精]’라고 함에 있어서 ‘오정(五精)’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두고 이렇게 일컫는 말일까.

다음에 이어지는 요란한 천둥소리와 먹구름, 짙은 안개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오행(五行)의 신(神)을 두고 오정(五精)을 비정(比定)한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본다.

이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면 목신(木神) 구망(句芒) ‧ 화신(火神) 축융(祝融) ‧ 금신(金神) 욕수(蓐收) ‧ 수신(水神) 현명(玄冥) ‧ 토신(土神) 후토(后土)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바로 뒤이어 나오는 구절 ‘屭贔一夜轟雷霆(희비일야굉뇌정)’에서 ‘屭贔(희비)’는 ‘贔屭(비희)’로도 통용되는 낱말로서 그 뜻이 ‘대단히 힘쓰는 모양’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본래 황하(黃河)의 신 ‘거령(巨靈)’을 두고 일컫는 말이었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산을 갈라서 황하의 물줄기를 텄다고 알려진 ‘거령비희(巨靈贔屭)’의 용례는 서한(西漢)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보인다.

“거대한 신령 하신(河神)이 있는 힘을 다 써서 높은 곳에서는 손바닥으로 쳐서 둘로 나누고, 멀리서는 산록을 짓밟아 쪼개놓아 구비진 황하의 물줄기를 곧장 흐르게 했다는데, 그 자취가 아직도 산 위에 남아 있습니다.[巨靈贔屭 高掌遠蹠 以流河曲 厥跡猶存]”라고 했다.

한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보면, “비희(贔屭)란 큰 거북은 무거운 것을 짊어짐을 좋아한다. 오늘날 돌로 된 비석 아래의 거북 형상이 바로 그모습이다.[贔屭大龜 好負重 今石碑下龜趺像其形]”라고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림 (9)>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보조선사창성탑비(寶照禪師彰聖塔碑) 귀부상(龜趺像) (* 필자 촬영)

 

그런데 ‘轟(굉)’이란 말은 벼락 천둥 치는 거대한 소리의 울림을 나타낸다. 새로운 천지개벽의 상황이 전개됨을 작자는 ‘轟(굉)’이란 생소한 단어를 동원하며 아주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

한편 이처럼 ‘轟(굉)’이나 ‘屭贔(희비)’ 등의 생소한 단어를 시어로 선택함이 신비로움을 조성키 위한 작자의 의도된 표현수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곧 <우도가>에서 시어(詩語)로 쓰인 한자어 중 동일부수가 3개 연속적으로 중첩된 글자를 사용함이 유난히 돋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시 전편에서 그런 형태의 글자들만 한데 모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즉, ‘攝(섭)(3구) ‧ 屭(희)(4구) ‧ 贔(비)(4구) ‧ 轟 (굉)(4구) ‧ 晶(정)(10구) ‧ 熒(형)(10구) ‧ 麤(추)(18구)’ 등의 용례가 바로 그렇다.

 

【해석(解釋)】

(2)

雲開霧廓忽湧出(운개무곽홀용출) 구름 개고 안개 걷히자 바다서 홀연히 솟아나니

瑞山新畫飛王庭(서산신화비왕정) 상서로운 산, 새로 그려서 급히 조정에 보고했네.

溟濤崩洶噬山腹(명도붕흉서산복) 성난 파도, 높이 솟구치며 산허리를 잡아채고,

谽谺洞天深雲扃(함하동천심운경) 활짝 트인 산골짝, 깊게 구름 빗장 걸렸어라.

※ 운자 : 평성(平聲) ‘靑(청)’운 : 庭, 扃

 

【해설(解說)】

우도(牛島)란 섬이 바다에서 솟아나 상서로운 산을 이룸을 환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瑞山新畫飛王庭(서산신화비왕정)’이란 표현은 《고려사(高麗史)》 <오행지(五行志)> ‘목종(穆宗) 10년’조에 실린 기사와 거의 비슷하다.

곧, “탐라의 바다 가운데에서 ‘상서로운 산[瑞山]’이 솟아 나왔으므로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 ?~1014)를 보내어 이를 살피게 했다. … 전공지가 몸소 산 밑에까지 가서 산의 형상을 그려 왕에게 바쳤다.[穆宗十年 耽羅瑞山湧出海中 遣太學博士田拱之 往視之 … 拱之躬至山下 圖其形以進]”라고 했다.

이는 최부(崔溥)의 <탐라시(耽羅詩) 35절>의 시에서도 “바다서 솟아난 서산(瑞山), 선계 흥취 풍기고[海吐瑞山供逸興], 용이 서린 우도 섬에 상서론 안개 드리웠네.[龍蟠牛島呈祥霧]”라고 표현했는데, 앞서 ‘최부의 시’를 소개하면서 그 내용을 밝힌 바 있다.

이 대목은 특히 시를 지은 작자의 역사 지리적 배경을 가늠케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기에 이 시편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쓴 판타지 종류의 작품들과는 대별(大別)하게 된다.

‘谽谺洞天(함아동천)’이라 함은 툭트인 산골짝을 의미함인데, 여기서 ‘谽谺(함아)’란 낱말에 주목해 보면, 2음절의 단어에 같은 부수를 썼거나 유사한 음가의 단어를 선택한 사례가 이 시 전편에 걸쳐 특히 많이 나타난다.

작자의 이런 시어의 선택 또한 이 시의 한 특징으로 자리한다. 그러한 단어들만 모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희비(屭贔)(4구) ‧ 뇌정(雷霆)(4구) ‧ 명도(溟濤)(7구) ‧ 함하(谽谺)(8구) ‧ 요벽(瑤碧)(12구) ‧ 은은(隱隱)(14구) ‧ 규창(窺窓)(14구) ‧ 헌원(軒轅)(15구) ‧ 교조(䆗窱)(16구) ‧ 시령(翅翎)(18구) ‧ 난엽(爛燁)(20구) ‧ 빙정(娉婷)(21구) ‧ 녕병(竛竮)(22구)’ 등의 사례가 그렇다.

<그림 (10)> 당(唐) 백호(伯虎)가 그린 함하동천(谽谺洞天)의 상징화

 

【해석(解釋)】

(3)

稜層鏤壁錦纈殷(능층루벽금힐은) 깎아지른 절벽, 온통 비단 무늬 아로새겨놓아

扶桑日照光晶熒(부상일조광정형) 부상(扶桑)에 해 비치니 수정처럼 빛 반짝거리네.

繁珠凝露濺輕濕(번주응로천경습) 흩어진 물방울 이슬 맺혀 물기 촉촉한데

壺中瑤碧躔列星(호중요벽전열성) 호중(壺中) 별천지 푸른 구슬, 별자리 심어놓았네.

※ 운자 : 평성(平聲) ‘靑(청)’운 - 熒, 星

 

【해설(解說)】

우도의 가장 멋진 풍광이라면 단연코 우도의 바다 동굴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시의 전반적인 배경은 우도 바다 동굴의 신비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우도 동굴이 위치한 이곳의 마을 이름이 조일리(朝日里)인데, 우도에서 ‘아침햇살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이란 뜻이고, 동굴로 진입하는 검멀레 해안 쪽의 동네는 영일동(迎日洞)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해를 맞이하는 동네’란 뜻이다.

그리고 예로부터 고래굴의 별칭으로서 ‘신문(晨門)’이라 한 것 또한 ‘새벽을 맞이하는 문’이란 의미로서 동해상에서 떠오른 해가 바로 동굴 입구를 비추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시구 중 ‘扶桑日照(부상일조)’는 ‘부상(扶桑)에 해가 비침’의 의미로서 제주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섬인 우도에 해가 비침을 두고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본래 부상(扶桑)이란 고대의 신화와 전설에 나오는 지명이자 나무 이름으로서 동쪽의 해가 뜨는 곳을 지칭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림 (11)> 우도 고래굴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필자 촬영) <br>
<그림 (11)> 우도 고래굴에서 바라본 일출 장면(* 필자 촬영)

 

한편 ‘호중요벽(壺中瑤碧)’이라 함은 동굴 안의 천장이 유리 방울과도 같이 빛을 내는 존재들이 있어 이게 마치 밤하늘을 수놓으며 반짝거리는 별들의 정경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호중(壺中)’은 동굴의 형태가 마치 호리병 모양 속을 연상시킬 만큼 둥그런 별세계를 두고 이름이다. 이는 《신선전(神仙傳)》에 전하는 ‘호중천(壺中天)’의 고사를 떠올리게도 한다.

“여남(汝南)의 비장방(費長房)이 시연(市掾)이란 벼슬을 할 때, 홀연히 멀리서 호공(壺公)이 나타나 시장으러 들어가 약을 파는 것을 보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호공은 항상 하나의 빈 병을 그 머리 위에 매달아 놓고 앉아 있었다. 해가 지고 나서 호공이 훌 쩍 뛰어올라 그 속으로 들어가고 나면 사람들은 그의 소재를 알 수 없었다. 오직 비장방(費長房)만이 누대에서 그를 보았고,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림 (12)> 《신선전(神仙傳)》에 실린 비장방(費長房) 삽화

 

(연재 계속 됩니다)

 

필자소개

 

 

 

마명(馬鳴) 현행복(玄行福)

‧ 전)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예술진흥원장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태생

- 어린 시절부터 한학(漢學)과 서예(書藝) 독학(獨學)

외조부에게서 《천자문(千字文)》 ‧ 《명심보감(明心寶鑑)》 등 기초 한문 학습

 

주요 논문 및 저서

(1) 논문 : <공자(孔子)의 음악사상>, <일본에 건너간 탐라의 음악 - 도라악(度羅樂) 연구>, <한국오페라 ‘춘향전(春香傳)’에 관한 연구>, <동굴의 자연음향과 음악적 활용 가치>, <15세기 제주 유배인 홍유손(洪裕孫) 연구>, <제주 오현(五賢)의 남긴 자취[影]와 울림[響]> 등

(2) 단행본 저술 : 《엔리코 카루소》(1996), 《악(樂) ‧ 관(觀) ‧ 심(深)》(2003), 《방선문(訪仙門)》(2004), 《취병담(翠屛潭)》(2006), 《탐라직방설(耽羅職方說)》(2008), 《우도가(牛島歌)》(2010), 《영해창수록(嶺海唱酬錄)》(2011), 《귤록(橘錄)》(2016), 《청용만고(聽舂漫稿)》(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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